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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l 01. 2022

남아공에서 잃어버렸다는 것은 다시 못찾는다는 의미야

케이프타운 두 번째 달

남아공에   어느새  번째 달이 다가. 그동안 나에겐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매일  , 독거미가 다녀간 흔적 위에 분홍색 연고 바르기.  바지로 흉터를 가리기엔 이제 조금씩 날씨도 더워지고, 괜히 옷에 눌려 물집이 터질까  그냥 반바지를 입고 다니다보니 의도치 않게 공공연히 거미 물린 티를 내고 다니는 중이었다. 원래 동양인이 드문 곳이라 자주 눈에 띄기도 했지만, 이제는 학원에 가도, 길거리를 지날 때도, 홈스테이에 새로운 친구가 와도 온통  다리보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모든 것은 날씨처럼 변한다. 세상다양한 날씨가 존재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주룩주룩 내려 마음이 슬프고 힘든 날도 있지만, 그런 날들이 지나가고 나면 무지개가 피어나고 환한 햇살이 마음을 녹여준다.  번째 만났던 홈스테이 할머니,  하루 함께 지냈던 중국인 아주머니. 타지에서 좋은 집을 찾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그만큼 그 ''이라는 것이, '함께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첫 집주인들을 겪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이지 몰랐을 것이다.


지금 내가 머물게 된 집주인인 마린 아주머니는 홈스테이를 전문으로 하셔서 아주머니 댁뿐만 아니라 씨포인트와 그린포인트 주변에 3채 정도를 홈스테이로 운영하고 계셨다. 처음 이사했을 때는 아주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시는 아침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홈스테이를 하다가, 지금은 다른 집으로 옮겨서 개인적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자취로 바꿨다.


내가 살게  집은 건물 2층에 위치한 집인데, 1층은 중국 레스토랑이  2층은 이었다. 2층에는 3개의 집이 있었는데,  집에는 방이 3개씩이라 나에게는  8명의 이웃이 생겼다. 우리 집에는 아프리칸스 루시라는 여자아이가 함께 살고 있었고, 나의 옆집에는 그때 부산 언니가  구할  물어봐줬던 한국인 오빠가 살고 있었다.


언니와 오빠는 이제  스무 살이  여자 아이가 남아공에 오자마자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것이 딱해 보였는지 나를 무척  챙겨줬다. 마치 나의 새로운 보호자가  것처럼, 언니랑 오빠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둘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언니는 다른 집에 살아서 시간이 맞을 때마다 봤지만 평일에는 루시와 오빠, 그리고 오빠네 이웃과 함께 저녁도 먹고 운동을 다. 주말에는 마린 아주머니네 홈스테이로 가서 다양한 나라에서  학생들과 저녁을 먹으며 그야말로 복작복작한 시간을 보냈다.


남아공의 첫달은 나름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렇게 좋은 홈스테이와 룸메이트들을 만나  남아공 생활에도 드디어 평안이 찾아오는 듯했다.  지나고 보니 벌써 이렇게 시간이 났다니 믿기지 지만, 그래도  번째 달을 맞아 무언가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기억들은 뒤로 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이라고나 할까.


새로운 날을 맞이하기 위해  안을 깨끗이 정리  청소하고, 변화된 생활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나의 새로운 달의 계획은 이러했다. 아침 6, 기상  열심히 해안가를 걸어서 헬스클럽에 도착.  시간 동안 즐겁게 아침 요가와 트레이닝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아침 9 학원 도착. 성실하게 수업에 임하고 점심은 친구들과 간단히 근처 노천카페에서 머핀을 먹고 4시까지 자습. 테이블마운틴을 배경 삼아 파랗게 펼쳐진 케이프타운 바다를 바라보며 걸으면 6 홈스테이 집에 도착. 그리고 룸메이트 이웃들과 도란도란 수다를 떨어야지 생각한, 나름 꽉차고 알찬 계획이었다.


다음  아침. 어제 세운 계획에 맞춰 나는 아침 6시에 기상했고 계획한대로 모든 일정을 실행한 뒤, 오후 6 저녁을 먹기 위해 마린 아주머니 댁에 도착했다. 그런데 마린 아주머니도 무언가 분주해 보이고 다른 학생들도 웅성거리는 듯 보였.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마침 우리 옆옆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계시길래 인사를 드릴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고 다가섰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아닌가.


“오늘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어. 내가 제일 아끼는 오디오 플레이어가 없어졌어...”


아주머니가 얼마나 오디오를 아끼고 사랑하는지는 정말  알고 있었다. 내가 이사  첫날부터 자기 방에  사온 새것처럼 반짝이는 오디오를 보여주시며 음악을 들려주시겠다고 하셨었기 때문이다.


“오... 어떡해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무슨 도둑이요? 잡혔어요? 누가 그랬대요?!!”


아주머니는 오히려 침착하신 건지 이미 다 놀라버리신건지 건조하게 말씀하셨.


“지금 수사 중인데 집에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나 봐. 방범창이 있었는데 어떻게 나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경찰이 찾고는 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잊어버린 물건을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해.. 다음날이면 중고품 시장에 이미 팔리고 없을 테니... 그나마 누구 하나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지.”


아주머니는 이미 거의 마음을 비우신 듯했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아무리 다른 집이라고는 하지만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바로 붙어 있는 바로 옆옆집인데, 다른 사람들은 괜찮나, 우리 집은 괜찮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괜찮을까? 우리 집도 털린 거면 어떡하지??'


왠지 모를 불안함에 휩싸여 있는데 옆집 오빠도 보였다.


“오빠! 오빠! 들었어요? 옆집 아주머니 댁에 도둑 들었대요. 어떡해요. 갑자기 나도 불안한데... 우리 집은 괜찮을까? 왜 이렇게 불안하지?”


괜히 불안에 엄습당한 사람처럼 내가 초조해하니, 오빠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한다.


너는 그나마 옆옆집이잖아. 나는 바로 옆집이거든? 그렇게 따지면 내가 너보다  걱정해야  텐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아까 다녀왔는데 다른 집들은 괜찮대. 경찰이 우리 층도  검사했는데 다른 집들은 괜찮다고 했어. 나는 바로 옆집인데도 괜찮아. 생각하면 생각하는 대로 되는 거야. 그런  좋은 생각을 내려놓고 우리 기분 전환하러 영화나 보러 가는  어때?”


생각하면 생각하는 대로 된다. 불안하긴 하지만 오빠 말이 . 괜히 나의 생각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일지도 모른다. 마린 아주머니 홈스테이에는 나를 포함 오빠랑 다른 집에 살고 있는 언니까지  3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었다. 언니 오빠가 워터프런트로 영화를 보러 간다기에 나도 혼자 집에 가기가 무서워 따라가기로 했다. 영화를 보면 오빠 말대로 기분이 조금 나아질까 었다.


케이프타운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이자   번째 좀비 영화, 레지던트 이블 3. 나는 정말로 좀비 영화가  세상에 있는지 모르겠다. 쟤네들은  밤에만 나오는 걸까? 아침엔 잠을 자는 걸까? 언니랑 오빠가 하필이면 좀비 영화를 본다고 해서 정말 싫었지만 세명   명이 보고 싶다고 하니 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기로 했다. 눈을 뜨고 보기가 무섭다면 귀라도 열어놓고 영어공부라도 해야겠다고 설득하며 영화관에 들어갔는... 젠장... 좀비는 영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거의  시간  동안 눈과 귀를  누르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  12시가 넘은 거리에는 마치 방금  영화 속에 나오던 좀비들이 금방이라도 뉘엄뉘엄 나타날듯이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언니를 먼저 데려다주고 집에 도착한 오빠랑 . 문을 열려고 열쇠를 꺼내는데, 깨진 창문이 노란 테이프로 덮여있는 옆집이 보였다. 별일 없을 거라며 인사를 하고 오빠와 나는 각자의 집으로 열쇠를 열고 들어가 방문을 열었다.


노란 조명 아래 깔끔한  . 작지만 포근한  . 어젯밤 청소를  탓인지 무척 깨끗해 . 그런데 이상하게... 무언가 내가 청소한 것보다 유난히  깨끗해 . 무언가 허전하기까지   느낌... 크게 숨을 들이쉬고 무릎을 숙이고 침대 바닥을 쳐다봤다. 노트북이 없다... 담담하게 책상 서랍을 열었다. MP3 없다... 힘없이 옷장을 열었다. 디지털카메라도 어졌...


오빠네 발코니는  방의 작은 창문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오빠네 창문이 열려 있으면 내가 크게 부르면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방의  조그마한 창문을 열고 오빠네 발코니를 가만히 쳐다봤다. 불이 켜지고 발코니 문이 열렸다. 창문 사이로 아무  없이 넋이 나간 내가 보였는지 오빠가 창문 쪽으로 왔다. 나는 기운이 너무 없어서 오빠에게 조용히 말했다.


“내 방도 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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