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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n 27. 2022

럭비도 월드컵이 있다고?

부부젤라와 넬슨 만델라

몸이 조금 건강해지고 나서부터 다시 어학원의 일상을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출퇴근 시간의 부산한 메인로드 거리에 경쾌한 소음까지 가득  것이 특이한 아침이었다. 일반 출근용 자가용들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인 버스와 미니버스까지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남아공 국기가   걸러 다음차로 펄럭이고 있었다.


평소에는 버스 안에서 승객을 태우려고 호객을 하던 티켓 판매원들도 남아공 국기를 흔들며 부부젤라를 불어대고 있었다. 부부젤라 소리 하나 구급차 소리처럼 희미해지기도 전에 다른 부부젤라 소리가 고막을 뚫고 들어오는 아침. 부부젤라와 남아공 국기를 보니 지난밤 어렴풋이 봤던 럭비 월드컵과 관련된 뉴스가 떠올랐다.


2002 월드컵을  몸으로 기억하는  세계에 월드컵은 축구만 있는  알았다. 그런데 럭비도 월드컵이 있다는 것을 남아공에 와서 처음 알았다. 럭비 월드컵은 1987년에 시작된, 나와 나이가 같은 아직 젊은 축에 속하는 국제대회였.  대륙에서 몇몇 국가들이 예선을 걸쳐 월드컵에 출전하게 되는데, 축구월드컵에서는 낯선 국가들이 럭비월드컵에선 강한 나라들몇몇 있었다.


2007 럭비 월드컵은 프랑스에서 개최되었는데,  20개국이 참가했고, 아프리카에서는 나미비아와 남아공,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아르헨티나와 캐나다, 미국, 유럽에서는 잉글랜드, 프랑스, 아일랜드, 이탈리, 루마니아, 스코틀랜드, 조지아, 포르투갈, 웨일스가 참가했다. 한국이 속한 오세아니아/아시아 대륙에서는 럭비가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알았는데 일본이 럭비 월드컵에 올랐고, 호주와 뉴질랜드뿐만 아니라 태평양의 작은  국가인 피지와 사모아 통가가 이번 럭비월드컵에 올라와 있었다.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까지 3개의 팀으로 따로 참가했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예전 영국의 통치를 받았거나 현재 영국 연방에 속한 나라들이라 그들의 리그, 축제인  보였지만, 적어도 그들 안에서는 럭비 월드컵이 축구 월드컵만큼이나 대단한 행사임을 남아공 현지에 있으니 느낄  있었다.


특히 남아공에서는 럭비 월드컵이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정치와 인종, 문화의 영역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소중한 행사였다. 남아공의 럭비 월드컵 하면 함께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다. 물론 남아공 하면 어떤 분야에서나 빼놓지 않고 떠올릴 그의 이름이긴 . 하지만 그를 떠올리면 바로 떠오르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마지막 지점의 파노라마 장면  놓지 않고 나오는 사진이 바로 1995 남아공 럭비 월드컵 사진이었다. 왜냐하면 넬슨 만델라 대통령 재임 시절, 남아공이 처음으로 럭비 월드컵에 참가했고, 개최국이었으며, 심지어 우승까지 거머쥔, 처음으로 흑과 백으로 통합된 남아공이 이뤄낸 드라마 같은 행사였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느 인종에 상관없이 누구나 럭비 월드컵에 열광하고 아침부터 부부젤라를 불러대지만, 사실 럭비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 이전,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는 백인만 선수가 될 수 있고, 그래서 백인들만 할 수 있는, 백인들의 스포츠였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아공이라서 그 영향으로 축구는 흑인, 럭비는 백인들의 스포츠로 여겼고, 그래서 심지어 남아공 럭비팀이 경기를 하면 남아공 흑인들이 상대 국가를 응원했을 정도로 럭비는 사실 흑인이 대다수인 남아공에서 그들을 차별했던 백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아픈 스포츠였다.


그런데 원래 스포츠를 좋아했고 로빈 아일랜드에 수감되었을 때도 복싱으로 인내의 시간을 견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스포츠가 가진 특별한 힘을 믿었다. 그래서 그는 아파르트헤이트가 공식적으로 끝나고 처음으로 백과 흑이 단합된 남아공으로서 처음 개최하는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민족 단합의 큰 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남아공의 럭비 국가대표팀의 이름은 아프리카 서남부 지역인 남아공과 나미비아 지역에 서식하는 스프링복, 영양을 마스코트로 가진 '스프링복스'였다. 그리고 정말 영화처럼  남아공 럭비팀인 스프링복스가 넬슨만델라 대통령과 함께 처음 출전한 럭비월드컵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럭비를 백인들의 스포츠만이 아닌 남아공의 스포츠로 탈바꿈시켰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만들었던  당시 슬로건이 바로 "One team, One country (하나의 , 하나의 나라)"였는데,  이후 적어도 럭비 월드컵동안 만큼은 럭비가 남아공 사람들을 정말로 하나의 , 하나의 나라로 만드는 힘을 가지는 듯했다.


그렇게 스프링복스가 첫 우승을 하고난 12 , 그러니까 2007 남아공 럭비팀이 프랑스 럭비 월드컵에서  번째로 우승을 했다. 내가 지금,  남아공에 있을  말이다. 생각해보라. 우리나라가 2002 월드컵  4 진출은 물론 결승에 올라가 우승까지했다면, 우리나라의 거리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그러니 오늘, 남아공  나라가 축제분위기인 것은 외국인이며 럭비의 럭자 처음 들어본 나만 빼고 어느정도 모두 기대할 수 있는 일이었. 거짓말이 아니라 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2002 월드컵을 붉은색에서 초록색으로 색깔만 바꾼 풍경 같았. 럭비 월드컵이 시작된 날부터 남아공팀의 럭비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거리가 조금은 시끄러웠을 텐데, 나는 럭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었다. 그러다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을 하고 나니 길가에는 모르는 강아지도 남아공 강아지라면 부부젤라를 불고 있을  같은 상황이 되어 있었다.


어학원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어학원에서는  가지 공기가 존재했는데 영어 선생님 자격증 과정을 공부하는 현지인반과 일반 영어과정을 배우는 외국인반의 공기가 달랐. 우리는 어느 정도 수업이 가능했지만, 현지인 자격증반은 그냥 공부가 불가능한  같았다.


럭비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때문에 샛길빠질 때마다 누군가 다시 방향을 잡아서 수업을 이어가긴 했는데, 갑자기 창문 밖으로 거대한 트럼펫과 부부젤라, 함성 소리가 점점  가까워 오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알라딘에서 거리의 부랑자였던 알라딘이 램프의 요정인 지니를 만나 알리 왕자님으로 변신한 , 거대한 코끼리와 악단, 서커스단을 데리고 성문을 행차할  거리의 찻잔과 조명이 지진을 느끼듯 조금씩 요동치고 창문이 파르르 떨리던 것처럼 무언가 대단한 것이 어학원  거리를 향해 오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뭐지 하고 돌아보는데 나는 이미   늦었다. 이미 거의 모든 학생들이 거미처럼 창문에 바짝 붙어 거리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겹겹이 쌓인 패스트리처럼 이미 창가 쪽에는 학생들로 가득  있어서 나도 바깥 상황이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안에  겹을 더하고 싶진 않았다.  발짝 멀리 떨어져 나와 남은 창문은 없는지 둘러보고 있는데, 마침 어딘가를 향해 나가는 현지인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손을 양쪽으로 들고 어깨를 들썩하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니  친구가 조용히 말했다.


"따라와"


워낙 한치가 급한 상황인  부리나케 떠나길래 어디로 가느냐 묻지도 않고 바짝 그를 따랐다. 비상계단을 따라  층인지도 모르는 곳의 문을 열었더니 건물  지상주차장이 나왔다. 차를 타러 가나 했더니 주차장 벽면의 환풍기 쪽으로 다시 비상계단을 올라섰다.  명이 겨우 올라갈 정도계단이라 멀뚱히 서있으니  친구가 조금 옆에 다른 계단을 가리켰다. 그 옆 계단으로 재빨리 올라가 환풍기  창문을 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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