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Hospital de Orbigo ~ Astroga
+21 Day / 2016.07.25
: 17.3km (Iphone record : 21.80km)
Hospital de Orbigo를 떠나는 아침, 숙소에서 짐을 싸다가 침대에서 베드 버그 발견하고 까무라칠 뻔했다. 이제 베드 버그만 보면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여 죽였더니. 흑흑 불쌍한 내 피가 잔뜩이다. 내가 베드 버그를 옮긴 건지, 숙소에서 나온 건지. 확인할 방도는 없고 일단 Just Go! 걷기로 한다. 울창한 나무가 빼곡히 서있는 길을 지나 걷다 보니 마을의 성당이 나온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날 수 없으니 잠시 들어가, 성당 구경과 함께 기도를 하고 나왔다.
이제부터 오늘 목적지인 아스트로가(Astroga)까지 12km 구간을 걷는 동안 마을은 없을 터다. 보통 4km마다 마을이 나와줘야 휴식을 취할 수 있는데. 윽! 12km 라니. 벌써부터 다리가 후덜거린다. 게다가 허허벌판에 사람은 고사하고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이 구간이 몇 해 전(2015년) 미국인 여성 순례자가 살해당한 구간이었다. 그녀는 잘못된 카미노 이정표를 보고 걷다가, 결국 실종 5개월 만에 토막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스트로가에서 불과 8km 떨어진 마을의 외딴 농장에서 살해당했다. 그 이야기가 떠오르자 순간 길에서 만났던 수많은 순례자들이 그리워졌다. 순례길을 걸을 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간에 앞 뒤로 사람들이 보일 정도로 다니는 게 좋다. 오늘처럼 나 혼자 동떨어져. 늦게 출발하면, 이런 구간에서 위험하니 참고해두자.
나는 만약을 대비해 호신용 스프레이를 손에 꽉 쥔 채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넓은 들판 길은 끝이 없고, 드디어 내 뒤에 사람이 둘 나타났다. 그런데 자전거를 탄 2명의 장정들이다. 도보 순례자가 아니니 더욱 무서워졌다. 그들이 점점 다가오자,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그들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렸다. 물론 호신용 스프레이를 발사할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서. 손에 땀이 가득 찼다. 오, 주여!
으악!!!! 그들이 자전거를 타고 붕~ 지나가면서 "올라!" 하고 인사하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휴우. 그들이 인사를 하며 지나가고 나서야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길을 계속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일정표 대로라면, 아스트로가까지 마을이 없는 게 맞는데 기적처럼 쉴 곳이 나타났다. La Casa de Los Dioses '신의 집'이란 뜻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수지와 데이비드가 기부로 운영하는 곳으로 음료수와 과일 수프 등 순례자를 위한 쉼터였다. 이곳에 도착하고 보니 길에서 자주 만났던 순례자도 보이고, 이름 그대로 '신의 집'에서 두려웠던 나의 마음은 평화를 되찾았다. 나는 순례길 스탬프를 찍고, 당근 주스와 수박을 먹으며 다른 순례자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데이비드는 이 곳에서 7년을 살았고, 수지는 2년 전 순례길을 걷다가 데이비드를 만났다고 한다. 그렇게 이 곳에 정착해서 일 년 살았다고. 순례길을 다시 걸을 생각이 없냐고 물었더니, 아직은 산티아고까지 갈 생각이 없다고 한다. 참, 예쁜 커플이었다. 그리고, 이런 외딴곳에 순례자를 위한 쉼터를 운영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그들을 위해 캘리그래피를 한 장 써주고, 그들이 키우는 새끼 고양이가 너무 귀여워서 야옹야옹 거리며 안고 놀다가, 아스트로가(Astroga)를 향해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은 아침부터 가슴을 쓸어내렸다가, 신의 집에서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가, 아직 아스트로가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다. 길을 걷다 올려다 본 하늘에 어김없이 떠있는 낮달. 달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God with us, always! 아까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던 길을 걸을 때조차, 어쩌면 신은 다른 모습으로 이를테면 낮달의 형태로(?) 늘 나와 함께. 나를 지켜준 게 아닌가 하는. 피식 웃으며 나는 계속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