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Aug 05. 2024

서른일곱 유학생은 무엇을 입을까



내 나이 올해 서른일곱.

서른여덟까지 반년도 남지 않았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크게 나이를 먹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었다.

아마 내가 서른이 되기 직전에 독일에 오면서 한국 사회에서 멀어지느라 미처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느라 바빴으며, 또 새롭게 시작한 유학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지금은 이 나라에 적응도 꽤 했고, 독일어도 처음에 비하면 아주 많이 늘었고, 유학도 이제 한 학기면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 안에서도 여전히 바쁘고 정신없지만, 그래도 익숙함 속의 바쁨이라 그런지 문득문득 멈춰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들이 생긴다.

내가 잘 살아온 건지, 잘 살고 있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러다 보면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알스터에서 물멍 타임



‘나도 진짜 나이를 먹는구나’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흐르고,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사실 10대나 20대의 바이브에서 멀어졌다고 느끼기 시작한 지는 제법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좀 더 피부에 와닿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싫다거나 이제 내가 늙었으니 난 한물 간 세대라고 말하고 싶은 건 전혀 아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최근에 나이를 먹었다고 느낀 건 다름 아닌 ‘양말 트렌드’ 때문이었다.

요즘 젠지들은 발목 양말을 촌스럽다고 안 신는다고 한다.




출처: 영상 스크린샷 @ekke.now




아예 발목 아래로 내려가거나 아니면 더 긴 양말은 괜찮지만, 딱 발목까지 오는 양말은 그냥 안 예쁘다고 말하는 미국 젠지의 영상을 보고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미 이름만 바꿔가며 돌고 도는 패션의 흐름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고, 다시 짧아지는 티셔츠나 넓어지는 청바지의 변화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양말은 이상하게 느낌이 달랐다.



‘발목 양말이 촌스럽다고?’



공감이 되지 않았다.

10대 혹은 20대의 나라면 고민도 하지 않고 이미 자연스럽게 긴목 양말을 신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번에 양말은 정말로 조금 아주 조금 고민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덧신(혹은 페이크삭스)은 허용이 된다는 것이다.

애초에 내 서랍에는 덧신, 발목양말, 긴목양말이 모두 있고 그때 그때 스타일에 따라 골라 신어 왔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아주 큰 변화는 없다.

그럼에도 어쩐지 퇴물이 되어버린 듯한 나의 발목양말들이 가여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건 발목양말의 범주에 들어갈까?


‘최근에 언제 어떤 옷과 발목 양말을 신었더라…?’



유난히 신경 쓰였던 까닭은 나는 지금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이고 거기에는 아무래도 젠지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젠지들이 - 그러니까 내가 전혀 모르는 남들이 - 이상하게 볼까 봐 내 멀쩡한 양말을 서랍에 묵혀둬야 하는 걸까?

나는 젠지가 아니다. 젠지이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냥 나답게 입고 싶다.

하지만 발목 양말이 촌스러움의 상징이 알게 된 이 순간에도 나는 발목 양말을 계속해서 신을 수 있을 것인가?


직장인 시절의 스타일 돌아보기 (이렇게 입었었구나...)



사회가 좋다고 하는 것들을 먹어도 보고, 입어도 보고, 해보기 바빴던 게 나의 20대였다면,

30대 초중반은 사회의 기준과 내 스타일 사이를 오가며 나만의 스타일 찾기가 시작되었고,

30대 후반으로 넘어가는 지금의 나는 삶의 몇 가지 영역에서는 나만의 스타일을 찾았지만,

아직 남은 영역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가 패션인 듯하다.



나는 패션에 아주아주 진심은 아니지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는 차려입고 다니자는 주의였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유학생의 신분일 때는 캐쥬얼하게 입고 다니면 되니 아직까지는 부담이 없고 편하다. 아니 사실은 한국 직장인 시절 입던 옷들을 입기가 부담스럽다. 너무 차려입은 느낌이 들고 겉도는 느낌이다. (한 번은 취업설명회에 힘주고 입고 갔더니 아무도 학생으로 보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내 스타일이라고 하는 게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런 스타일도 좋아 보이고, 저런 스타일도 좋아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유행을 좇기보다는 오래 입을 수 있는 나만의 스타일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가끔 스타일리시하게 갖춰 입은 할머니들을 볼 때면 80대의 나는 어떤 옷을 입고 다닐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80대에도 이런 스타일 어떨까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맞나?’

‘이게 나에게 어울리는 게 맞나?’

‘나는 나이 들면 어떻게 입을까?’



나름의 도전이었던(?) 이 날의 코디



요즘은 자꾸 머릿속에 질문만 많아진다.

그동안 내 취향이 아니라고 아예 안 입었던 옷을 한 번 과감하게 입어보고도 싶고,

누가 봐도 유행을 거스르는 스타일도 도전해 보고 싶다.

패션 사춘기가 온 걸까?

이 패션 사춘기가 지나면 언젠가는 나도 내 스타일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걸까.



이전 20화 7유로 30센트의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