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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l 10. 2022

치안은 장담할 순 없지만 자연은 장담해요

케이프타운의 자연 일지

봄이 오면 케이프타운 앞바다엔 고래가 찾아온다고 했다. 운이 좋으면 씨 포인트에서도 고래를 볼 수 있다고도 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바닷가를 지나가다 보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닷가 주변을 살피곤 했다. 내가 눈을 깜빡하는 사이에 고래가 지나칠까 싶어 눈을 부릅뜨고 수면 위를 살피다보면, 햇살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바닷물에 눈이 부셔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그것도 잠시, 햇살이 사라지고 나면 금세 파란 바닷물이 시야에 가득찼는데, 그 물결이 다시 시야로 들어올때면 항상 수면 위에 출렁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바다 위를 가득 채운 저 검은 물체는 무엇일까. 자세히 살펴보니 해조류 같았다.


신기하게도 대서양은 물론 인도양까지 두 대양을 품고 있는 케이프타운 앞바다에는 섬들이 없다. 어떻게 보면 목포와 케이프타운 모두 둥그런 반도 모양의 땅덩어리에서 가장 서쪽 끝에 위치해 있는데, 목포 앞바다는 빽빽하게 섬들이 가득 차있는 반면, 케이프타운 앞바다에는 예전에 넬슨 만델라가 수감되었던 로빈 아일랜드 하나만이 덩그러니 있었는데, 그나마도 케이프타운에서 살짝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케이프타운 항구에는 깊은 대양에서 다닐 수 있는, 수많은 컨테이너들을 실은 거대한 유조선이나 화물선들이 많았다. 거대한 크기 때문에 아프리카 대륙 위쪽, 이집트 옆에 인위적으로 만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는 배들이 희망봉까지 내려와 인도와 아시아로 뻗어가기 때문에 케이프타운 앞바다의 배들은 섬처럼 컸다. 대신 우리나라 앞바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작은 여객선이나 화물선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서 케이프타운 바닷물 위에 떠있는 해조류들은 매번 이런저런 배에 치이지도 않았고, 양식장처럼 정해진 공간 안에서만 자라나야 하는 우리나라의 미역이나 다시마들보다 정서적으로 편안할 것 같았다.


미역인지 다시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싱싱하고 건강해 보이는 해조류를 왜 아무도 캐먹지 않는 걸까. 한국이었으면 아마 자연산 미역이라고 사람들이 모두 캐가지 않았을까 싶었다. 분명 이 넓은 바다 어딘가에 조개나 낙지, 문어 등등 바닷가에 사는 해산물들이 많을 텐데, 생각해보니 나는 케이프타운 바닷가 코 앞에 살면서도 그 흔한 해산물 하나를 캐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케이프타운 앞바다 해조류를 볼 수 있는 ‘나의 문어 선생님’               사진 출처: 넷플릭스


한 번은 무척 궁금해서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묻고 다니곤 했는데, 남아공 사람들에게 해조류는 음식으론 낯선 재료인 것 같았다. 남아공 앞바다에 자라는 해조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종류 중 하나인 ‘에클로니아 막시마 (Ecklonia Maxima)’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름에서 느껴지듯 정말 거대한 느낌의 해조류였다. 짧은 영어이름으로는 ‘바다 대나무 (Sea Bomboo)’라고도 불리는데 이름처럼 케이프타운 바닷 속에 빼곡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넷플릭스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중 하나인 ‘나의 문어 선생님 (My Octopus Teacher)’의 첫 장면을 보면 케이프타운 앞바다의 바로 이 거대한 막시마 숲이 나오는데, 그래서인지 케이프타운 사람들은 이 해조류가 인간의 음식이 아니라 바다에 사는 생물들의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나마 초밥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되면서 김은 어느 정도 조금씩 보편화되는 것 같았는데, 미역이나 다시마는 우리처럼 끓여도 먹고 생으로도 먹고 이렇게 다양하게 먹는 사람들도 드문 것 같았다.


그럼 해조류는 그렇다치고 왜 조개를 캐는 사람은 없을까? 그것도 물어보니 남아공에서는 조개를 캘 때도 관청에 신고를 하고 캔다고 했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한국에서처럼 캤다가 벌금을 낸 경우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생각보다 인간세상은 잘 통제가 안 되는 것 같아 보이는 남아공이었는데 자연에 대해선 이런 사소한 것들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 문득 더 예쁘게 보였다.





케이프타운 바다는 정말이지 예쁘다. 날이 풀리면서 사람들은 모두들 비치로 하나 둘 달려갔다. 테이블 마운틴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예뻤지만, 사진 속 작품처럼 멋진 바다를 보려면 차를 타고 시내에서 조금 나가야 하는데, 케이프타운 근처의 어떤 해변으로 가든 그 차는 테이블마운틴 능선을 따라간다.


클리프턴 (Clifton)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비치를 지나면 열두 개의 산봉우리가 하나 둘 차례로 바닷가에 포개져 떨어지는 캠스베이 (Camps Bay) 비치가 나온다. 부챗살이 하나하나 포개져 펼쳐지듯 캠스베이의 열두 봉우리를 보면 입체감에 빠져들게 되는데, 그 산봉우리 위에 안개가 살짝 끼는 날이면 봉우리 능선을 따라 안개가 천천히 스며들어 바다로 녹아들어간다. 그 안개를 따라 숨을 쉬면 바쁘던 내 호흡도 따라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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