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째 학사는 독일에서’ 브런치북이 최대 연재 분량이 다 차서 발행이 되지 않아 이번 주 부터는 예전에 쓰던 매거진에 올립니다. 논문을 다 쓸 때 까지는(올해말) 여기에 올리고, 내년부터 브런치북은 새롭게 준비하겠습니다.
이번 주는 함부르크에 첫눈이 내렸다. 밖을 걷는 것도 꽤 춥지만, 빠지지 않고 수영을 다니고 있다. 평영 발차기가 너무 어렵다. 할수록 더 균형을 못 잡고 기우뚱 거리는 내가 웃기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정말 많이 늘었다. 처음 써보는 논문이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턱턱 숨이 막힐 때가 많은데, 이렇게 소소하게 성취감을 느끼는 취미를 병행하는 게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체력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논문 학기가 되면서부터 나는 학교에 잘 가지 않는다. 수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 이 학교 도서관, 저 학교 도서관, 카페 등을 전전하며 논문을 쓴다.
예전에 논문 학기에 논문을 쓰면서 알바도 하면서 다른 과목 시험도 같이 보는 과동기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 친구는 독일인이라 나보다야 공부가 더 수월하긴 하겠지만,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어로 논문 쓰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니듯 그 친구에게도 쉽지만은 않았을 일이다.
나는 다행히 마지막 학기 동안 모든 과목을 끝내고 논문에만 집중할 수 있다. 더러는 한 두 과목 정도를 남기고 논문을 먼저 쓴 뒤에 남은 과목을 마무리하고 졸업하는 동기들도 적지 않다. 정말 시간이 없어 못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일부러 졸업을 늦추기 위해서 그러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는 휴학을 두 번 했었다. 한 번은 일본에 워홀 다녀오느라 썼고, 그다음 한 번은 워홀 갔다 왔더니 취업 준비고 뭐고 감을 정말 잃어서 취업 준비한다며 1년을 더 쉬었었다. 그때는 졸업해서 백수인 채로 면접에 지원하는 것보다 졸업이 좀 늦어져도 학생 신분으로 지원하는 게 더 유리하다는 그런 분위기 같은 게 있었다. 아직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 됐든 졸업이 원래 계획된 학교 프로그램의 4년보다 2년이 더 늦어진 셈인데 딱히 내 졸업이 늦어지는 점에 대해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있었다. 내가 다니는 학부는 기존 계획이 3년으로 계획된 프로그램인데 이 3년을 넘겼더니 왜 공부를 연장하는지에 대한 사유를 학과 담당 교수님과의 면담 하에 사유서 같은 걸 제출해야 했다. 처음에는 덜컥 겁이 났는데, 우연히 이야기를 나눈 다른 외국인 학생으로부터 별 거 아니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안심이 됐다.
일단 이메일로 연락이 온다. 그러면 제출해야 하는 서류의 양식도 같이 전달받거나 학교 시스템에 업로드가 되어있다. 그 서류 양식은 직접 출력해서 준비한다. 다음은 담당 교수님과 면담 시간 예약을 잡는다. 교수님을 뵙기 전에 왜 내 공부가 기존의 계획보다 연장되었는지 이유를 생각해 가야 한다. 내가 직접 쓸 필요는 없다. 그렇게 이유를 생각해서 가면 교수님이 물어볼 때 간단히 답을 하면 된다. 나는 언어와 아르바이트라고 답했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공부하기 때문에 속도가 느리다는 점, 그리고 생활비 충당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서 시간이 부족한 점 등을 간단히 이야기했다. 구구절절 이야기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자 내 이야기를 들은 교수님이 나는 절대 알아볼 수 없는 필기체로 4-5줄 정도로 요약하여 서류에 적은 후, 서명을 해준다. 그러면 그것을 처음에 연락받은 부서로 직접 제출하거나 이메일로 제출하면 끝이었다. 직접 해보니 굉장히 형식적인 것 같은데 왜 굳이 이렇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악용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려나? 성실히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큰 문제없는 것 같긴 하다.
그렇게 무사히 면담을 넘기고 졸업이 코앞에 닥친 요즘, 매일밤 생각한다.
‘내가 과연 이 논문을 끝까지
잘 쓰고 졸업할 수 있을까?’
학사 두 개씩이나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냥 수료만 할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아니다.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둬야지. 여기까지 왔는데 두려움 때문에 끝을 흐지부지 매듭짓고 싶지는 않다. 할 수 있다. 잘하고 있다. 오늘 밤도 최면을 걸면서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