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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ul 14. 2024

조금 야했던 독일 X-ray 검사

그리고 논문 등록


흉부 엑스레이 검사받으러 간 날


지난번에도 쓴 것처럼 요즘 병원을 다니고 있다. 이번 주에는 흉부 엑스레이 검사를 하러 가야 했다. 독일에서 엑스레이 검사를 받으려면 방사선과(Radiologie)를 찾아가야 한다. 처음에는 대학 병원 의사가 내가 직접 예약해야 한다고 해서 여기저기 검색하고 예약하면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찾기가 어려워 고생을 좀 했는데, 막상 한 군데 찾아서 갔더니 거기도 대학병원처럼 의사 소견서(Überweisung)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일반 의사(Hausarzt:in)를 찾아갔더니 소견서도 써주고 예약도 아주 빠른 시일 내로 잡아주었다.




Überweisung은 대충 이렇게 생겼다




예약을 잡아준 곳은 내가 사는 곳에서 지하철로 20-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주위에 예쁜 카페와 가게들이 많은 곳이라 나들이를 가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방사선과 가던 길 (c) noi 2024



2분 정도 늦어서 종종걸음으로 도착했는데 접수처에 있는 간호사가 어떤 환자랑 통화 중이라 어차피 좀 기다려야 했다. 건강보험카드와 소견서를 미리 꺼내서 손에 쥐고 접수처에서 조금 떨어져서 간호사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내용을 들어보니 어떤 분이 급하게 예약을 잡는 듯했다. “네, 오늘 오후 2시에 뵐게요.”라는 말을 끝으로 간호사의 통화가 끝났다.


“비테 슌(Bitte, schön)”


기다리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가가 용건을 설명한다. 간호사는 내 보험카드와 소견서를 받아 들고 예약 여부를 확인하더니 검사 전에 작성해야 하는 질문지가 있다며 펜과 함께 종이를 여러 장 건네주었다. 기본적인 개인 정보를 적고, 어떤 병으로 검사를 하려는 건지 병명을 적고, 흡연을 하는지, 엑스레이 검사를 예전에 한 적이 있는지, 최근에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지 등등 여러 가지 질문 사항이 가득했다. 전에 받은 의사의 편지를 같이 가져오길 정말 잘했다. 내 병명이 독일어로도 좀 어려워서 아직도 외워지지가 않는다.




병명을 적고,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사전으로 더블체크를 하느라 답변을 하는 게 오래 걸렸다. 평소에도 이렇게 했던 터라 나는 여유 있게 작성하고 있었는데, 조금 있다 질문지를 수거하러 오겠다던 간호사는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나는 아직 질문지의 반도 답을 못한 상황. 어색하게 웃으며 시간이 좀 걸린다고 이야기했더니 쿨한 간호사분은 같이 작성하자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검사실 문 앞에 서서 간호사가 질문하고 내가 답변하면 간호사가 질문지에 체크하는 방식으로 일사천리로 답변이 진행됐다.



질문지 작성이 끝나자 간호사가 머리끈이 없냐고 물어봤다. 평소 늘 챙겨 다니던 걸 하필 오늘 안 챙겨 왔다. 기다리라고 하더니 간호사가 가져온 것은 평범한 고무줄. 조금 헐렁하고 뻑뻑했지만 머리는 충분히 고정시킬 수 있었다. 간호사는 머리카락을 최대한 정수리 쪽으로 끌어올려서 묶으라고 했다. 열심히 머리를 묶고 나니 “상의를 전부 탈의하고 들어오세요”라는 말만 남기고 간호사는 검사실 뒤편으로 사라졌다.


‘전부 탈의하라고? 따로 받은 옷이 없는데?’


그곳의 검사실은 조금 특이했다. 검사실 입구의 문을 열면 곧바로 사람 두 명이 서있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공간이 있고, 그다음에 문이 하나가 더 있고 곧바로 엑스레이 검사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말하자면 간이 탈의실 같은 공간인 것이다. 그 안에는 양쪽 벽에 간단한 선반과 거울만 있을 뿐 어떤 가운이나 옷가지 같은 게 전혀 없었다. 왼쪽 선반의 작은 공간에 가방과 벗은 옷을 올려두고 오른쪽 선반 위에 있는 거울을 보며 머리를 묶고 그게 끝이었다.



사실 아예 예상을 못한 건 아니었다. 산부인과를 갔을 때도 한국 산부인과에서 받던 고무줄 치마 같은 걸 독일에서는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방사선과도 어느 정도 그럴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금속 같은 게 전혀 걸릴 게 없도록 상의를 입고 갔는데, 간호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상의 탈의만 말했다. 일단은 옷을 벗었다. 다행히(?) 간호사분이 여자분이었기 때문에 부끄러움은 덜했으나 혹시 내가 뭔가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닐까 걱정을 하며 벗은 옷으로 몸을 가리며 문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밀어 간호사의 눈치를 살폈다.



검사실로 돌아온 간호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상의 탈의하셨으면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말했다. 벗었던 옷을 선반 위에 내려놓고 쭈뼛쭈뼛 검사기 앞으로 다가가는 동안에도 간호사는 옷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 그저 나를 검사기 앞에 세우고 검사 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 사항만 설명했다. 이 상황이 너무 어색한 나만 빼고 모든 게 너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역시 독일… 이구나’


속으로 반쯤 체념하고 그냥 간호사가 하라는 대로 검사를 받았다. 정면과 측면 검사를 모두 마치고 옷을 다시 챙겨 입고 짐을 챙기는 동안 간호사가 엑스레이 결과 사진이 든 커다란 봉투를 들고 왔다. 사진은 내가 보관하는 거고, 의사용 사진은 아까 나눠준 종이에 있는 QR코드를 의사에게 들고 가면 된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몇 번인가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 봤지만 엑스레이 사진을 이렇게 크게 실물로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A3 보다는 조금 크고 A2 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의 사진 두 장이 든 봉투를 들고 걸어가는데 그날 따라 바람이 세서 봉투가 이리 휘청 저리 휘청 거렸다. 내일은 MRI 검사를 받으러 가는데 또 어떨지 기대가 된다.



검사 끝나고 먹었던 애플 파이 (c) noi 2024





논문 등록 준비


이제 다음 학기면 정말 마지막 학기, 논문 한기이다. 지금까지는 그냥 교수님에게 과제 설명을 듣고 제출하면 되었던 강의 과제와는 달리 논문은 등록하는 법도 다르고, 규칙도 다르며, 상당히 까다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달 말일은 논문 제안서(Exposé)를 제출하는 날이었다. 겨우 두장, 많아야 다섯 장이면 되는 제안서인데도 논문의 초석이 되는 글이기 때문에 완성하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렸다.


제출을 하고 교수님에게 바로 다음 날 답장이 왔었다. 무서운 교수님은 아니셨지만, 당장은 어떤 피드백도 읽고 싶지 않았다. 번아웃 직전의 상태로 며칠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 정확히는 침대에 누워서 눈과 뇌만 즐겁게 하고 - 회복하는 동안, 교수님의 메일을 읽지 않았다. 메일을 읽는 순간 머릿속이 또 논문 생각으로 가득 찰 것 같아서 제대로 된 휴식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지친 몸과 마음이 상당히 많이 회복되었다. 그제야 교수님의 메일을 읽고 부랴부랴 답장을 했다. 막상 읽어보니 피드백 부분은 별 내용이 없었고 (레퍼런스를 더 채우면 좋겠다는 피드백이 전부였다) 정작 다른 중요한 내용이 있었다. 다음 학기에 논문을 쓰려면 다음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학교의 ‘시험관리국(Prüfungsamt)’에 미리 등록을 해야 한다. 이 등록을 하려면 담당 지도 교수님과 논문을 쓰는 학생의 서명이 들어가야 하는데(디지털 안됨), 교수님이 등록 마감일 직전 2개월 간 학교에 거의 못 오신다고 미리 사인을 하자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미리 만나자고 한 날이 수요일이었는데 내가 메일을 확인한 게 화요일 저녁. 놀라서 바로 콜을 외치고 다음 날 교수님을 뵈러 갔다.



마음이 급했던 탓인지 약속 시간 해석을 잘못해서 한 번 헛걸음을 하고, 두 번째 걸음에는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반갑게 인사하고 서명만 하면 되나 했는데 또다시 벙쪄버린 나.



교수님: “논문 등록 신청서 들고 왔어?”

나: “응? 그거 여기 있는 거 아니었어?”

(우리 교수님 젊어서 학생들이랑 반말(Du)한다.)




서명을 해야 한다고 했던 그 신청서는 내가 시험관리국에 이메일을 보내서 따로 받아와야 하는 것이었다. 모든 설명은 학교 과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논문 안내서에 들어있었지만 급한 마음에 등록 부분은 읽지 않고 제안서 부분만 읽은 것이 나의 실수였다. 친절한 조교가 자기가 대신 이메일을 보내준다고 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논문 등록 시 필요한 최소 학점. 논문을 쓰려면 최소 130학점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학점이 5점 모자란 125 학점이었다. 이미 진작에 끝내놓은 30학점짜리 과목이 있어서 사실상 155학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 과목의 초기 세팅이 9월 15일이 마감일로 설정되어 있어서 그 날짜가 지나야 학점이 시스템에 등록이 된다고 했다.




나: “어차피 제출할 거 다 제출했고 이미 받은 학점이나 다름없는데 그냥 신청서 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거야?”

교수님: “시스템상으로 130학점이 있는 게 확인이 돼야 신청서를 내주는 시스템이라 안될 거야.”



결국 우리는 9월 15일이 지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교수님이 9월 말에 학교에 오는 날이 있어서 그때 만나서 다시 같이 하는 걸로 하고 나왔다. 이 이야기를 하다 새롭게 알게 된 건 논문 등록을 할 때 정한 타이틀은 변경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친구들이 이야기할 때 들은 적이 있었는데도 교수님이 말하기 전까지 떠오르지 않았고 아무 생각 없이 달려온 내가 부끄러웠다. 그러니까 9월 15일이 지나면 시험관리국에 이메일을 보내서 신청서를 받고, 미리 정해둔 최종 타이틀을 기입하고, 교수님과 내 서명을 넣어서 9월 30일까지 제출을 해야 한다.



여기서 또 새로운 과제는 논문 타이틀 최종 확정이다. 논문 등록을 하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주제도 바꿀 수 있고, 제목도 바꿀 수 있지만, 일단 등록을 하고 나면 절대 변경이 안된다고 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타 정도는 변경이 되는 것 같지만, 논문의 흐름을 바꾸는 제목 자체의 변경은 절대 안 된다. 역시 뭐든지 미리미리 해두어야 탈이 없다. 이걸 9월 말에 알았다면 난 또 타이틀을 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등바등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독일 와서 스스로가 진짜 많이 바뀐 것 중 하나는 뭐든지 마감일까지 미루던 습관이 정말 많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완전히 바뀌었다고 까지는 볼 수 없지만, 한국에서의 나를 생각하면 정말 많이 바뀌었다. 왜 굳이 독일에 와서 바뀌었냐고 묻는다면, 독일은 우리나라와 행정 절차나 시스템이 다른 부분이 많아서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항상 존재한다(이건 심지어 독일인에게도 비슷할 수도 있다). 또 예약이나 변경이 우리나라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도 하고. 나처럼 모든 일을 마감일로 미루는 성격을 고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독일 생활을 적극 추천해 주고 싶다. 물론 고통의 과정을 겪어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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