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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l 20. 2022

케이프타운을 떠나며

잘 사는 나라, 못 사는 나라

길을 걷는데 갑자기 내 앞으로 무언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고개를 떨구고 내려보니 작은 새 한 마리가 바닥에 누워있었다. 무슨 일인지 싶어 주변을 살펴보는데 무언가 찌릿찌릿 소리를 내고 있었다. 벽 위에 설치된 얇은 쇳줄이 전깃줄인 것 같았다.


케이프타운의 푸른 바닷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하이레벨의 집들 중엔 집 안이 보이지 않게 높은 장벽을 친 집들이 종종 보였다. 그 높은 벽도 소용이 없는 듯 벽의 가장 높은 곳엔 얇은 전깃줄 세 개가 마치 덩굴나무인 것마냥 집 벽을 돌돌 감싸고 있었다.


사람들은 케이프타운이 위험하다고 했지만, 5개월 동안 3 계절의 길거리를 매일같이 걸어 다니며 느낀 것은 이곳도 어느 동네처럼 사람 사는 곳이라는 점이다. 아침이면 회사와 학교를 가는 사람들로 도로가 붐볐고,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곳이 어디든 가장 환한 미소로 볼뽀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 사는 모습이 그렇듯 이곳에서도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사람 냄새가 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왜 이곳이 ‘아름다운’과 함께 ‘위험한’이라는 서로 어울리는 형용사를 갖게 되었는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힌트들이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똑같은 길이 심심해서 지도 위에 있는 다양한 길들을 다녀보곤 했는데, 지도는 정말 모든 길을 나타냈지만 가장 기본적인 1차원의 정보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나서 보니 그곳은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라 위험한 곳도 있었고, 어떤 곳은 잘 사는 사람들의 동네라 또 위험한 곳도 있었다. 가난한 동네는 흑인들이 많아서 총기나 폭행사건이 자주 일어나 위험하고, 잘 사는 동네는 도난, 불법침입이 잦아서 위험했다. 가난하면 가난해서, 잘살면 또 잘살아서 위험한 이 아이러니한 도시. 빈민촌이 위험한 것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지만, 왜 잘사는 동네도 위험하게 된 것일까. 가난하기만 하고 잘살기만해서 위험하다는 이 동네에서 과연 안전하고 평안한 곳은 어디일까? 있기는 한걸까?


물론 살아가는 기나긴 시간 중 며칠, 몇 주 정도 잠시 머물다 떠나는 관광객들에게는 케이프타운의 그 모든 불행한 일들이 어쩌다 한 번, 운이 좋지 않아 걸리는 드문 일일지 모른다. 오히려 생각보다 흥이 많은 사람들과 깔끔하고 멋진 저택들에 케이프타운에 대한 편견이 많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관광객들에겐 어쩌다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일들이 사는 사람들에겐 살면서 한 번은 꼭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케이프타운은 분명 아름답지만 또 위험한 곳이었다. 나는 매일 길을 걸으며 케이프타운이 여행하기 좋은 곳보다 살기 좋은 곳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두고도 막상 살기는 어렵고,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더 슬프게 만드는 것 같았다.


자연만 본다면 케이프타운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이 분명했다. 케이프타운의 생명체들은 책 속에만 있지 않았다. 거리에 가면 잊을만 하면 만나게 되는 친구처럼 가끔씩 원숭이나 펠리컨들을 만났고, 바다에 나가면 서식지에 따라 펭귄이나 물개를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집에 올라가는 계단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과 마주했다. 새빨간 무언가가 햇살에 비춰 반짝이는데 나는 순간 그것이 빨간 루비인 줄 알았다. 이런 뜬금없는 곳에 웬 보석인가 싶어 코를 더 가까이 가져가 계단 위 반짝이는 것을 보는데 순간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 빨갛게 반짝이는 것은 바로 바퀴벌레의 눈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바퀴벌레의 눈을 그렇게 뚫어져라 본 적이 없었고, 그 눈이 따로 보일만큼 큰 바퀴벌레를 본 적도 없었다. 너무 소름이 끼쳐 도망치긴 했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케이프타운이 자연의 모든 생명체를 먹이고 살찌우며 건강하고 크게 자랄 수 있도록 꼭 품어주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자연 생물들이 순리대로 잘 자라나는 그곳에서 인간만이 구역을 나누고 피부색을 나누며, 계층을 나누고 갈등에 신음했다. 남아공에 직접 가보기 전까지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티브이나 엔지오 단체들의 모금 방송들에서만 보던 모습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티비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잘 사는, 아니 오히려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게 많은 인프라와 건물들을 가진 케이프타운의 모습에 나야말로 작은 우물에서만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케이프타운은 내가 보는 화려하고 멋있는 도시의 모습뿐만 아니라 티브이에서 봤던 그 허름하고 낡은 판자촌의 빈민가도 함께 공존하는 곳이라는 것을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두고도 인간 세계의 불평등이 너무 심해서 잘 사는 사람들은 벽을 더 높이 쌓아갔고, 가난한 사람들은 판자촌으로 더 밀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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