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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ul 28. 2024

7유로 30센트의 사랑


오늘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 

오후 2시쯤 캐셔에서 손님들의 계산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러다 한 여자분이 노트랑 펜 등 학용품 몇 개를 들고 왔다. 

익숙한 손길로 바코드를 찍은 뒤, 결제 금액을 알려드렸다.




“7유로 30센트입니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자는 급하게 10유로를 내밀었고, 그 뒤를 따라 한 나이 많은 남자가 자기가 계산하겠다며 20유로를 들이밀었다. 서로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하는 통에 누구의 돈을 받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어느 쪽도 망설임이 없었다. 10유로에도, 20유로에도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곧 이 상황이 아버지와 딸의 옥신각신이라는 게 느껴졌고, 누군가의 딸인 나는 이름 모를 딸의 손을 들어주었다. 


계산을 다 하고 돌아서서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나도 모르게  바라보았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까맣게 탄 피부에 머리가 희끗희끗했고 깡마른 몸에 청남방을 걸치고 있었다. 딸로 보이는 여자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쯤 돼 보이는 젊고 어여쁜 숙녀였다.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두 사람은 계속 귀여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듯했다. 무슨 말을 나누는지 들리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에이 아빠가 사준다니까~~~ 얼른 이 돈 받아.”



아빠는 손에 쥐고 있던 20유로를 딸이 산 노트 사이에 끼워 넣으려 한다.



“아니야 진짜 나 돈 있다니까????” 



딸은 극구 몸을 뒤로 빼며 사양해 보지만 양손에는 미처 가방에 넣지 못한 학용품과 잔돈으로 꽉 차서 아빠를 완전히 말리지를 못한다. 


결국 딸은 못 이기는 척 사양하기를 멈추고 말없이 아빠와 눈을 맞추며 웃었다. 어쩌면 저런 순간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하지 못하는 것은 ‘고맙다’는 말 안에 저 감정을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고 싶다, 우리 아빠




어쩐지 나의 아빠가 생각나면서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오늘 딱히 별 일은 없었다.

기분 좋게 일 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음속에서 ‘아빠’, ‘엄마’라는 버튼이 눌리면 가끔 이렇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곤 한다. 

신체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느끼는 그리움은 배가 되는 것 같다. 

조금만 더 있으면 눈물이 흐를 것 같아 놀란 손으로 붉어진 눈에 부채질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7유로 30센트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 700유로를 서로 계산하겠다는 부녀를 보았다면, 나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7유로 30센트에서 시작된 장면이지만,

700유로를 낸다 해도 볼 수 없을, 

따뜻한 가족의 ‘진짜’ 사랑을 목격한 기분.




두 사람이 저렇게 아웅다웅하며 내 손에 쥐어준 7유로 30센트에서,

20유로를 딸의 손에 굳이 굳이 쥐어주는 저 아빠의 등 뒤에서,

어쩐지 아주 익숙한 냄새가 났다.



그리운 가족의 냄새가.










- 커버 이미지 출처: UnsplashLukasz Radziejew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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