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추앙하라고?
(주의. 드라마의 중요 내용이 들어가 있으니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이나 볼 예정인데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조심하세요;)
요즘 혼자 밥을 먹을 때 한 편씩 아껴보던 나의 해방 일지. 그렇게 처음 몇 번을 보던 어느 날, 남편이 물었다.
"새로운 드라마 보는 거야? 어떤 드라마야?"
나는 퍽 난감했다. 방금 전에 '추앙'이라는 단어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평범한 드라마였다면, '그냥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야, 의사들의 이야기야, 역사드라마야' 등등의 한 문장 설명을 했을 텐데 추앙이라는 단어를 듣고 나니 이게 도대체 무슨 드라마인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랑이면 사랑이지 추앙은 뭐야. 안 그래도 외국인이라 내가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드라마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데, 추앙이라는 단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외국어는커녕 한국어로도 잘 모르겠다.
"모르겠어서 보는 거야.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어."
평소에는 똑 부러지게 한 문장으로 말하는 내가 갑자기 이렇게 말하니 오히려 그게 남편의 흥미를 더 산 것 같았다.
"왜 몰라? 그래도 지금까지 봤으니까 설명할 순 있잖아."
그렇다. 설명할 순 있었는데 추앙이라는 단어가 그 설명을 삭제시킨 뒤였다. 제목 마저 해방이 들어있었다. 영어로 나의 해방일지는 ‘My Liberation Note’, Liberation, 해방, 자유가 들어 있었다. 뜬금없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부터 그 책을 읽게 만든 정의란 무엇인가까지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다음 편을 계속 보면 뭔가 좀 더 설명할 수 있으려나. 아무튼 다시 생각해보니 이 드라마에 처음 끌렸던 이유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에 살았던 내 경험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다시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도시 외곽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 베를린에 살지만 베를린 보다 브란덴부르크가 더 가까운 사람들의 생활이랄까?"
나는 남편에게 그냥 한 편을 먼저 보고 그다음에 더 이어서 볼지 말지를 결정하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나의 해방 일지를 보기 시작했다.
추앙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까지, 두 세편을 보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혼자 핸드폰을 들고는 말했다.
"도대체 산포가 어디 있는 거야."
내가 미처 산포는 상상 속의 하지만 진짜 있는 것 같은 그런 곳이야라고 말하기도 전에 남편은 구글 지도를 들고 산포를 찾았다. 나는 당연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오. 많이 힘들겠다 산포 사람들"
도대체 무슨 소리지. 산포는 없는데. 내가 틀렸나 싶어 남편에게 물었더니 남편이 지도를 들며 오히려 나에게 알려줬다.
"여기 봐. 산포 있어. 저기서 서울로 가려면 진짜 힘들겠다."
정말로 구글 지도에 산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