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래도, 그리고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by FONDOF

2025년 8월, 42개월






나는 건조기에서 막 꺼낸 따뜻한 빨래더미를 산처럼 쌓아두고

바닥에 철푸덕 앉아 하나하나 개기 시작한다.

소파 위를 아슬아슬하게 뛰어다니며 유튜브를 보던 아이가

빨래 개는 엄마를 발견하고는

작은 악당처럼 웃으며 살살 걸어와

수영장으로 뛰어들듯 풀썩,

드러누워 빨래들을 마구 흐트러트린다.

"엄마, 이것 좀 봐! 내가 수건 속으로 잠수를 했어!"

자랑스럽게 반짝이는 두 눈을 하고는 보란 듯이 발장구까지 쳐대며.


"아니 태은아.. 휴..."

나는 옅은 한숨을 한 번 쉬고 요놈이이이 하며

아이를 낚아채 빠져나가지 못하게 꼭 끌어안고

그대로 바닥에 같이 누워버렸다.


어제 입었던 반바지며 속옷이 널브러진 위로

아이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자 신나 죽겠다는 듯 웃음소리가 깔깔

반짝이는 방울이 되어 온 집안에 통통 튕겨 다닌다.




부여안고 그대로 뒹굴뒹굴 데구르르

"아아 손님 어서 오세요, 어디까지 가시나요?"

"으음.. 이마트요! 토미카 사러 갈 거거든요!"

"이마트, 알겠습니다! 출발합니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내 얼굴 위로 쏟아지며 간지럽다.

다시 내 얼굴이 아이의 얼굴 위로 겹쳐지며 톡 튀어나온 이마에 뽀뽀 한 번 해주고

흥분한 아이가 침을 흘려 아잇 이게 뭐예요 으악 차가워!

"아이고.. 도착했습니다."


마루에서부터 남편이 재택하고 있는 끝방까지

아이와 한 데 엉켜 굴러가서는 문 앞에 도착해서

"아빠~ 좀 나와보세요. 여기 손님이 왔어요~"

방 문을 똑똑 두드렸는데

"아, 하지마아! 하지.. 마!" 하며 서럽게 운다.




'갑자기 이런다고?'

순간 어이가 없어 아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다시 한번 "아니야! 아빠 부르지 마! 또 다른 데 갈 거야!"


"아.. 택시놀이가 더 하고 싶었구나, 한 번으로 끝날까 봐 그런 거야?"

보통 이러면 재택 중이던 남편이 방문을 열고 나와보는데

지금은 회의 중인지 그마저 여의치 않는 모양이다.

고요한 방문 앞에 누운 채로 아이를 살핀다.

정적을 깨며 아이가 손을 높이 들어 나를 두 번 내리 친다.

"어허~?"


내려쳤다지만 사실 때리는 시늉뿐, 세게 때리지도 못한다.

잠시 내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하지마아 하지말라고!!"

소리를 지르며 또 두어 번 때리기를 반복.

나는 천장을 보고 누워있고 아이는 그런 내 배 위로 엎어져 나를 내려본다.

반짝이던 눈빛이 꺼지고 원망이 서려있다.


'이러다 말겠지, 조금 진정되면 얘기해 줘야지' 하고 바라며 기다렸지만

같은 일이 세 번 반복된다.

이쯤 되면 이제 놀이의 문이 닫히고 훈육의 문이 열려야 하는 시점,

놀던 장면에서 훈육의 장면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편집점이 필요하다.

이런 때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공간을 바꾸는 것].


나는 아이의 팔을 잡아 배에서 내려놓고 그대로 일어나 마루로 돌아갔다.

내 뒷모습에 대고 절규에 가깝게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울부짖음을 뒤로하고

덤덤하게 소파에 앉아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엄마아.. 엄마아아!!"

"......"

"이루와.. 엄마 이루와아아!"

"......"




몇 분이 지났을까,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주섬주섬 일어나 쭈뼛대는 걸음으로 내게 왔다.

나는 그런 아이를 빤히 쳐다보며 무언으로 일관했다.

결국 내 앞까지 와서 "히이잉" 울며 안기려 하는 아이에게

"아니야. 똑바로 서."


그 말에 아이는 양팔을 들었다 과장되게 차렷자세를 취한다.

"... 엄마!"

"응, 얘기해 봐."

“... 때려서 미안해..”

"그래, 엄마는 태은이가 때려서 속상했어. 잘 얘기해 줘서 고마워."

하니 흐으으응 하면서 다시 울음이 시작된다.


"놀다 보면 갑자기 속상해질 수도 있지, 엄마도 알아. 그래도 때리는 건 안돼. 알지?"

울며 안기더니 바로 다음 순간

힘이 잔뜩 들어간 양 팔로 나를 다시 밀어낸다.


무서웠구나

서운했구나

아이의 복합적인 감정이 뭔지 알아진다.

그래도 지금 짚고 넘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역시

"때리는 건 안돼. 누구도 때려서는 안 되는 거야."

"...살살은?"


피식, 웃음이 날 뻔했다.

그놈의 [살살]..


집 안에서 뛸 때도 마찬가지 레퍼토리다.

"태은아, 뛰지 마! 쿵쿵 안돼!"
"어 알겠어! ...엄마 그런데 살살은?"
"살살도 안돼!"


밥상머리에서 수저로 식탁을 치며 장난할 때도 같은 레퍼토리다.

"태은아, 수저로 식탁 치는 거 아니야."
"어 알겠어! ...엄마 그런데 살살은?"
"살살도 하지 마!"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반복되는 패턴이 이 순간에도 적용된다.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아직은 엄한 얼굴로 마저 얘기했다.

"살살도 안돼. 살살하다 보면 점점 더 세게 할 수 있거든."

"응 알겠어."

"이제 이리 와, 엄마가 안아줄게."

"엄마아..."




아이는 내 품에 안겨 잠시간 시원하게 울었다.

97cm, 17kg의 작은 인간이 품에 꽉 찬다.

아이의 등이며 엉덩이며 가만히 토닥토닥해주자

내 손바닥 보다도 작은 손으로 아이도 내 등을 토닥토닥해준다.

"태은이 조금 무서웠어? 엄마가 미안해."

"... 엄마아.. 가버려서 쇽샹했어.. 엄마가 화나면 무서워.."

"알겠어, 엄마도 무섭게 화 안 낼게. 미안해사랑해고마워."

"으응.. 미안해사랑해고마워.."



[미안해사랑해고마워]는 우리가 약속한 화해의 언어다.

친구랑 장난감 서로 갖고 놀겠다고 뺏고 싸운 뒤에도,

위험한 장난치거나 무례하게 굴어서 엄마아빠한테 혼나고 난 뒤에도.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이 세 가지를 담아야 진짜 화해야,

우리는 꼭 서로에게 이렇게 말해주도록 하자.

... 고 약속한 한 마디.

그리고

속상함 끝, 즐거움 다시 시작! 을 알리는 마법의 한 마디.





"엄마, 이제 다시 놀까?"

눈물 번진 눈을 다시 반짝이며 나를 일으키는 작은 손,

나는 다시 그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







#미안해사랑해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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