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뜻한 선인장 Jul 21. 2022

스무살, 휴학이 준 선물

안녕 케이프타운


카카오톡도 없고 페이스북도 없던 케이프타운에 살던 시절,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국제전화카드를 사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중전화들 중에서도 제일 안전할 것 같은 씨포인트의 어느 교회 앞에 서있는 공중전화를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찾아갔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나는 어떤 일을 겪고 난 뒤 전화를 하게 되었다. 전 세계 언어를 배울때 모든 대화의 시작은 How are you? 잘지내니였다. 그렇게 쉬운 안부를 나는 교과서에서 처럼 쉽게 대답하질 못했다.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잘 지낸다고만 거짓말 하기엔 내게 찾아온 일들이 너무 거대해서 나는 그 쉬운 거짓말도 못했다.


그나마 내가 찾은 방법이 하나 있었는데, 전화를 걸고 엄마가 나에게 괜찮은지 물어볼 때 거짓 없이 괜찮다고 대답할 수 있도록, 내게 닥친 일들에 대해 내 감정이 좀 누그러졌을 때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이제 엄마에게 케이프타운에서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게 된, 그래서 앞으로의 시간보다 지나온 날들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들이 더 많아진 요즘 엄마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사실 언니를 갑작스레 하늘로 먼저 보냈을 때는 내 감정이 미처 추슬러지기 전에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해서 알려야 했다. 마치 서울 친구들이 목포에서 무슨 일이 나면 목포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는 모른채, 혹시나 뉴스에 나오는 목포 사람이 나는 아닌지 걱정이 되어 물어보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인터넷이나 뉴스에서 언니에 대한 사건이 남아공에 대한 뉴스로 나오면 모두들 나를 걱정할 것이 뻔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 멀게만 느껴지는 뉴스가 정말로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가 되었으니, 미리 전화를 해서 안심시켜드려야 했다.


이 뉴스를 전해들은 내 모든 친구, 지인들은 듣자마자 당장 한국에 돌아가라고 말했었다. 거미에 물렸을 때도, 집이 털렸을때도 비슷한 조언들을 몇 번 듣긴 했지만 이번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당장 돌아오라고 했었다. 우리 엄마만 빼고.


나는 사실 언니의 사건때만큼은 엄마가 나에게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한다면, 이번만큼은 조금 흔들리는 척 한국에 돌아갈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엄마는 언니의 사고 소식을 듣고도 내가 괜찮은지 확인한 후 수많은 축복과 기도와 사랑의 메시지를 남기곤 전화를 끊었다. 내가 은근히 듣고 싶었던 그 돌아오라는 말만 쏙 빼놓고. 나는 전화를 끊고 한참을 공중전화 앞에 서서 생각했다.


‘왜 우리 엄마는 나보고 돌아오란 말을 하지 않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다 걱정된다고 차라리 빨리 돌아오라고 하는데 엄마는 걱정이 되지 않는걸까?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한 번에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가 돌아오란 소리를 하지 않을 정도라면 분명 충격적인 일이긴 해도 그렇다고 이렇게 포기할 만큼의 일은 또 아닌가보다 싶었다. 분명 힘들고 슬픈 일이긴 했지만 살다 보면 원하는 일도, 또 원하지 않음 일들도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는 계획했던대로 케이프타운에서의 시간을 보냈고, 어느새 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한국에 돌아가기까지 남은 한 달, 나는 지쳐있었다. 단순히 남아공에서 반 년동안의 시간 때문만은 아닌 고단함이었다. 어찌보면 이번 여행은 남아공에서 6개월 살기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사실 나의 여행은 ㅋ이프타운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 순간부터가 아닌 1년 전 휴학을 계획하고 이를 준비하던 대학교 도서관에서부터였다. 휴학을 마음먹고 첫 5개월동안 생전 처음 공장과 옷가게로 들어가 주야 혹은 하루 12시간씩 일해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남아공까지 날아와 남은 휴학기간인 5개월동안 케이프타운을 알아갔다.


생각해보니 남아공에 왔던 첫 달부터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시간이 지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었고, 또 어떤 때는 스스로 같은 질문을 한 적도 있었다. 정말로 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단순한 고민이 아닌 실제 비행기 귀국 티켓 위에 적힌 날짜로 다가오는 요즘, 나는 그동안 그렇게 많이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소리를 듣고도 나는 왜 지금까지 남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떠나지 않고 계획한 대로 케이프타운에 머무르고자 했던 이유는 힘든 일들이 찾아온만큼이나 더 깊이 친해진 가족 같은 친구들이 있었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남아공의 자연도 사계절을 담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이 단단하기도 했다. 내 마음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에, 티켓에 적힌 날짜 이 전에는 떠난다는 것을 절대 허락하질 않았다. 정말로 오고 싶었고 모험을 떠나보고 싶어서 공장에서 2교대로 일하며 케이프타운까지 온 것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돌아보니, 그렇게 직접 힘들게 번 돈으로 온 여행이라 그런지 허투루 쓰지도 않았고, 매일매일 진심을 다해 낯선 곳과 마주했고, 그 기록이 이렇게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제서야 공항에서 처음 떠올렸던, 부모님이 이 모든 것을 제공해주셨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직접 고생해서 벌었던 돈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케이프타운에 와서 힘든 순간에 부딪쳤을 때마다 한국에 돌아가버렸을지 모른다. 직접 고생을 했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고, 그 경험들이 시간이 지나고보니 내게 인내와 끈기라는 선물을 주고 간 것 같았다.





이전 28화 케이프타운을 떠나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