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독일 꼬마 신사 숙녀들과의 철봉 놀이
엑스레이 검사를 하고 4일 뒤에는 MRI 검사를 했다. 엑스레이는 많이 접해 본 나름 친숙한 검사라면 MRI는 어쩐지 내가 심각한 병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이름이다. 생전 처음 해보는 검사라서 미리 한국어로 검사에 대해서 검색을 조금 해보았다. 특히 금식 여부가 걱정이 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MRI 검사 금식'이 관련 검색어 가장 윗줄에 떴다. 금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내 경우에는 의사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으니 금식은 안 해도 되는 듯했다. 검색 상단에 뜨는 정보들을 대충 훑으면서 검사 장소로 향했다.
MRI 검사는 전에 검진을 왔었던 대학병원에 잡혔다. 제일 중요한 의사 소견서가 잘 들어있는지 가방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래도 한 번 와본 길이라고 이번에는 제법 여유롭게 도착했다. 산들바람에 햇볕도 따스해서 더할 나위 없이 걷기 좋은 날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병원까지 걷는 15분이 전혀 멀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검사를 받아야 하는 건물을 찾는 길은 조금 헷갈려서 두 건물 사이를 꽃게처럼 왔다 갔다 했다.
왜냐면 의사 소견서에 적힌 건물이름은 왼쪽이긴 한데, 건물 이름과 소견서에 적힌 이름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또 건물 앞 표지판에는 MRT(독일에서는 MRI를 MRT라고 부른다)는 왼쪽이 아니라 그다음 건물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었다. 예약 시간이 촉박한데 갑자기 이게 웬 수수께끼람. MRT 찍는 곳이 여러 군데 있는 건가 생각하며 일단 첫 번째 보기를 선택했다. 다행히 찾던 곳이 맞았다. 간단히 접수를 마치고 대기실에 가서 앉았다. 요 몇 주 동안 병원을 너무 자주 다녔더니 이제 병원 접수에는 도가 텄다.
MRI 검사도 엑스레이 검사와 비슷하게 내 건강 상태에 대한 몇 가지 질문에 답변을 해야 했다. 다만, MRI의 특이했던 점은 폐소공포증과 조영제에 대한 질문지였다. 폐소공포증은 영어로는 Claustrophobia라고 하고 독일어로는 Klaustrophobie라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폐쇄공포증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그것이다. 평소에 좁은 공간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아주 예전에 혼자 군중 속에 섞여 있다가 공포와 호흡곤란을 경험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약간 긴장 상태가 되면서 고민이 됐다. 그래도 일단은 없다고 체크를 하고 검사를 받기로 했다. (만약 폐소공포증이 있다고 체크를 하면 불안도를 낮출 수 있도록 진정제를 같이 처방해 준다고 적혀 있었다.)
이번에는 대학 병원 첫 진료날 만큼 많이 기다리지 않았다. 10분에서 15분 정도 지나자 내 차례가 되었고, 작은 탈의실로 안내를 받았다. 브래지어를 벗고(상의는 입어도 된다), 신발을 벗어야 했다. 병원 바닥이 깨끗해 보이긴 했지만, 따로 슬리퍼 같은 게 주어지지는 않았다. 사실 탈의실에서 검사실까지가 바로 코앞이라 슬리퍼가 필요하지 않은 환경이기는 했다. 내가 누워야 할 자리에 부직포 같은 종이가 깔려 있었고 머리를 기계 쪽으로 향하게 반듯하게 누우라고 했다. 배우를 하셔도 될 것 같은 잘생긴 간호사 분에게 여러 가지 설명을 간단히 듣고 난 후 검사가 시작됐다. 이런 거대한 기계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이라니 생전 처음이라 너무 신기하고 재밌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공포를 느낄까 봐 걱정도 됐다.
그런데 막상 기계 안에 들어가 보니 그 안은 생각보다 많이 갑갑하지는 않았다. 내가 상상한 건 자세를 조금만 바꿀 공간도 되지 않는 정말 좁은 공간을 생각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뇌 MRI라 그런지는 몰라도 몸 전체가 들어가지 않고 상반신만 기계 안으로 들어간 것도 덜 갑갑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도 만약에 내가 나가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한 손에 비상시에 누를 수 있는 바람 넣는 풍선 같이 생긴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안에는 바깥이 보이는 거울도 있었다. 미국 드라마에서 봤던 MRI 검사 장면에서는 내 얼굴이 정면으로 비치는 거울이 있었는데 오늘 내가 들어간 기계는 거울의 각도를 요리조리 바꿔서 누워서도 바깥에 있는 간호사 자리가 보이도록 세팅된 거울이었다. 간호사가 평화롭게 앉아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좀 안정이 되었다 (간호사가 잘생긴 것도 한몫했을지도 모르겠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은 바로 '소리'였다. 검사가 시작되면 아주 시끄러울 거라고 기계에 들어가기 전부터 헤드폰을 씌워주긴 했는데 헤드폰을 썼는데도 소리가 엄청나게 컸다. 처음엔 잘 몰라서 대충 썼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더 꽉 맞게 제대로 쓸 걸 그랬다 싶다. 소리도 일정하지가 않고, 아주 높은 고주파수의 소리가 났다가 공사장 소음처럼 낮은 소리가 나기도 하고, 마치 당장 큰일이 난 것 같은 경보음 같은 소리가 갑자기 나는 등 패턴도 종류도 엄청 다양했다. MRI 검사가 끝날 때까지 15분 정도 들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참에 명상이나 해야지 싶었지만, 이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소리 공격 때문에 도저히 평화로운 명상은 불가능했다.
검사 중간쯤에는 팔에 주사를 꽂고 조영제를 투입했다. 조영제를 투입할지 말지는 검사가 시작되기 전에 간호사와 상담하여 본인이 직접 정할 수 있다. 조영제는 검사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투입하면 좀 더 명확한 차이를 볼 수 있는 옵션 같은 거였다. 나는 가능하면 정확한 결과를 얻고 싶어 동의하고 조영제를 투입했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에 이 점이 우려되는 사람들은 검사를 받으러 가기 전에 MRI 검사나 조영제에 대해 의사와 충분히 상담하고 인터넷에서도 자세히 알아보고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나는 부작용까지는 없는 것 같았다.
조영제를 넣은 후의 검사까지 끝나고 드디어 스르륵 기계에서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다른 간호사가 와서 내 상태가 어떤지 체크해 주고 주사기를 뽑고 지혈을 할 수 있는 밴드를 붙여주었다. 아까 옷을 갈아입었던 탈의실로 다시 안내를 받았다. 1-2분 정도 지혈을 하고 있으면 간호사가 다시 올 거라고 했다. 작은 방 안에 가만히 앉아서 간호사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밖에서 간호사들의 이야기가 새어 들어왔다. 근무 분위기가 상당히 좋은 곳인 모양이었다. 다들 인사를 나누는 단어도 목소리도 유쾌하고 밝았다. 몇 분이 지나자 간호사가 노크와 함께 CD 한 장을 들고 들어왔다. 엑스레이 검사 때처럼 무진장 큰 봉투를 집까지 들고 가지 않아도 돼서 좋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CD라니 집에서 확인할 방법도 없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나는 왜 '요즘 누가 CD를 봐요?!'라고 농담반 진담반의 피드백을 줄 수 없었을까. 웃긴 건 의사가 확인할 용도로는 QR 코드를 주는데 환자인 내 개인 보관용으로는 CD를 줬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 걸까 잠시 혼란스러웠다 (참고로 이곳은 함부르크에 하나뿐인 대학 병원이다).
폐 검사보다 이 뇌검사가 더 중요한 거라 결과가 너무 궁금했지만 일단은 다음에 의사를 만날 때까지 참기로 했다. 검사가 끝난 후에는 바로 카페로 가서 과제를 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병원 앞 풍경이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10분만 누워서 책을 읽고 가야지 했는데, 그 10분 타이머를 두 번이나 반복했다.
그래도 그냥 가기가 아쉬워서 가야 하는 길도 포기한 채 공원길을 따라 더 걸었다. 잔디밭 위에 누워 제각기 평화로운 순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그러다 갑자기 철봉이 세워져 있는 곳을 발견했다. 어릴 적 생각도 나고 몸도 풀 겸 해서 가방을 내려놓고 철봉에 매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작은 꼬마 신사 한 명과 꼬마 숙녀 한 명이 할머니와 함께 나타나 내게 세상 귀엽게 인사를 했다. 독일에서 마주친 아이들 중에 인사성이 제일 좋은 꼬마 숙녀였다.
그러더니 옆에 있는 낮은 평행봉 위에 낑낑거리며 올라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내 칭찬을 기다리는 모습도 너무너무 귀여웠다. 잘했다며 박수를 쳐주니 신이 났다. 이제는 꼬마 신사까지 와서 둘이서 같이 내게 온갖 질문 공세를 해댔다.
"저 자전거 네가 타고 온 거야?"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이 기구로 뭐 연습하고 있었어?"
등등 온갖 질문이 레고 블록처럼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일단 나는 아이들에게도 낯을 가리는 성격에다가, 질문 블록이 너무 우르르 쏟아지기도 했고, 아직 버퍼링이 많이 걸리는 내 독일어로는 아이들의 질문을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턱걸이*를 말하고 싶었지만 독일어로 뭐라고 하는지 단어를 몰랐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벙쪄 있자 할머니 분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 아이들은 모든 걸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해요 :)"
할머니의 중재 덕분에 곤란하던 아이들의 질문을 슬쩍 피하고 조금은 데면데면하게 같이 철봉 놀이를 하며 계속 놀게 됐다. 너무 빠른 속도로 여러 개를 묻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아이들과 소통은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감격스러웠다. 유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이었던가, 친구의 딸들과 함께 당나귀 타는 곳에 놀러 갔다가 친구의 딸과 나 둘이 남겨진 적이 있었다. 친구의 딸이 타고 있던 당나귀의 고삐를 내가 잡고 끌어줘야 했는데 당나귀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갑자기 바뀐 당나귀의 태도에도 당황스럽던 차에, 잘 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자기 당나귀는 멈춰있자 내게 짜증을 내듯 말하는 친구의 딸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날이 생각났다. 독일어를 못해도 바디랭귀지든 영어든 말하면서 좀 어깨 펴고 당당해도 됐는데, 나는 그저 아이들의 수준만큼의 독일어도 못하는 나 자신이 못나게 느껴졌고, 매일 이렇게 원하지 않아도 걸어야 하는 당나귀들이 불쌍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었다. 그래도 지금은 누구의 도움 없이 이 정도 소통이 되는 게 얼마나 큰 발전이란 말인가.
요즘 병원을 다니면서도 많이 느낀다. 물건을 살 때야 말을 잘못 이해해서 뭘 좀 잘못 사도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내 건강은 다르다. 100%는 아니더라도 80%는 이해를 해야 안심이 된다. 그래서 예전엔 무조건 영어가 되는 의사를 찾아다녔다. 이번에는 굳이 언어를 기준에 넣지는 않았다. 영어를 쓴 적도 있지만, 점점 독일어를 쓰는 비중이 늘었다. 보통은 내가 이해를 못 하면 내가 말하든 의사나 간호사가 말하든 영어로 바꾸기 마련인데, 제법 이해가 잘 되었다. 만약 옛날 초급 독일어 실력 그대로였다면 병원에 가야 하는 하루하루가 더 큰 스트레스였을 거다. 독일어가 잘 안 느는 것 같아 속상하다가도 이런 순간들이 오면 또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해진다.
'독일 꼬마랑 대화도 못 나누던 내가 MRI 검사 설명을 독일어로 알아듣다니!!'
근데 어쩔 땐 꼬마들의 말이 이해하기 더 어렵기도 하다. 아이들의 생각이 예측 불가라서 그런 점이 크다. 그래도 나중에 조카랑 잘 놀아주려면 아이들의 대화 방식에도 익숙해져야 하는데 이렇게 어색해서야. 어쨌든 이제 다음 약속 장소로 향하기 위해 철봉을 떠나야 할 순간이 왔다. 이제 가야 한다고 인사를 하자 꼬마 숙녀가 처음의 그 강력한 인사를 하던 목소리로 말했다.
"왜??? (Warum?)"
그러게. 나는 왜 가야 할까. 너무 평화롭고 따뜻한 이 시간과 공간을 뒤로하고 나는 왜 가야 할까. 아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다시 현실적인 나로 돌아온다.
"일하러 가야 돼 :)"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데? :)"
"카페에서 과제해야 돼 :)"
초면에 구구절절 나를 설명할 수 없으니 대충 일하러 가야 한다고 대답했는데 또 생각지도 못하게 구체적인 질문들이 훅훅 들어왔다. 아이들의 이 순수한 질문이 당황스럽지만 재밌다.
"몇 학년인데??"
이번엔 꼬마 신사의 질문이었다. 과제라는 단어만 듣고 늦깎이 유학생인 나를 학생으로 봐주다니 이 순수함이란! (독일에서는 초중고를 다니는 학생이라는 말과 대학생이라는 말이 명확히 구분되어 쓰인다)
"난 대학생이야."
"오, 이번엔 내가 흥미가 생기네요. 무슨 공부를 하고 있나요?"
내가 대학생이라는 말을 듣더니 이번엔 할머니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렇게 꼬마들과의 대화가 갑자기 할머니와의 스몰 토크로 번졌다. 할머니는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 교사라고 하셨다. "독일인에게 영어가 다른 언어들에 비해 배우기 쉬운 편인가요?"라는 나의 질문에 역시 전문가답게 독일어와 영어가 같은 언어를 뿌리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렇게 서로 영향을 받은 언어들을 설명해 주시다가 가을을 뜻하는 'autumn'이라는 단어 끝에 왜 'n'이 붙는지도 설명해 주셨다. 'autumn'에서 'n'을 실제 발음은 되지 않지만, 굳이 단어 끝에 붙어있는데 그 이유는 이 단어가 'autumnus'라는 라틴어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이 또 흘렀다. 할머니와 내가 대화를 할 수 있게 한동안 조용하던 아이들이 더 이상 못 참겠는지 할머니를 부르기 시작하고 나서야 우리의 스몰토크가 끝났다. 할머니는 내 논문을 응원해 줬고 나는 할머니와 손주, 손녀들의 재밌는 오후 시간을 빌어주며 돌아섰다.
"건강하세요, 할머니. 건강하게 자라렴, 꼬마들"
*참고로 독일어로 턱걸이는 Klimmzug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