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개는 우리나라 베개와 다르게 생겼다.
운이 좋게도 이전에 올렸던 '드디어 독일의 세입자가 되다'라는 글이 다음 PC 메인 사이트에 소개가 되어서 최근에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사하면서의 에피소드를 남길 겸, 이사 후 바쁜 정신과 몸을 한숨 돌릴 겸 컴퓨터 앞에 앉았다.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는 그저 '일단 집을 구하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 집 없이 떠도는 상태로 지내는 것이 점점 힘에 부쳐와서 그냥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에 들어가자'는 것만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 엄청나게 무거운 내 대형 하드 캐리어를 4층까지 맨몸으로 엘리베이터 없이 끌고 올라가는 것이 문제였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전 세입자 부부 중 남편 분과 집주인 분이 도와주셔서 짐은 무사히 위로 올릴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 캐리어를 옮겨야 하는 순간이 오면 꼭 조력자가 나타난다. 공항에 도착했을 땐 예전 회사 보스를 우연히 만났고, 체크인을 할 땐 그곳 직원이 도와주고, 첫 번째 체크아웃을 할 땐 한국인 여행객을 만나서 도움을 받고, 남동생이 여행 차 들러서 또 잠깐 옮겨주고, 마지막엔 전세입자 분과 집주인까지... 외국에 나와있으면 이런 도움 하나하나에 대한 고마움이 두 배 세 배로 다가온다.
기쁜 마음도 잠시. 가장 할 일이 많은 건 이사를 한 직후라는 걸 금붕어처럼 또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행히 대부분의 가구는 이전 세입자분들에게 중고로 구매를 해서 크게 부족한 건 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이불이 없었다. 이불부터 사러 갔어야 했는데... (IKEA가 도심에 있어서 언제든 갈 수 있으면 무얼 하나... 고객이 어리바리하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먹거리(!)를 사고 짐을 정리하고 청소를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불 생각을 하긴 했다. 그래도 '겨울이 아니니까 괜찮겠지 -' 싶었다. 이사를 하기 전 한국에서 잠시 여행 차 들른 남동생에게 받은 한국에서 쓰던 얇은 담요 한 장만 믿고 있었는데, 밤은 생각보다 추웠다. 혹시나 해서 옆에 뉘어 놓은 겨울 패딩을 새벽에 깨서 입고 잤는데도 추웠다. 그 와중에도 난방비가 무서워서 히터를 세게 틀지도 않고 잔 미련 곰탱이인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그리고 환기시킨답시고 다른 방의 모든 창문을 열어두고 잤다... 하...)
일기 예보대로라면 다음 날은 천둥 번개가 칠 거라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날이었다. '이불을 사고 오다가 다 젖으면 어쩌지?' 걱정을 하다가 일단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히 오전은 맑다. 서둘러 IKEA로 달려갔다. 늘 뭔가 살 때 이 물건 저 물건 다 들여다보느라 시간을 엄청 쓰는 편인데, 비가 오기 전에 끝내고 싶어서 오늘은 좀 서둘렀다. 바로 이불 코너로 갔다. 포장은 꼼꼼하게 비닐 포장이 되어 있어서 중간에 비가 온다고 해도 젖을 걱정은 없어 보였다. 이불과 베개 커버를 고르는 일은 의외로 간단했다. 마음에 드는 게 딱 하나뿐이었다. (ㅋㅋ)
문제는 이불솜, 베개 솜. 이 녀석들이 생각보다 가격이 나갔고, 이 녀석들의 가격 차이가 어떤 품질의 차이인지 파악하는 게 너무 오래 걸렸다. (차이는 100% 솜이냐, 믹스냐의 문제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불 커버를 사면 베개 커버도 무조건 세트로 묶여 있었다. 그건 좋은데 문제는 베개 커버 사이즈가 무조건 80cm x 80cm. 우리나라 베개만 보다가 이걸 막상 실제로 보면 굉장히 크다. 그래서 지나가는 직원을 붙잡고 물어도 봤다.
"이불 커버만 살 수 없나요?"
"놉"
"이것보다 작은 베개 커버를 사고 싶으면요?"
"퐐로미"
직원이 나를 데려간 곳에는 우리나라처럼 길쭉한 베개 커버만 따로 파는 코너가 있었다. 추가 구매를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아니, 이런 낭비가!) 커버라서 가격은 비싸지 않았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이불 소재랑 같은 게 없었다. 베개를 고르면서 내내 이 궁금증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베개를 왜 이렇게 쓸데없이 큰 걸 쓰는 거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알아본 바, 이유는 대략 이렇다. (재미를 더하기 위해 채팅형으로 각색하였다.)
*정보 출처: 위키피디아(독일) http://bit.ly/2qKD7Xo, Reddit http://bit.ly/2qKP3rZ
Q. 왜 베개가 정사각형이야?
A. 그냥 어릴 때부터 이런 베개를 써와서 잘 모르겠어. 진짜 그냥 문화야.
Q. 근데 너무 낭비 같지 않아? 누웠을 때 이 베개의 반 밖에 못 쓰잖아. (독일인들 머리도 작잖아)
A. 아니야. 머리도 베고 어깨도 베개 위에 올리는 거야. 우리 베개 솜은 엄청 부드럽고 푹신하거든.
Q. 아하...? 그래서 그렇게 흐물흐물했구나. 근데 어깨를 베고 자면 불편하지 않아?
A. 나는 그게 습관이 돼서 안 하면 더 이상해. 근데 이것도 개인 차이라서 베개를 반으로 접어서 높게 베고 자는 사람도 많아. 아까 말한 것처럼 솜이 엄청 부드럽고 푹신해서 모양을 변형하기가 좋아서 내가 원하는 대로 베고 잘 수 있어! 방법은 사람마다 무궁무진해! (Q. 그건 좀 오버 같은데?) 아무튼 요즘에는 의사들이 메모리폼 같은 베개를 추천해서 그런 베개로 바꾸는 사람도 많지만, 여전히 70% 정도는 80x80 사이즈 베개를 쓰고 있어.
Q. 나도 메모리폼 베개를 사고 싶었는데, 이불 커버 사면 따라오는 베개 커버가 아까워서 그냥 80x80 베개로 샀네. 이건 여담이지만 나는 예전에 목디스크가 살짝 있었는데 당시 한의사가 메모리폼 타입의 베개를 쓰지 말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메모리폼 타입은 못 쓰겠어. 암튼 뭐가 더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나도 독일에 와서 독일 베개 샀으니 어깨 베고도 한 번 자볼게.
A. 그래. 나중에 느낌이 어떤지 알려줘.
결국 작은 베개를 포기하고 큰 베개 솜을 골랐다.
베개에서 문화 차이를 느낄 줄이야.
앞으로는 만나는 독일인마다 베개에 대해서 물어봐야겠다.
덧1) 부부가 이불을 구매할 때 싱글 사이즈의 이불 2개를 구매해서 각각 덮고 자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잘 때 더위를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도 있고, 이불을 뺏기지 않아도 되니까...라고. 자면서의 이불 전쟁은 세계의 모든 부부가 가지고 있는 공통 이슈 같은데, 미국은 더 큰 이불을 사는 방법을 택했고, 독일은 각자의 이불을 쓰는 방법을 택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혹시 잘 때 이불 뺏겨서 힘드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덧2) 어젯밤에 글을 업로드 하고 실제로 베개를 어깨까지 베고 자봤다. 의외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편안하게 잘 잤다. 베개솜이 워낙 부드럽고 몸에 대한 저항이 없어서 침대 위에 그냥 일자로 누워있는데 어깨와 머리만 살짝 받쳐줘서 편안한 그런 느낌이었다. 원래 낮은 베개를 선호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베개 없이 잘 때도 있는데 (다른 곳에서 자야할 때) 그래도 역시 베개가 없는 건 영 불편... 독일 베개, 의외로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