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by FONDOF



너의 성숙을 평가하기보다
나의 미숙을 돌아봐야 할 일

너의 성장을 기대하기보다
나의 멈춤을 경계해야 할 일









2025년 8월, 43개월








전날 마루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등이 너무 결려 숨이 턱턱 막힐 지경,

결국 마루로 나와

소파에 쿠션을 겹겹이 쌓아 놓고 반쯤 기대도 보고

등 뒤로 쿠션 요새를 빙 둘러 누워도 보고...

어떻게 해도 괴로워서

도통 잠 못 들고 뒤척이다가

새벽 4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잠이 든 밤이었다.

.

.

.

.

.

"왁!"



너무 놀라 펄쩍 뛰며 잠이 깼다.

옆으로 돌아누워 자느라 이번엔 어깨가 결린다.

잔뜩 언짢은 눈썹을 찌그러뜨리며 졸린 눈을 가늘게 뜨니

아이가 애착인형을 안고 날 보며 개구지게 웃고 있다.


"엄마 왜 여기서 자고 있어?"

"하.. 태은아.. 이런 거 하지 마. 너도 자다 깼을 때 장난치면 싫잖아!"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안방으로 쾅 들어가 버렸다.

나의 움직임을 좇는 아이의 시선을 느꼈지만

어떻게 든 잠인데.. 날아가지 않게 붙잡는 심경으로

아 몰라! 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잠을 청했다.



'주말이니 남편이 어떻게 알아서 챙겨주겠지..'

아이의 무안해하던 얼굴을 애써 지우려 두 눈을 질끈 감고

'하 진짜.. 나 아픈데..'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잣말로 방금 전의 못난 나를 정당화하며

벼슬받은 사람 마냥 당당하게 잠이 들었다.


아픈 게 벼슬이냐는 말이 이래서 생겼나 보다.






다시 등이 아파 눈을 떴다.

그래도 늘어지게 푹 잔 기분, 시계를 보니 벌써 오전 10시 30분이다.

거실로 나와보니 인기척이 없다.

'둘이 나갔나 보네..'

아무도 없는 거실에 널브러진 장난감들이며

정리 안된 가방, 옷가지들이 눈에 채였지만

못 본 척 그대로 문을 닫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아이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아 뭐라 뭐라 쫑알대는 소리,

반가움에 문을 열고 나오니

안방으로부터 거실-아이방-작업방을 지나 정면으로 마주한 화장실에서

문을 활짝 열고 홀딱 벗은 채 혼자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는 중이다.


"아빠아 나 응가 다 하면 부를ㄱ.. 어?!"


아빠가 아닌 엄마인 걸 확인하고

말을 하다 만다.

상기된 얼굴이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표정이 굳어버린다.


나는 멀뚱히 서서 샤워수건을 한 손으로 들고

다른 한 손을 들어 흔들어 보였지만

아이는 그런 나를 잠시 빤히 보다가

시선을 돌려버렸다.


나를 보고 웃지 않은 적이 없는 아이인데,

시야에 엄마가 들어오면 항상 웃던 아이가

처음으로 내게 보인 정색이었다.


안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아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도록 울었다.


날 보고 실망한듯한 저 눈빛

엄마 싫어 엄마 미워 엄마 가

아이의 눈에 담긴 원망 섞인 불편함..



'뭐 저렇게까지 저래?'

'꼴좋다, 그러게 애한테 멋대로 성깔 부리더라니'

'그게 뭐 그렇게까지 그럴 일이야? 나도 몸이 아프니 짜증도 좀 날 수 있지'

'그렇게 못되게 구니 애도 싫대지'

'아니 그래도 어떻게 나한테 저런 얼굴을 해'

'이제 시작이지 뭐, 앞으로 저런 얼굴만 보게 될 거다'



나와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내 역성을 한 번 들고

또 그런 나를 타박하기를 반복한다.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양손으로 얼굴을 온통 감싸 쥐고

과연 누가 맞나, 누가 이기나

한참을 들여다봤다.






큰일 났다.

꼴이 너무 우스워졌는데..


한참 울고 나니

나갈 타이밍을 놓쳐버린 거 같다.

이래서야 언제 나가도 이상하지 않나,

그렇다고 계속 안방에만 있기도 그렇고..


문 밖으로 아이와 남편이 노는 소리가 들린다.

뭔 놀이를 저리도 재미있게 하는지

노래까지 해가며 잘도 놀고 있다.


야속한 아이,

아이를 야속해하는 못난 나.


마른 세수를 벅벅 해본다.

수십 년 전, 교무실 문을 열던 심정으로 안방문을 열고

거실 바닥에 앉아 개다 만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남편이 아이 방과 부엌을 왔다 갔다 하며 식사를 준비한다.

아이는 방에서 아빠 이리 와 나랑 놀자며 아빠만 찾고

나는 세상에서 빨래 개는 게 제일 중요한 사람처럼

남편 반바지며 아이 속옷이며 내 티셔츠를 차곡차곡 개었다.


"먹자, 여보 와서 앉아."

삶은 만두에 물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내 취향대로 차려진 식탁에 앉아 늦은 첫 끼를 시작한다.

허리도 아프고 기분도 엉망인데 만두가 맛있다.

그때,

식탁의자 밑으로 늘어뜨린 맨발에 뭔가 와닿는 느낌.



"티키티키티키티키.."

어느새 발치까지 왔는지

내 의자 밑으로 들어온 아이가 발을 간지럽힌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괜히

".. 엄마, 힣" 하며 멋쩍게 웃어 보인다.


나는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아이는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그 순간 [정답]처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아이는 나보다 월등히 훌륭한 인간이다.









나는 그대로 의자에서 일어나 바닥에 내려앉았다.

아이를 가만히 잡아끌어 잠시간 눈을 맞추곤 꼭 안아주며

"엄마가 미안해."

라고 했다.


"응."


짧고 단호하게 아이가 대답했다.

그 한 마디에,

정말로 내가 사과해야 할 행동을 한 게 맞구나 싶었다.



아이가 더 어릴 땐 사과가 쉬웠다.

이유식을 너무 크게 떠 먹여서 아이가 웩웩거렸을 때도

무심코 아이를 못 보고 몸을 돌리다 넘어트렸을 때도

카시트 벨트를 채우다 허벅지 살을 모르고 조금 같이 집었을 때도

미안해 미안해 아이고 엄마가 미안해~?

말 끝에 [~?]가 붙어있는 사과,

이렇게까지 말하니까 네가 좀 이해하자~? 같은.

아직 말도 못 하고

뭘 다 아는 건지 뭔지 모르겠는 아이가 멀뚱하게 있으면

울지 않으니 뭐 괜찮나 보다 하고 말았을 거다.



지금 내 품에 안긴 아이의 작은 등을 토닥이며

"응." 단단한 아이의 목소리에

변명의 여지가 없단 걸 인정하게 된다.

나는 다시 한번,

조금 더 무거워진 마음으로 천천히 말했다.


"정말 미안해. 엄마가 더 잘할게."







아이를 키우며

언제 통잠을 자기 시작하는지

언제 이가 나오는지

언제 뒤집기를 하며 언제 기고 서고 걷는지-

일정 월령이 되면

평균 키나 몸무게는 어떻게 되고 백분율은 또 어떻고..

이러저러한 것들을 할 수 있게 된다(= 있어야 한다) 거나

이런 수준의 인지가 가능해진다(= 그래야 한다)는 류의 정보에

얼마나 열심이었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오늘 오전 내내

아이보다 유치하고 아이보다 미성숙했던 나는

지금껏 얼마나 우매한 시선으로 아이를 봐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남기고 간 온기를 다잡으며 식탁 의자에 앉아

지금 든 이 생각을,

이 순간을 기억하고자 다급하게

이 글을 썼다:








너의 성숙을 평가하기보다
나의 미숙을 돌아봐야 할 일

너의 성장을 기대하기보다
나의 고착을 경계해야 할 일

나보다 자유롭고
나보다 멀리
높이 가있는 건 너일 테니

네가 날아간 자리가 폐허이지 않도록
그곳에 화석으로 남을 나이지 않도록

나도 분발해
내 자리를 가꾸고
내 마음을 돌보며
나의 끝을 준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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