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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l 13. 2022

보라색 자카란다 나무 아래서

가장 추웠던 12월의 남아공

고요한 요가 스튜디오. 전신 거울을 등지고 앉아 있는 언니의 맞은편, 거울에 비친  모습이 . 눈물이 쏟아지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무언가, 무언가 특별한 행동이나 감정이 생길 알았는데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아서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담담한 기분은 뭘까... 이미 예상했던 답을 들었다는 건지...


일주일 내내 걱정하고 조마조마했던 내가 오히려 차분하게 소식을 받아들이자 언니는 하나  이야기를 더 풀어냈다. 언니를 발견했던 현장, 상황들, 앞으로의 수사 내용들.. 나는 묵묵히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학원거미에 물렸을  이후  번째 휴학을 걸었다. 밖에 나가는  자체가 힘들었기 때문이었. 현장을 발견했기 때문에 언니와 오빠는 경찰이나 대사관에서 수사를  때마다 불려 갔다. 학원에도 소문이 퍼지고 모두가 위로를 해줬지만 이번엔 다른 때처럼 쉽게 웃음이 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다행히도 나에겐 아직  분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살아 계셨고, 스무 살이  지금까지 특별히  주변의 누군가를 하늘로 보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만났던 언니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났다. 태어나 처음 맞게   낯선 상황나는 웃어도 되는지, 밥은 먹어도 되는지 헷갈렸다. 배가 고파서 무언가를 먹고는 있었지만 무슨 맛인지는  상관이 없는 날들이었다.

 

아직 범인은 힌 것도 아니었지만 사건을 접해들은 현지인들은 무조건 흑인이 그랬을 거라고 단정하며 말했다. 아직 어떤 증거도, 물증도 없는데  사람들은 흑인들이라고 확신하는지. 그런 편견들이  와중에도 마음에 들지 않을뿐더러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사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냥 이곳이 무섭다는 것이었다. 거미에 물린 것도 두려웠고, 누군가 언제고  방에 들어와 그나마 남아있는  전자사전도 가져갈 것만 같고, 그렇게 좋은 언니가 이렇게 무심하게 하늘나라에 일찍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경찰에 다녀올 때마다 언니는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알려줬다. 범인을 잡겠다는 생각으로 저렇게 열심히 협조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사실 언니는 얼마나 무서울까. 부쩍 언니랑 오빠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하늘나라에  언니네 집에서 범인의 지문은 물론  누구의 지문 하나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정말이지 범인들이 누군진 몰라도 참 지독한 사람들이라고, 모두들 뭐라  말을 잃어버렸다.  어떤 날에는 언니의 일기장이 발견되었다. 한국어로 적혀 있어서 현지 경찰은 읽지 못했고, 결국 언니가 읽어서 알려줘야 했는데, 언니의 마지막  일기엔 이런 내용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어젯밤 꿈속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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