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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Oct 06. 2024

브런치는 왜 브런치일까


최근 한국을 다녀왔다. 사랑스러운 조카를 처음으로 만났고, 작년에 이어 올해 새로운 가족이 또 늘었다.

가족들, 특히 조카와 함께 하는 시간은 너무 행복했지만, 저질 체력인 이모는 수면 부족과 함께 피로에 시달렸다.



너무 작은 조카의 고사리 같은 손 (c) noi 2024



그래서 브런치를 한동안 못썼다.

처음에는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한 주, 또 한 주가 지날수록 그것은 점점 희미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글을 찾는 사람도, 글을 빨리 쓰라고 독촉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안 써도 괜찮구나.’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회색 지대 그 어딘가에서 묘한 감정이 몰려들었다. 애초부터 늘 부지런하게 쓰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브런치북 연재라는핑계로 최근 몇 달 간 매주 빼먹지 않고 썼었는데 그 흐름이 끊기니 중요한 일을 빼먹은 기분이 들었다.


찾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 서글프면서도 누구에게도 미안할 사람이 없는 조촐한 브런치라서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브런치앱에서 ‘늦게라도 글을 쓰세요’라고 알림이 왔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 보내는 메시지라는 걸 알고 있는 이상, 그 알림이 크게 내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이대로 그냥 안 써도 되지 않을까, 연재 중단까지 생각이 미쳤다.




논문 등록하러 학교 간 날, 행사로 떠들썩했다 (c) noi 2024




이제 진짜로 논문을 써야 하는 학기가 코 앞에 닥쳤다. 지도 교수님께 논문 등록을 위해 정식으로 면담도 하고 왔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아니, 시작되었다. 시간은 늘 그렇듯 흘러가고, 나는 당장의 압박감에서 도망치려고 이런저런 핑계를 찾는다. 그래, 이런 상황에 브런치 글을 안 쓴다고 해도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은 없다.집 밖을 나설 때마다 늘 걷던 그 길들을 걸으면서 몇 번이나 연재를 그만두자고 다짐했다. 그래도 된다고 나를 다독였다. 그런데 집에 오면 그 다짐을 잊었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얼른 다시 글을 써야 하는데...’ 글감을 떠올렸다. 그러다 또 길을 걸으면 또 다짐하고 집에 돌아오면 또 잊었다. 다짐을 하고 잊기를 반복하는 내 마음속 깊은 진심은 어쩌면 그만두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내가 왜 브런치를 시작했는지, 왜 이 독일 유학 브런치북을 만들었는지 과거로 시간을 되감아 본다. 6개월 만에 벌써 빛이 바랜 초심이라는 것을 더듬더듬 찾아 그 감촉을 느껴본다. 그래, 맞다. 더 많은 좋아요나 응원도 좋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의 기록을 위해 쓰고 싶었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를 위해서. 기록하지 않은 수많은 생각들이 가라앉는 것을 지켜봐왔다. 그리고 제법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또 쓰다보니 힘이 들어갔다. 힘이 들어가니 좀 지치기도 했던 것 같다. 한국 여행이라는 핑계로 쉬게 된 연재지만, 어쩌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푹 쉬면서 다시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었나보다.



이제는 좀 가볍게.

생각을 조금 더 덜고.

힘을 빼고 써보기로 했다.

그래, 정말 브런치처럼.


브런치는 왜 브런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오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알 것 같았다.



내 머릿 속의 브런치 (c) noi 2024




브런치의 사전적 의미는 늦은 아침과 이른 점심을 겸해 먹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내 머릿속에는 아침이나 점심처럼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는 식사보다는 가벼운 메뉴들이 생각난다. 한상 든든하게 차려먹어야 밥 같은 한국인에게 미국식 브런치 메뉴는 너무 가볍지는 않으면서도 적당히 든든한, 그러니까 식사와 간식의 중간 같은 느낌이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브런치 아닐까?

그런 글을 쓰라고 브런치라고 이름 지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일기장보다는 정돈되고,

하지만 정식 출판되는 책보다는 가벼운.


그래서 조금 더 많이 가볍게 써보려고 한다.

길이가 더 짧아질 수도 있고, 올라오는 시간이 더 불규칙해질 수도 있지만.

내 진심은 적어도 지금 타이핑을 멈추고 싶지는 않다.

다시 시작해 보자.

서른일곱 살의 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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