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22. 2017

함부르크의 날씨와 나

화창한 햇빛 속에서도 비는 내린다



낯설기도 아니기도 한 독일 땅, 그중 함부르크에 도착한 지 일주일 남짓이 되었다. 마음이 엄청 급했던 건지, 2주는 지난 느낌이었는데 달력은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미동도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집도 일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날아온 나에게 적응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 제일은 날씨다. 

게으른 나를 산책하고 싶게 만들 정도로 짙푸른 하늘과 새하얀 뭉게구름이 창가에 비쳐 나름 정성 들인 외출 준비를 하고 밖을 나가면 어느새 비가 내린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라도 맞아보자고 걸음을 내딛다가 이내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오자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쨍쨍. 


한마디로 황당한 날씨다.

처음에는 이런 짤막한 글을 써가면서 나름 이 날씨에 살아가야 하는 나를 위로해봤더랬다.




세상엔 날씨가 변덕스러운 곳도 있고
그래도 사람이 살고

세상엔 변덕스러운 사람도 있고
그래도 친구가 있다  

제목: 함부르크와 나




위로받고 싶었다. 날씨에게라도.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희로애락을 동시에 겪는 날들을 보내는 게 나뿐만이 아니구나,라고.

그런데 이게 웬걸. 함부르크 날씨는 변덕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 

항복, 

포기. 

감히 저 같은 소녀가 어찌 함부르크의 날씨에 변덕을 입에 올릴 수 있단 말이옵니까.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내 마음에도 물이 좀 흘렀던 것 같았지만 스윽 훔쳐내고 말았다. 몸도 이렇게 젖어서 큰 일인데 마음까지 젖어서야 안될 일이다. 




인내에 대한 보상인 걸까. 오늘은 웬일로 하루 종일 맑음이었다. 햇빛이 귀해지다 보니 할 일 같은 건 생각지도 않고 무작정 호숫가를 걷고 또 걸었다. 길을 잃을 때까지 또 걷고 또 걸었다. 







내 걸음 속도에 맞춰 내 옆을 지나가는 풍경들이 한 폭 한 폭이 그림 같았다. 

3년 된 내 오래된 갤럭시 노트에는 담기지 않는 아름다움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예쁘다. 함부르크는 참 예쁘다. 인생도 이렇게 예쁜 것일까?








문득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쭉 뻗은 호숫가 산책로 옆으로 곧게 뻗은 햇빛들이 앞다투어 호수의 수면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너무 눈이 부셔서 똑바로 바라보기도 힘들 만큼 아름다웠다.

갑자기 어제 구글 포토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발견한 옛날 사진들을 보면서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돌아보니까 내 인생도 꽤 예쁘네.
왜 그게 '지금'은 안 느껴질까.
어째서 늘 지나가야 아름다움이 보이는 걸까.





뒤돌아서 마주한 아름다운 풍경이

이미 지나가버린 아름다운 내 과거 같아서,

마음이 아려왔다.



과거를 후회하는 일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좋은 과거도 나쁜 과거도 나는 잘 돌아보지 않으려고 한다. 

후회하는 일이 없는 대신에,

했던 실수를 또 반복하기도 한다. 






지금,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아님, 이번엔 정말 잘 해낼 수 있는 걸까.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지쳐버렸다.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는 일이고, 

그보다 더 힘든 일은 '그 일을 꾸준히 하는 일'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스스로가 제법 성장했다고 자만했었다.

그러다 집도 절도 없이 예쁘기만 한 도시에 엉덩이를 비집고 앉아보려 하니,

스스로의 나약함을 매일같이 마주하느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할 수 있어'라고 굳세어라 금순이가 되었다가도,

이내 약해져서 흐물거리고,

한국인 친구들과 메신저로 사랑스러운 응원을 받으면서 금방 기운을 얻었다가도,

그 느낌은 꺄르륵 웃으면서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겨우 힘을 내서 100m씩 달려갔는데,

잠깐 쉬려고 자는 동안에 누가 나를 매일 밤 출발선으로 옮겨다 놓는 것 같다. 



그럼 또 달리고, 또 달리고, 또 달린다.

그리고 매일 괜찮다고 주문을 걸었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달린 것 같은데도

이 아름다운 함부르크의 풍경도,

내 손에 들린 새 아이폰도,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햇빛은 이렇게 화사한데, 마음이 자꾸 비에 젖어가고 있었다.



나는 열심히 달렸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방향이 앞이 아니라 뒤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으로 안으로 더 숨고만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인가,라고만 하기에는

내가 달려온 방향이 스스로가 원한 방향이 맞았던 건지 의문을 가질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하루 종일 카톡이 오지 않는 일 정도야 무덤덤해져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 일이 왜 이렇게 서운하게 다가오는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함부르크에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 전 회사에 다녔던 친구들이라,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회사 이야기를 듣거나 하면

마치 헤어진 남자 친구 이야기를 들은 것 마냥 마음이 아프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어도, 나는 그 회사를 꽤나 많이 좋아했었다.

하지만 더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과감히 포기했다.

그래서 돌아보고 싶지 않은데 자꾸 눈에 밟힌다.



그리고 이 곳의 친구들이야 제각기 자신이 살아가는 삶이 있으니 늘 나를 상대해줄 수가 없다.

알면서도 외로운 마음에 혼자 마음의 벽을 쌓게 된다.

이런 기분은 대학에 입학해서 서울에 올라왔을 때도 느꼈었다.

우리 과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 별로 없어서, 

친구들이 가족이나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참 외로웠던 것 같다. 

타지 생활이라는 게 그래서 참 힘이 든다.





At the end I realized that I am lonely.




그러다 한 친구와의 대화 중 툭 하고 눈물이 터졌다.



스무 살 처음으로 나 홀로 고시원 생활을 시작한 첫날밤이 이런 기분이었고,

스물두 살 일본으로 건너가 잠들던 첫날밤도 이랬던 것 같다.



서른한 살, 지금의 나는 마흔한 살의 내가 돌아보았을 때 미소 지을 수 있는 삶을 살아내겠노라고 결심해 본다.



무작정 토해내듯 써 내려간 이 글을 통해서,

빨리 이 불안함이 사라지길.

다시 인생을 즐기는 나를 되찾기를.

행복하길.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정말로 할 수 있기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