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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with us, Always! 찰스 사제

by 드작 Mulgogi

CAMINO DE SANTIAGO

Hospital de Orbigo ~ Astroga

+21 Day / 2016.07.25

: 17.3km (Iphone record : 21.80km)



아스트로가에 도착하자 parroquia nuestra señora del perpetuo socorro ast 성당 앞에서 자원 봉사자들이 물을 나눠 주었다. 7월 25일은 예수의 일곱 번째 제자인 성인 야고보의 축일이다. 해서 오늘 저녁 8:30분에는, 성당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무사히 일정을 마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좀 더 걸을까 했던 마음을 접고, 오늘은 아스트로가의 호텔에 머물기로 했다. 호텔은 신설이었고 뜨거운 물이 콸콸 나와서 옷이랑 등산화를 빨았다. 그리고 아침에 발견한 베드 버그가 영 찝찝하여 배낭을 새로 사기로 마음먹었다.


호텔 스테프 아저씨가 둘 있었는데, 둘 다 이름이 호세라고 했다. 스테프 아저씨에게 근처에 식당과 스포츠웨어 매장이 있는지 물었더니. 한국인 순례자가 많다는 걸 방증하듯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어." 라며 친절하게 식당과 스포츠웨어 매장을 알려 주었다. 배낭을 사려고 매장 몇 군데를 돌다가, 굉장히 친절한 아저씨가 있는 가게에서 10% 할인된 가격으로 그린 색상 35리터짜리 배낭을 샀다. 앞으로 이 배낭이 남은 여정을 책임져 줄 터였다. 잘, 부탁한다! 그리고 "베드 버그야 우린 그만 헤어지자. 니가 날 떠나지 않겠다면, 내가 몇 번을 빤 배낭을 버릴 수밖에." (흑흑)


베드 버그로 인해 등산화만 제외하고 처음 산티아고를 시작할 때 입었던 옷과 배낭, 모조리 갈아치운 셈이다. 검소하게 걸어야 하는 순례길에서, 큰돈 쓰고 간다. 하지만 베드 버그와 다시 맞닥뜨리고 싶은 마음은 죽어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라고 스스로 합리화시켰다. (합리화 대마왕;;)

점심으로는 처음으로 고기가 아닌 생선에 도전했다! 레스토랑 직원이 또 어찌나 친절한 지. 매력쟁이 스페니시들은 소박한 시골 느낌이 있어 정감간다. 아무튼 밥도 든든하게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다. 소화도 시킬 겸 살충제와 치약, 샴푸 등 필요한 걸 사러 슈퍼마켓에 갔다가 한국인 순례자 J양을 다시 만났다. 필요한 것들을 모두 사고 충만해진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아일랜드에 있는 친구와 잠시 통화를 하고(주된 대화 내용이 베드 버그였다 ㅋㅋ) 기도 시간에 맞춰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한편. 야고보 성인의 조형물이 있다. 그를 상징하는 표주박과 가리비를 문양도 순례길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오늘 7월 25일은 야고보 성인의 축일이라 더욱 뜻깊은 날이다. 곧 성당에서는 순례자들이 이 길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거라 했다.

각국의 언어로 노란 화살표에는 '나는 길입니다.'라고 적혀 있는 노란 화살표가 보인다. 한국어로 '나는 길입니다'도 보이고, 봉사들이 순례자를 위한 기도하는 시간을 위해 여러 준비를 한 것이 엿보였다.


성당에 한국인 순례자가 두 분 계셨고, 기도하는 시간이 내게는 참 뭉클한고 좋았다. 한국인 여자분이 ㅡ이 길을 걸을 때 처음엔 혼자 걷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실은 주님이 늘 함께 하셨다.ㅡ는 말을 듣는데, 머리에 경종을 울리듯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오늘 아침 아스트로가로 오는 길. 혼자 아침 늦게 출발해서 그랬는지 정말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고, 호신용 가스 스프레이를 손에 꽉 쥔 채 무서움에 떨며 걸었다. 그런데 여성 순례자의 '주님은 늘 함께'라는 말을 듣는 순간. 실은 내가 두려움에 떨며 혼자라고 생각했을 때도, 항상 주님이 함께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 앞으로도 무섭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자 분도 이 길 걷는 모든 분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일정 마치셨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도 한국인으로서 순례길에 있는 것이 괜스레 자랑스러웠다.

기도하는 시간 전부터 찰스 사제님 인상이 아주 너무 좋아서 계속 말하고 싶었는데. 성당에서의 행사가 끝난 후 결국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그는 한 달간 이 곳에서 파견 나와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영국 출신이고, 어머니는 콜럼비아 출신으로 영어와 스페니시를 할 수 있다고. 나는 ㅡ베드 버그 때문에 너무 속상하다.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처음엔 주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오늘 기도하는 시간에 다른 순례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오늘 내가 두려움에 떨며 아스트로가로 올 때도 주님은 늘 함께였다는 깨달았다.ㅡ라고 했다. 찰스 사제는 특유의 인자한 미소로 나의 말에 공감하며, 내게 산티아고까지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거라며, 무한한 격려를 해주었다.

나는 찰스 사제는 어떻게 사제가 될 큰 결심을 했는지 물었다. 그는 열아홉 살에 인도에 갔는데 길에서 잠을 자고, 음식을 먹는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들을 위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음을 가지다가 사제가 되라는 응답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는 여자도 좋아하고, 노는 것도 좋아했던 그는 5년 동안 계속 그 응답에 부인했다고 한다. 5년 후. 결국, 그는 사제의 길이 자신의 길이라는 생각 끝에 신부님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좀 더 솔직하게 신부님은 결혼도 못하고 성관계도 못 가지고, 돈도 못 번다고. 하지만 교회에서 숙식을 제공하기에 돈도 필요 없다고 했고. 인자한 얼굴에 나타나듯 아주 행복해 보였다.


길을 걸으며 베드로가 해 준 신부님의 이야기들이 이제야 다시 마음에 스쳤다. 왠지 모르게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간 베드 버그 때문에 힘들었던 마음도 눈 녹듯 모두 사라졌다.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다. 중학교 1학년 시절. 신임 선생님으로 우리 반 담임을 맡으셨던 박병철 선생님도 생각났다. 많은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싶은 선생님이었는데, 언젠가 찾아뵙고 싶다는 마음과 같았다.


찰스 사제를 짧게나마 사람책으로 읽은 후,

나는 천천히 오늘 하루 일과를 되돌아보며 산책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사명감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저마다의 사명을 이루며 삶을 살아 갈텐데. 누군가는 찰스 사제처럼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봉사하는 삶을 택한다. 나는 비록 봉사하는 수도자의 삶은 아닐지라도, 그로 인해 어떤 삶을 선택하며 살아야 할지. 어떤 선택을 해야 내 삶이 헛되지 않고, 내 사명을 이룰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해거름에 아스트로가 마을이 아름답게 물든다.

이토록 삶이 아름다운 순간에도. 절박한 순간에도.


신은 늘 함께라는 걸 잊지 말자.

God with us,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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