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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l 15. 2022

가든 루트 위에서 만난 택시 기사 아저씨

남아공 여행과 유학생활의 끝자락

언니를 보내고 나니 어느새 남아공에서의 4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제 케이프타운에서의 시간들이 남은 날들보다 지나간 날들이 더 많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매번 시간이 많다고, 아직 몇 개월이나 남았으니 다음에 가보겠다고 미루고 가보지 않은 곳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매일 둘레길처럼 걸어가면서 수없이 지나치긴 했어도 오르지 못했던 테이블마운틴, 라이온스 힐, 시그널스 힐이 그랬고, 남아공 하면 떠오르는 희망봉과 로빈 아일랜드를 나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서울 사람들이 오히려 남산, 63 빌딩같은 서울 명소라는 곳들을 가본 사람들이 드문 것처럼, 나도 너무 눈앞에 있다는 이유로 여태껏 가보지 않은 케이프타운의 명소들이었는데, 이제 곧 나는 케이프타운을 떠나는 사람이 될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장례식 이후에도 한동안 밖을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평생 동안 겪지 못했던 일들이 3개월 동안, 그것도 처음 나가본 해외에서 일어났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고 다시 회복하기까지 어지간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학원도 잘 가지 않고, 예전처럼 헬스장에도 잘 가지 않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지은이가 나에게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지은이가 추천한 곳은 바로 ‘가든 루트(Garden Route)’였다. 지도를 보면 남아공의 끝은 아프리카 대륙의 끝과 같았는데, 그 대륙의 가장 끝, 남쪽 해변을 따라 로드 투어를 할 수 있는 루트가 있었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바다. 그 남쪽 바다를 따라 여행하는 루트. 얼마나 아름다우면 그 길 이름 자체가 ‘가든 루트’, 정원, 꽃 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쉽사리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고 시설들이 잘 갖춰진 케이프타운에서도 사건사고가 많았는데, 도시를 떠나 낯선 곳을 여행을 하다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떻게 될지 덜컥 겁이 먼저 났다. 혼자 간다면 당연히 지금은 자신이 없었고, 친구와 둘이 간다고 해도 혹시나 나 때문에 친구까지 무슨 일이 나면 어떡하나 싶어 계속 망설이게 되었다.


그러나 동갑내기였던 지은이는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다 괜찮다며, 자신이 모두 여행을 준비하겠다며 나는 따라만 오면 된다고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신기하긴 했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보면 남아공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곳 같은데, 같은 나이에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고, 심지어는 나보다 6개월이나 먼저 와서 케이프타운에 머무는 지은이는 지금껏 특별한 별 일 없이 남아공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똑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내용을 배워도 누구 하나 똑같이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않듯이, 우리는 같은 나이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사뭇 다른 남아공살이를 이어가는 듯했다. 어떻게 지은이는 나와는 달리 참 무탈하게 남아공 생활을 잘 이어가고 있던 걸까? 정말 사람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나라가 있는 걸까? 문득 그녀의 해외 살이 스타일이 궁금했다. 그렇게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 반틈, 여행이 두려운 마음 반틈 사이에 끼어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던 그때, 지은이가 말했다.


“시간이 모두 지나서 네가 그냥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버리면 넌 분명 너무 아쉬울 거야. 제대로 남아공을 여행하지도 못하고, 돌아보지도 못하고 가버리면 서운할 것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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