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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n 23. 2022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어때?

독거미의 여파를 정리하다

응급실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집을 옮겼다. 독거미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다음 떠오르는 질문은 비슷했다. 내가 도대체 언제 어디서 독거미에 물렸던 걸까. 이윽고 아주머니가 말했다.


당장  집에서 나와야 .”


나도 이상한 것이라곤  집뿐이. 그런데 어떻게 다짜고짜 그냥 집에서 나올  있단 말인가. 중국집 아주머니랑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아닌가? 자초지종을 지는 뭔가 절차라는 것이 어야 하는  아닐까. 눈은 반쯤 감기고 아직도 어지러운데, 아주머니단호하게 나에게 말했다.


“써니, 내가 했던 말 기억하니? 너의 그 특별함 때문에 우리가 친구가 된 건 사실이지. 하지만 가끔씩 넌 한국에서처럼 행동할 때가 있는 것 같아. 네가 외국인인 것은 맞지만 여긴 남아공이야. 남아공에 왔으면 남아공 사람들이 사는 방법을 따라야지.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도대체 내가  얼마나 외국인처럼 행동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내가 다른 한국 유학생들이랑 닮은 구석, 그래 별로 없다. 그렇다고 다른 한국인들은 얼마나 남아공 사람들과 닮게 살고,  아프리카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다르게 사는 건가. 남아공에서 살아가야 하는 법칙은  뭐가 얼마나 다른 건가. 아주머니가 뭐라고 말씀하시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뭔가를 묻고 따지기엔 몸과 마음이성을 짓누르고 있는  같았다.


택시를 타고 돌아가서 어제 들고 왔던 이삿짐 그대로 다시 들고 나왔다. 할아버지 댁은 내가 머물 곳이 없었고, 아주머니께서 바로 옆집 게스트하우스에 사정을 말하고 방을 잡아주셨다. 이민가방을 방에 내려놓고 정신없이 쓰러져 누워있는  귓속에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같았다.


“써니는 그 집을 나갈 겁니다. 당신 집에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자세한 것은 곧 알려드릴게요.”


중국인 아주머니에게 전화하신  같은데.. 한국에선 한국의 법을 따르고,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듯이, 남아공에서는 남아공의 법을 따른다... 도대체 남아공 사람들의 사는 법은 무엇일까. 모를 일이다. 그렇게 지쳐서 나는 다시 잠에 들어버렸나 보다. 기억이 나지 ...


그렇게 나는 갑작스레 아주머니 옆집, 어느 화려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게 되었다. 처음 며칠은 약만 바르다 하루가  지나갔다. 내가 가진 약은 3가지,모두 상처부위에 바르는 약이. 하나는 분홍색, 하나는 하얀색, 하나는 투명하다.  3가지가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법은 같았다.  가지  하나를 먼저 바르고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씻어내고  번째 약품을 바르고 똑같이 반복, 마르고 나면 다시 씻고  번째 약을 바르고 씻는다. 말은 간단한  같지만, 이걸 하루에 3번씩 바르라고 하니  9번을 씻고 바르고를 반복해야 .  

 

문제는 약을 발라야 하는 곳이 왼쪽 , , 다리까지 내 몸 반쪽 모두에 있었다. 아직은 싸늘한 기운이 남아있는 남아공의 봄날. 나는 처음으로  세상에는 상하의는 있으면서 오른쪽 왼쪽 옷은 없는 걸까라는 엉뚱한 질문을 떠올렸다. 나중에는 옷을 입고 벗는 것이 귀찮아져서 9번의 약을 바르기 위해 거의 9시간을 욕실에 누워있었다. 태어나 처음 자쿠지가 있는 개인 욕실에 앉아 있는데,  어느 때보다도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고 싶은 순간이지만,   자쿠지는 그저  시간이고 약을 바르고, 마르기 기다리고, 씻어내고 바르고를 반복하는 인내의 공간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머물게 된 하얀 솜사탕 같이 폭신폭신한 게스트 하우스의 침대에서 맞이하는 아침.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경치 좋은 이국에서 늘어지게 늦잠자고 눈부신 햇살에 눈을 비비며 오늘은 또 어떤 신나는 일이 일어날까하며 기대하는 관광객이었다면  아침이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고 폭신했을까.


우리나라와 위아래180, 정반대의 이국땅에 있는건   같은데 라는 사람은 똑같은  . 마음이라는 것이 사람이 아플  어디에 있든 똑같다. 아무도 없는 휑한 한국의 기숙사 방에서 혼자 아플 때나,  이국땅 게스트하우스에서 아플 때나 어디든 똑같이 아프고, 슬프고, 외롭다.


그렇게 거미에 물린  1주일도 지나지 않았건만 눈만 뜨면 우선 멍부터 리게 되었. 그러다 불현듯 생각나서 다리를 쳐다본다. 왼쪽 팔을 지나 , 허벅지, 종아리에  붉고 노란 피고름 물방울들을 따라 보다가 발목에서 눈길이 멈춘다.

 

이게 진짜 독거미가 물었다는 거지. 근데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진짜 왼쪽에만   있는 거지? 진짜 독이  몸에 퍼졌다는 건가?  몸속이 이렇게 연결되었다는 건가? 과학시간에 해부도만 봤지 이렇게 진짜 연결된 건지 몰랐는데. 정말 신기하긴 하네.’


그래도 조금은 마음 편안해졌나보. 병명이라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 . 나도 모르는  몸의 변화 이유를 알았다는 .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치가 떨리게 무서웠던  몸이 오늘은 절반은 무섭고, 절반은 신기하다.


어이없다는 것을 알지만, 나도 거미에 물렸으니 혹시나 스파이더맨처럼 특별한 능력이 생긴건 아닐까 싶어 괜히 오른손 중지와 엄지만 둥그렇게 모아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이 나올것처럼 손을 쭈욱 뻗어. 당연한 이야기지만, 역시나 거미줄은 나오지 . . 혼자 있음에도 민망해서 헛웃음이 . 스파이더맨이 된다면 비행기도 없이 거미줄을 발사해서 건물들을 넘나들다 어느새 한국까지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 아니면 그런 초인적인 능력까진 아니더라도 안경  벗어버리게 시력만이라도 좋아지면  정도 흉터들은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같은데 말이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서 게스트하우스 아저씨께 나가. 2  지붕을 수리하는 중이신 아저씨. 이제 3 남짓 남은 남아공 월드컵을 맞이하기 위해 케이프타운 주변은 사방이 공사 중이. 특히 케이프타운 스타디움이 생겨날 그린포인트 지역에는 여기저기 주택과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스타디움 바로 맞은편에는  층이 될지 모르는 호텔 건물이 올라가는 이었는 과연 월드컵 전에 완성될지는 모를 일이. 사실 케이프타운에서 월드컵을   있을지부터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척이나 느릿느릿 돌아가는 공사상황때문이었다.


학원가는 , 공사장을 지나쳐가면 아무도 없었다. 나보다 일을 늦게 시작하다니. 점심때가 지나 집으로 가는 스치는 공사장에서는 인부들이 오후의 태양을 피해 나무 아래 누워있었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는 저녁시간에도 퇴근시간만은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처럼  아무도 . 아마 한국 사장님들이 오셔서 건물을 짓는다면 속이 타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애간장이  녹을  같았. 저렇게 공사해서 이번 월드컵이 아니라 다음번 월드컵을 유치하려고 저러나 싶었지만, 그래도 커다란 건물을 빼고는 여기저기 새로운 게스트하우스, 카페, 음식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 아저씨 댁도 그중 하나였다. 월드컵 시즌에 맞춰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개인집을 고치고 계셨다. 물론 속도는 스타디움이 올라가는 것보다 빨랐다.

 

옥상 바닥을 다지고 계시는 아저씨 옆에 쪼그리고 앉아 을 건냈.


“아저씨, 제가 독거미에 물렸대요. 그래서 다리가 이렇게 된 거래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도, 빼지도 않고   마디 건네었을 뿐이지만  마음은 생각보다 너무나 편안. 어떠한 현상에 대해 설명할  있다는 , 이유가 있다는 . 그걸 안다는 것. 알아서 편안해질때가 바로 이런 경우인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아저씨께서 물었.


“얼마나 여기에 머물 예정이니?”


잊고 있었다. 여기가 내 집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게요 아저씨. 잘 모르겠네요...”


갑자기 멀뚱히 앉아 생각하는 나를 힐끔 보고 아저씨가 이어 말하신다.


“나는 어차피 집장사하는 사람이니까, 지금은 네가 내 손님이란다. 네가 원하는 만큼 머물러도 괜찮아. 푹 쉬면서 몸조리하렴.”

 

가만히 방으로 돌아와 생각했다. 거미의 독기운이 퍼져간 몸속에선 해독제의 기운으로 생기를 찾아가고 있었지만 그제야 잊고 있던 현실세계의 기억들이 올랐. 중국집.  하룻밤을 지내고 독거미에 물려 전쟁 통에 피신하듯 이민가방만 급하게 들고 나왔었다.


학원 수업도 이제야 생각이 . 며칠을 빠진 거지? 그리고 한국의 우리 . 집에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병원비. 맞다. 생각해보니 여기는 하룻밤에 얼마나 내야 하는 거지? 병원에서는 절대 안정이라고 했는데... 순식간에 마법의 봉인이 풀려버린 마냥 그동안 뭉쳐있던 모든 걱정들이 시커먼 독을 품고  머릿속을 잠식시키는 것 같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까만 밤이 되면 그 밤이 비슷한 색의 어두운 생각들을 데리고 잠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

 

다음날,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가만히 있을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학원도, 병원비도, 중국집도, 게스트 하우스도, 그리고 앞으로 어디에 머물 것인지 등등 나를 기다리는 문제들이 쌓여 있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밖으로 나와 바로 옆집 흑인 아주머니 댁을 갔다. 언제나 그렇지만 아주머니 댁의 분위기는 천도복숭아의 황금빛 포근한 햇살이 감싸는 느낌이다.

 

 “그동안 너무 감사했어요. 아주머니께서 응급실에 데려다주시지 않았다면 거미에 물렸는지도 몰랐을 것이고, 약도 지금껏 필요 없는 것까지 바르느라 더 힘들지도 않았을 거고, 사실 아직도 얼떨떨하긴 하지만 어쨌든 감사할 뿐이에요.”


어머, 써니야. 얼굴이 이제야 조금 햇살 같구나. 괜찮아져서 다행이다. 지나서 하는 말이지만 나도 정말 깜짝 놀랐다. 독거미라니. 나도 처음 . 현지인들도 물리지 않는 특이한 경험을 했네.”


그러더니 갑자기 훅 질문을 건네셨다.


“혹시 너랑 아프리카랑 맞지 않는 게 아닐까?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어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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