너의 마음이 내 것처럼 알아질 때가 있어

나도 그런 아이였으니까

by FONDOF

25년 9월, 44개월






런던 여행 중,

호텔에서 5일 머물고 숙소를 옮겨 근교

영국식 가정집 같은 비앤비로 왔다.

처음 들어와 보는 영국의 전형적인 집 구조가 신기한지

구석구석 살펴보던 아이가

커다란 트레이에 담긴 초콜릿과 캐러멜을 발견하곤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주황노랑파랑초록 알록달록 포장지에 싸여

한눈에 봐도 입이 쏙 넣고 싶게 생긴 초콜릿을

작은 손에 들고 “엄마, 이게 뭐야?” 물어온다.


“으응, 그건 어른들이 먹는 거야~ 태은이는 먹을 수 없어, 내려놔~”

나도 짐정리를 하느라 트렁크를 펼쳐놓고 정신이 없던 차,

얼른 대충 구색만 맞추고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구겨지면 안 되는 옷들만 몇 개 골라 옷걸이에 걸고

치약칫솔과 세면도구를 담아둔 지퍼락들을 꺼내어 화장실에 갖다 놓았다.

일단 요 정도만 하고 나머지는 차차 해야지, 생각하고

푹신해 보이는 두꺼운 이불을 들춰 발을 집어넣으려는데

아이가 이불속에 엎드려 개구리자세를 하고 있다.






‘귀여워, 숨바꼭질하는 건가?’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웅크린 아이를

한 아름 팔로 크게 안아주며 따끈한 귓가에 대고

“태은이 뭐 하는 거야?” 쿡쿡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을 드러냈을 아이가

웬일인지 미동도 없이 얼굴만 파묻고 있다.

응? 태은이 우는 거야? 하며 아이를 억지로 돌려 눕히니

아이고..


벌게진 얼굴, 입꼬리가 삐쭉 내려간 입술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피하며

“엄마아 얘기하기 싫어!” 눈물이 그렁그렁 하다.

혼자 이불 뒤집어쓰고 울고 있었다니,

네 살 아이가 벌써 이런 행동을 한다고?

귀여운데 황당하고 신통하면서 안쓰러워 미어지는

마음이 동시복합적으로 피어올랐다.

왜 우냐고 물을 것도 없이

아이가 왜 이러고 있는 건지 바로 알아졌다.


“태은아.. 엄마가 태은이는 먹을 수 없다고 해서 무안했구나..?”

아이의 입꼬리가 한껏 더 내려간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남편이 왜? 왜 그래? 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빠 가! 아빠는 가아 오지 마!”

동공이 커진 눈으로 어리둥절 나를 보는 남편에게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절레절레해 보였다.


“태은이가 서운했겠네..

저거 너무 궁금하고 먹고 싶었는데 엄마가 대뜸 안된다고 해서..

엄마가 너무 그렇게 얘기해서 미안해~

근데 태은아, 태은이가 먹을 수 있는 초콜릿이 있고 없는 게 있어서 그래.

저거는 술이 들어있을 수도 있거든.”


“(먹으라고 둔 건데 술 들은 건 없지 않을까?)”

소곤소곤 보태는 남편에게

위협적으로 뱀소리를 쉬이 이익 한번 내주고

품으로 파고드는 아이에게 말을 이어갔다.


“내일 우리 동물원 갈 거니까

거기서 아이들 먹을 수 있는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 팔면

엄마가 사줄게, 약속해!”

그래도 아이는 마음이 완전히 풀리지 않는 듯했다.

처음에야 초콜릿이 먹고 싶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거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을,

아이의 작고 따뜻한 가슴을 콩콩 뛰게 하는 이 마음이

어떤 건지 너무 알겠어서 나는 더 미안해졌다.

마른 휴지에 떨어진 물방울이 번져나가듯

내 마음도 무겁게 늘어지는 거 같았다.






나도 그랬었으니까.

어른들의 무심한 한마디가 가슴에 파고들어

못 견디게 서운하고 서러웠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럴 때면 이불을 찾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들어가

그 안에서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되도록 울던 아이였으니까.


자식에게서 나의 어린 시절을 보게 된다.

밝고 예쁜 모습의 어린 나만 보였으면 좋겠는 마음도 있지만,

내 안의 어린 응어리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가

나의 아이에게서 소용돌이치는 걸 보게 되는 일도 있다.


덕분에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으니

그 또한 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너무많이울지는않게

#엄마가더잘살필게

#육아일기

#엄마나이네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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