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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l 28. 2022

우리에게 아이가 필요할까?

아이를 좋아하는 것과 낳는 것의 차이

결혼을 하고 나자 너무도 자연스레 바뀐 우리 할머니의 질문.


“아이는 언제 낳을 거야?”


친할머니, 외할머니 할 것 없이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나와 통화를 할 기회만 생기면 안부인사처럼 들려오는 질문에 웃음이 났다. 학교가 끝나면 회사 질문, 회사에 들어가면 결혼 질문, 이제 결혼도 하니 아이 질문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이 약간 숨이 막히는 것도 같았다. 나와 할머니에게 남은 시간들이 이제 얼마남지 않았는데, 아이 말고 할머니와 나에 대한 추억, 할머니의 인생, 못다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시면 더 낫지 않을까 싶은데 할머니들은 매번 돈 많이 나온다고 빨리 끊으라고 하시면서 항상 그 없는 시간을 아이 안낳으면 안된다는 말만 하시고 전화를 끊어 버리셨다. 다들 똑같이 굴러가는 이 인생의 되돌이표가 어떻게 끝날지 너무 빤히 보이면서도, 이런 맥락 없이 주어진 스케줄 같은 질문은 도대체 언제쯤 끝날 것인가.


나에겐 맥락이 그리웠다. 맥락은 관심에서 비롯된다. 결혼을 했으니 아이를 낳는 것이 남은 숙제가 아니라 결혼 생활은 괜찮은지, 신혼은 마음껏 즐기고 있는지, 남편은 혹은 아내는 살아봐도 정말 좋은 사람인지, 둘이 사는 것이 좋은지 다른 무언가를 더 원하는지, 좋은 남편과 아내가 되었다면 좋은 아빠와 엄마가 될 준비도 되었는지 등등 둘의 관계가 충분하고 둘 다 모두 원해고 또 부부를 넘어선 부모가 될 마음의 준비도 되어야 아이에게도 좋은 것이 아닐까.


그냥 이렇게 남겨진 숙제나 미리 짜인 스케줄처럼 결혼을 했으니 아이를 낳아야지라고 믿도 끝도 없이 재촉하는 것이 싫을 뿐이었지, 나는 사실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좋아진 것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어린이인 내가 나보다 더 어린아이들과 놀아줄 때부터 좋아했다. 친가와 외가 모두 친척동생들 중에서 우연히 내가 가장 큰 언니였는데, 그렇다 보니 방학 때마다, 명절 때마다 다른 친척동생들과 함께 놀 폭죽놀이, 물총, 물풍선 등을 부지런히 준비해서 할머니한테 혼난 적이 종종 있을 정도였다.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첫 사회생활에서도 나는 어린이, 청소년 친구들과 며칠씩 산으로 들로 자연캠프를 나간 적이 자주 있었고, 필리핀에 있을 때도 유치원이 근처에 있는 봉제센터에서 일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굳이 이렇게 자주 물어보지 않으셔도 원래부터 나는 어린이를 좋아했다. 그러나 어린이들을 좋아하는 것과 어느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조금은 다른 문제인 것 같았다. 아이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아이를 갖는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에는 쉽사리 답을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나는 단순히 어린이들을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실 나 역시 어린이의 마음을 간직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이십 대, 아이라고 불리기엔 너무 커버렸지만 어른이라고 불리기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한 애매한 그 시기에 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무척 고민했었다. 처음에는 어른이 되는 것이 참 어려워 보였지만 우리나라처럼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나이에 따라 대학과 취업과 결혼과 출산의 사이클에 바로 넣어버리는 곳에서는 어쩌면 어른이 되는 것보다 어린이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나라 사회에 살면 어른은 어떻게든 돼있을 테니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의 마음을 잘 간직하자고 나는 노트에 종종 적어두었고, 여전히 그 마음을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쯤 되니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인지 그냥 전반적으로 어린이들을 좋아하는 것인지 헷갈렸는데, 남편은 아이에 대한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다. 사귀는 것을 넘어 우리가 진짜 결혼을 하고, 정말 남편과 아내가 되고 난 뒤 우리는 아이에 대해 한 번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란 의도가 은연중에 있었나 보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나도 아직 잘 모르는, 정말로 구체적인 예시들을 들며 내가 정말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나아 키워도 괜찮을지를 물었다.


“아이를 가지면 네가 좋아하는 잠을 원 없이 못 잘 거야.”

“아이를 가지면 네가 좋아하는 여행은 한동안 안녕이야.”

“아이를 갖고 나면 한참은 감정 기복이 엄청 심해질 거야.”


등등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편이 나보다 더 많은 출산과 육아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물었다.


“너 설마 나랑 두 번째 결혼 한 건 아니지? 아니면 숨겨둔 아이가 있는 건 아니고? 어떻게 여자인 나보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여자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잘 알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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