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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l 09. 2022

왜 자꾸 나를 부르는거야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디스트릭트 6

어학원에 도착한 어느 날 아침, 나는 무척 짜증이 난 상태였다. 예민해 보이는 내가 눈에 띄었는지 친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니 길을 지나가면 남자들이 나를 불러. 하나하나 인사를 해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도대체 왜 자꾸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거야. 너도 그래?”


친구는 정말 그걸 모르느냐는 듯이 어이없이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그거 너한테 인사하는 거 아니야. 캣 콜링이야.”


나는 태어나  콜링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처음에는 단어를 듣는데 나는 정말 고양이를 부르는 소리인가 했다. 그런데 길거리의 여성들을 장난처럼, 희롱하는 투로   불러보는 것이  콜링이었다.


순식간에 분노와 허망함이 몰려왔다. 나는  아침마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나에게 굿모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는지 이해할  없으면서도, 누군가 나에게 인사를 하니 나도 최대한 예의를 키자고 하나하나  인사를 받아주고 되돌려주고 있었다. 런데 친구의 말을 듣고 나니 그제야 나에게 그렇게 인사를 건네던 사람들이 모두가 남자들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제길, 완전 바보였네”


나는    콜링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첫째는 우선 한국에선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었. 2007년도까지 서양에서 생산되는 외국 영화나 드라마로 외국인들의 삶에 대해  적은 있었어도, 흑인, 그것도 아프리카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함께 만나 어떤 문화나 일상을 나눈 것은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길을 걷는데 누군가 부른다면, 그건 정말 인사를 하거나 무슨 용건이 있어서 부른 것이었다.


째는 내가 케이프타운 길거리에서 그렇게 우연히 인사하다 만난 사람들과 친구가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 바쁜 아침 시간에도 간단한 점심거리를 사러 들린 슈퍼에선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는 사람들 만나면 서로 반갑게 ‘하이라고 외치며 볼뽀뽀와 허그를 나누는 것을 자주 봤다. 포옹과 뽀뽀까지, 한국에선 흔하지 않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스킨쉽 인사 때문인지 나는 이렇게 밝게 인사를 나누는 것이 그들의 문화인가 보다 했다.


마지막으로   콜링의 ‘콜링정말 다양한 종류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날엔 “하이, 헤이 부르다가  어떤 날은 “헤이, 차이니스 ”,  어떤 날은 “굿모닝! 등등으로 다양했고, 그 중 어떤 말이 캣콜링이었고 진짜 인사인지 밝혀내기엔 내 경험이 아직 부족했. 한국에선 아주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 길을 가는 일반인을 굳이 불러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진 않으니까, 나는 반대로 저렇게까지 굳이 인사를 하는  보면 인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인가 보다 하고 함께 동참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지금까지 받은 인사들이 모두  콜링은 아니었던  같은데  콜링이라는 단어를 알고 나니 모두  콜링이 돼버린 불쾌한 느낌.


 콜링이라는 단어를 알고나니 길거리 소리에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헤이, 이라는 단어를 쓰는  보니, 내가 여성이라 부르는  같았, “헤이, 차이니스라고 부르는  보니 내가 동양인이라 부르는 듯했다. 분명 즐거운 “굿모닝 있는 듯했지만 보통은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섞인 장난이었다.  사실을 알고 나서도 나는 한참이나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니. 아파르트헤이트를 그렇게 당하고도, 당한 사람들이 인종차별을  한다고? 아니. 인종차별은 백인과 흑인 사이에 일어난  아니었어? 아니. 그럼 백인과 흑인 사이에 그렇게 심한 인종차별들은 가르치면서  다른 인종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지? 아니. 차별만 당한  알고 있던 흑인들한테도 차별당하는 사람들이 동양인이었다니.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것도 화가 났지만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내 자신이 더 황당했다. 나는 내가 흑인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할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었나 보다. 1차로는 흑인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 2차로는 심지어는 흑인들 중에서도 길거리의 거지들에게도  콜링을 당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운 인종차별은 전부 흑인과 백인의 문제처럼 와닿았다. 미국에 관한 역사도, 아프리카의 빈곤문제도 나는 서양과 아프리카 사이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종차별에 대한 국제적인 주요 흐름에서 한국인은 빠져있었으니까. 인종차별이라는 분야의 텍스트들은  문제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직접 겪은 주체들에 의해 작성되어 있었고, 우리가 세계사를 배워도 결국엔 서양 위주의 역사인 것처럼 나도 모르게 인종차별에 대한 역사와 이야기도 서양 위주의 흑과 백으로 편집된 내용만 알고 있었다. 빠져 있었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나는 쏙 빠져있던 인종차별이라는 역사책에 케이프타운에서의  콜링이 처음으로 나를 끼워 넣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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