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추웠던 12월의 남아공
고요한 요가 스튜디오. 전신 거울을 등지고 앉아 있는 언니의 맞은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눈물이 쏟아지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무언가, 무언가 특별한 행동이나 감정이 생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아서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이 담담한 기분은 뭘까... 이미 예상했던 답을 들었다는 건지...
일주일 내내 걱정하고 조마조마했던 내가 오히려 차분하게 소식을 받아들이자 언니는 하나 둘 이야기를 더 풀어냈다. 언니를 발견했던 현장, 상황들, 앞으로의 수사 내용들.. 나는 묵묵히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학원은 거미에 물렸을 때 이후 두 번째 휴학을 걸었다.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장을 발견했기 때문에 언니와 오빠는 경찰이나 대사관에서 수사를 할 때마다 불려 갔다. 학원에도 소문이 퍼지고 모두가 위로를 해줬지만 이번엔 다른 때처럼 쉽게 웃음이 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다행히도 나에겐 아직 네 분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살아 계셨고, 스무 살이 된 지금까지 특별히 내 주변의 누군가를 하늘로 보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단 며칠 전 만났던 언니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났다. 태어나 처음 맞게 된 이 낯선 상황에 나는 웃어도 되는지, 밥은 먹어도 되는지 헷갈렸다. 배가 고파서 무언가를 먹고는 있었지만 무슨 맛인지는 별 상관이 없는 날들이었다.
아직 범인은 잡힌 것도 아니었지만 사건을 접해들은 현지인들은 무조건 흑인이 그랬을 거라고 단정하며 말했다. 아직 어떤 증거도, 물증도 없는데 왜 사람들은 흑인들이라고 확신하는지. 그런 편견들이 이 와중에도 마음에 들지 않을뿐더러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사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냥 이곳이 무섭다는 것이었다. 거미에 물린 것도 두려웠고, 누군가 언제고 내 방에 들어와 그나마 남아있는 내 전자사전도 가져갈 것만 같고, 그렇게 좋은 언니가 이렇게 무심하게 하늘나라에 일찍 간 것도 마음에 안 들지 않는다.
경찰에 다녀올 때마다 언니는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알려줬다. 범인을 잡겠다는 생각으로 저렇게 열심히 협조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사실 언니는 얼마나 더 무서울까. 부쩍 언니랑 오빠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하늘나라에 간 언니네 집에서 범인의 지문은 물론 그 누구의 지문 하나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정말이지 범인들이 누군진 몰라도 참 지독한 사람들이라고, 모두들 뭐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또 어떤 날에는 언니의 일기장이 발견되었다. 한국어로 적혀 있어서 현지 경찰은 읽지 못했고, 결국 언니가 읽어서 알려줘야 했는데, 언니의 마지막 날 일기엔 이런 내용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어젯밤 꿈속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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