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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Aug 11. 2024

독일 휴가철이 매년 바뀌는 이유



독일 대학과 한국 대학의 방학 차이



“이제 방학이야?”




학교를 다니지 않는 동료들이 요즘 나와의 스몰 토크를 이렇게 시작하곤 한다.



“방학은 방학인데 방학이 아니야 하하”




나의 대답은 매번 똑같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업은 끝났지만, 제출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고, 그 마감일이 꽤 뒤라 방학의 3분의 2는 과제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의 재량에 따라 달렸다. 내가 과제를 미리 해서 빨리 끝냈다면 방학이 빨리 찾아오는 것이고, 미뤘다면 거의 여름 내내 그 ‘마감 스트레스’를 일정 부분 품에 안고 여름을 보내는 것이다.


과제를 하는 스타일은 여기도 다양해서 어떤 친구들은 성실하게 미리미리 하지만, 또 어떤 친구들은 ‘아 일단 놀아!’ 하고 저 깊은 곳으로 ‘과제 부담’을 밀어 넣어놓고 신나게 놀다가 마감일이 닥쳐서야 한다. 나는 평생을 후자로 살았던 미루기 대장이었던지라 대부분 후자에 속한다.


어렴풋한 내 기억 속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늘 너무 촉박하게 느껴지는 시험 날짜나 과제 제출일이 스트레스였다면, 지금 내가 다니는 대학은 반대로 과제 기간을 두 달이나 줘서 방심하고 미루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 대학 다니던 20대의 나는 밤늦게까지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면서 하얗게 불태운 뒤, 또 남은 방학도 불태우며 신나게 놀았다.

하지만 독일에서 유학하는 30대의 지금의 나는 잔잔하게 과제(에세이)를 둥글둥글 이리저리 굴리며 여유를 부리다가 마감일이 닥쳐오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끝에 잠깐 불이 붙는다.



과제 모드 ON (c) 2024 noi



그나저나 한국 대학교의
방학 기간이 어느 정도였더라?



한국 대학을 졸업한 게 10년도 더 된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서 검색해 보니 한국 대학의 여름 방학은 대략 6월 말에서 8월 말이라고 한다. 대략 두 달 정도인 셈이다.

과제나 시험 마감일을 제외하고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독일 대학의 방학을 세어 보니 약 세 달 정도 된다.

예를 들어 종강이 7월 15일이라고 하면, 다음 학기 시작이 10월 15일이다(독일은 학기가 시작되고 끝나는 일정 시스템 자체가 한국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그리고 우리 과의 경우 과제 제출 마감일이 대부분 9월 15일이다. 종강 후 약 두 달의 시간을 주는 것이다.


갓 입학했을 때는 과제 기간도 정말 여유롭게 주고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학년이 좀 차니까 그냥 마감일을 한 달 정도 더 당겨주지 싶다. 그럼 어쨌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라도 과제를 다 끝나고 남은 시간을 편안하게 보낼 텐데 싶은 생각이 최근에 들었다. 그런데 이건 내 생각이고, 이렇게 마감 기한이 여유로운 것을 간절히 원하는 학생들도 있다.


독일의 모든 대학의 방학 시스템이 이런 것은 아니다. 함부르크 예술대학교에 다니는 친구의 말로는 그곳은 정말 딱 종강일까지 발표나 전시를 마치고 나면 다음 학기까지 자유다. 아마 다른 대학은 또 조금 다를 지도 모른다. 최소한 내가 사는 도시의 대학들은 그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도 과제나 시험일이 다를 뿐 개강하고 종강하는 시기는 비슷한 편이다.


함부르크 공항 (c) 2024 noi



독일 초중고 방학 시스템의 큰 그림



대학교의 방학이 학교마다 혹은 과 특징마다 조금씩 다르다면, 독일의 10대들이 다니는 학교의 방학은 더 신기하다. 모두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방학을 하고 개학을 하는 한국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한 번에 길게 길게 쉬는 한국과 달리 짧게 여러 번 쉬는 것도 큰 차이지만, 독일은 주마다 방학 일정이 다르다. 그것도 해마다 방학 일정이 바뀐다. (주’라는 행정 구역을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도’와 비슷하다) 적게는 하루 이틀 정도 차이가 나지만 많게는 한 달 정도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일정을 바꾸는 가장 큰 목적은 누가 가장 먼저 방학을 시작할 것인지 순서를 정하기 위해서 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주가 23년에 가장 먼저 방학을 시작했다면, 그다음 해인 24년에는 B라는 주가 가장 먼저 방학을 시작하고, 이런 식이다.



팔마 공항 (c) 2024 noi



이유가 뭘까?



몇몇 분들은 짐작했겠지만 바로 휴가로 몰리는 사람들을 분산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모든 가족들이 동시에 또는 비슷한 시기에 방학을 시작했다가는 도로는 차들로 넘쳐나고, 기차역이나 공항은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며 표를 구하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호텔 같은 숙소 예약도 어려울 것이고, 그만큼 스트레스 풀려고 떠나는 여행객들에게 스트레스가 가중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이렇게 방학 시기를 분산시키면 사람들의 휴가 일정이 덜 겹치면서 숨통이 트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는데, 그건 바로 관광지의 경제를 고려한 것이다. 만약 모두 똑같은 기간에 6주 간 방학을 한다고 치자. 그럼 관광지는 오직 6주 간만 손님이 오고, 그 전후로는 바로 비수기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방학을 분산시켜 놓으면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기간도 더 늘어나고 돈을 버는 기간도 늘어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여행객들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관광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인 시스템이다.


처음엔 ‘왜 독일 학교는 일정이 이렇게 다를까’ 궁금해서 구글링을 시작한 건데, 이렇게 명확한 이유를 알고 나니 이거야말로 한국에 필요한 시스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꽉 막힌 도로, 치열한 티켓팅과 숙소 예약, 단기간에 수익을 올리기 위해 대범하게 쑥쑥 오르는 관광지 물가로 고통받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말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더 늘고 있으니 짐작컨대 그 경쟁이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덜 하진 않을 것 같다. 물론 여기에도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따라붙기는 하겠지만, 실행이 가능하다면 조금은 휴가철 스트레스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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