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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s Adventure Feb 02. 2021

밥 다 먹었으니 나가라고?

미국 식당 프로토콜. 눈치보지 마세요!

평범한 한국 식당



고오오오급진 식당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식당에 대해 써 보겠다. 고깃집, 분식집, 파스타집, 피자집, 치킨집, 백반집, 해장국집, 보쌈집, 중국집 등등. 흑흑 쓰다 보니 군침이 돈다.


좌: 신성식당, 우: 서가앤쿡


보통 한국에서 식당에 가면 순서가 이렇다. 

(1) 입구에 들어가면 금방 종업원이 눈치를 챈다. 그리고 대개 아무 데나 비어 있는 곳에 앉으라고 한다.

(2) 종업원 중 한 명이 와서 물을 주고 메뉴판을 준다. 메뉴가 벽에 붙어 있는 경우도 많다.

(3) 조금 뒤 종업원 한 명이 다시 와서 주문을 받는다. 메뉴가 벽에 붙어 있는 경우는, (2) 단계 물을 가지고 올 때 이미 주문을 받으려 하는 곳도 많다. 

(4) 종업원 한 명이 음식을 가지고 온다. 

(5) 식사 도중 혹은 끝나갈 무렵 종업원이 계산서를 가지고 온다. 계산서를 안 갖다 주는 경우도 많다. 

(6)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대체로 식탁을 치우지 않는다. 

(7)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한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랐으니 미국에 오기 전 까진 식당은 으레 이렇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과 다른 점이 생각보다 많다. 

(1) 물 주는, 주문받는, 음식을 내 오는, 계산서를 주는, 계산을 하는 종업원은 거의 랜덤으로 결정된다. 그냥 필요한 시점에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종업원이 맡아서 일을 한다.

(2) 벨이 있어서 큰 소리로 종업원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

(3) 식사가 끝난 뒤에 종업원이 와서 식탁을 치우기 시작하면, 나가라는 눈치를 주는 것 같다. 암묵적인 눈치랄까. 그러니 눈치를 주지 않으려는 식당에서는 식사 끝나도 바로바로 안 치운다. 그치만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바쁠 때는 "이제 그만 일어나시죠"하는 눈치로 식탁을 치우기도 한다.

(4) 굳이 음료를 시키지 않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

(5) 음식이 많이 남더라도 싸가지 않는다.

(6) 여러 명이 가서 먹어도 대체로 1명이 계산하고 손님들끼리 알아서 돈을 배분한다.






미국 식당 프로토콜



고오오오급이든 아니면 김밥천국과 비슷한 급(?)의 식당이든 프로토콜이 엇비슷하다. 고급 식당에는 좀 더 분업화된 종업원들이 있다. 예를 들면 자리 안내해 주는 사람, 물 따라주는 사람, 그릇 치우는 사람, 식탁에 떨어진 부스러기 치워주는 사람 (버스 보이라고 한다), 음식을 내 오는 사람, 주문받고 결제 도와주는 사람 등등 다 따로 있다. 고급이 아닌 경우는 대체로 종업원 1명이 나를 아예 담당해서 저 모든 일을 한다. 


좌: 뉴욕에 있는 마레아, 중: 시카고에 있는 걸 앤 더 고트, 우: 걍 다이너

사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국 식당이다. 왼쪽은 뉴욕에 있는 마레아 (Marea)인데, 진짜 진짜 진짜 개존맛이므로 제발 뉴욕에 가게 되면 꼭 가보라. 예약 필수다. 뉴욕에선 하도 뮤지컬이나 공연을 보러 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저녁 먹으려고 착석하니까 혹시 오늘 이따 공연 보러 가냐고 몇 시에 가냐고 물어보더라. 그 시간에 맞춰 일어날 수 있도록 시간 조절을 해주는 거다. 마레아는 매우 고급진 축에 속하고 좀 비싸다. 


오른쪽은 시카고에 있는 걸 앤 더 고트 (Girl and the Goat)다. 탑 셰프라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한 스테파니 이자드라는 사람이 낸 식당인데, 되게 독특하면서 맛있다. 여긴 마레아 급으로 고급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보통 이상? 정도 하는 식당이다. 맨 오른쪽은 다이너라고 아주 평범한 식당이다. 


미국 식당에 가면 

(1) 입구에서 기다리라는 표지판이 있다. 그래서 여기 서서 기다린다. 아무 데나 막 앉으면 안 된다. 입구에 사람을 앉혀주는 종업원이 아예 따로 있는 경우가 있다. 이 사람들의 일은 손님이 오면 어느 테이블에 앉을지를 결정하고, 지정된 테이블로 안내하는 게 일이다. 작거나 번잡하지 않은 식당은 입구에 사람이 따로 없는 경우도 꽤 있다.

(2) 착석하면 나를 담당하는 종업원이 온다. 그렇다. 나를 책임져(?) 주는 종업원이 지정이 돼 있다. 보통 내가 앉게 되는 테이블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 종업원이 보통 물과 메뉴판을 가지고 온다. 메뉴는 마실 것과 먹을 것 메뉴판이 따로 있는 경우도 많다. 그날 스페셜이 있거나 하면 종업원이 이때 좀 설명을 해 준다.

(3) 그리고 꼭 묻는 것이 "음료 뭐 마실래?"다. 손님은 보통 이때 음료를 시킨다. 그리고 종업원은 떠난다. 메뉴를 읽어보고 결정하라고 시간을 주는 거다. 성격이 급한 한국인 나는 이때 종업원이 너무 오래 떠나 있으면 정말 답답하다. 매우 빨리 메뉴를 정하더라도, 내 담당 종업원이 나타나지 않으면 세월아 네월아 기다려야 한다... 어우 답답해. 

(4) 드디어 내 담당 종업원이 내 음료를 가지고 오면, 보통 이때 음식을 주문한다.

(5) 주방에서 음식이 준비되면 내 담당 종업원이 음식을 가지고 온다. 고급진 식당에서는 음식을 가져다주는 종업원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다.

(6) 식사 도중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내 담당 종업원에게 말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물을 더 달라고 하고 싶으면, 내 담당 종업원이 내 눈에 띌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눈팔다간 종업원이 그냥 지나가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서고 종업원에게 "나 뭐 부탁할 거 있어"라는 애절한 눈빛과 에너지를 쏴 줘야 한다. 아우 피곤하다.

(7) 식사가 끝나가면 그릇을 바로바로 치운다. 심지어 1명이 식사가 끝났고 다른 1명은 여전히 식사 중이라 하더라도, 식사 끝난 사람 그릇을 바로바로 치운다. 음식을 치울 때 음식이 좀 남으면 싸갈 거냐고 거의 100% 물어본다. 

(9) 그리고 디저트 먹을 거냐고 꼭 물어본다. 3단계의 "음료 마실래"와 비슷하게 "디저트 먹을래"도 꼭꼭 물어본다.

(10) 디저트를 시키면 또 내 담당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디저트까지 다 먹고 나면 그릇을 치워주고, 이때 대체로 계산서를 가져다준다. 그러면서 "얼마든지 더 머물다 가라고" 덧붙인다. 가끔은 디저트까지 다 먹었는데도 계산서를 안 갖다 주면, 내 담당 종업원과 눈을 맞추기 위해 열심히 미어캣처럼 신경 쓰고 있어야 한다.

(11) 이게 끝인 줄 알았죠!? 오 노우~ 나는 보통 카드로 결제하는데, 카드를 계산서와 같이 두면 종업원이 카드를 가져가서 결제를 하고 영수증과 카드를 돌려준다. 그러면 이제 팁을 적어야 하고, 이제야 식당을 나설 수 있다. 내가 밥 다 먹고 이제 일어나서 나가고 싶다과 해서 바로바로 계산해주는 게 아니다. 종업원이 내 카드를 다시 가지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현금도 마찬가지다. 거스름돈을 가져다줄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종업원님 날 봐줘요!






그릇을 치우더라도 눈치 볼 것 없다.



미국 식당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게 세 가지 있다. 첫째는 그릇을 치운다고 해서 나가라는 눈치를 주는 게 아니라는 것. 예전에 미국 주유소에서 화장실 쓰는 걸 눈치 봤다고 쓴 적이 있는데, 식당에서 그릇 치울 때도 난 눈치를 봤다. 나가라는 건가 흑. 그럴 때면 한국에서처럼 빨리 나가라는 소리인 줄 알고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했다. 근데 알고 보니 손님이 대화하기 편하라고 그릇과 식탁을 깨끗하게 정리해 주는 거였다. 오히려 그릇을 늦게 치워주면 "뭐야 우리 얘기하는 데 불편하게 계속 이러고 있으라는 건가?" 하는 손님도 있다. 정말 지나치게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으면 대체로 식당에서 머물고 싶을 만큼 머물다가 간다. 눈치 보지 않아도 돼요!


둘째는 남은 음식을 싸가는 거다. 아무것도 손대지 않은 메뉴 자체를 포장해 가는 건 한국에서도 자주 있지만, 먹다 남은 음식을 싸가지고 가는 건 정말 생소했다. 처음엔 음식을 싸가지고 가는 게 뭔가 창피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창피해서 일부러 잘 안 싸가지고 왔다. 시간이 지나 나도 적응이 되고 나서는 음식이 조금 남아도 무조건 싸가지고 온다. 미국 식당은 일단 양이 너무나 많아서 한 끼에 다 못 먹는 경우가 많다. 미국 양에 익숙해지다 보니 한국에서 식사를 하면 1인분이 고작 이 정도라고? 놀란다. 남은 음식을 싸 오면 집에서 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니까, 싸오는 게 이득! 가끔은 음식을 싸가지고 집에 오다가 노숙자를 보면 노숙자에게 음식을 주기도 한다. 내가 먹다 남은 음식을 주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노숙자가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보통 준다.


셋째, 김밥천국 같은 식당에서도 예약을 받는다. 그리고 식당에 가기 15분 전에 전화해서 지금 가는 데 예약되냐고 물어본 뒤, 예약을 할 수도 있다. 롸? 지금 가는 데 예약된다고요...? 암튼 예약 문화가 매우 일반적이다. 돈을 미리 받고 예약을 받는 경우는 저어어엉말 고오오오급진 곳 아니고는 드물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슐랭 스타 붙은 곳에선 대체로 예약금을 받던데, 미국에선 미슐랭이더라도 예약금 안 받는 곳이 더 많았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플랫폼인 오픈 테이블 (Open Table)이나 옐프 (Yelp)에서 예약을 할 수 있다.


이를 제외하더라도 한국과 다른 점이 많다. 내 담당 서버가 있는 것도 신기하다. 내 담당 종업원이 너무 바빠서 나를 신경 써 주지 못할 때, 답답해서 다른 서버에게 부탁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어 너 담당 서버 불러줄게"라고 했다. 아무리 다른 서버가 일이 없이 놀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날 도와주지 않는다. 무조건 내 담당 종업원이 내 물을 가져다주고 주문을 받는다. 팁 때문일까? 암튼 이 테이블은 누구 담당이라는 게 아주아주아주 명확하다. 그래서 이제는 내 담당 서버가 너무나 날 잊어버리고 내 테이블로 오지 않으면 다른 서버에게 "우리 담당 서버 좀 불러줄래요?"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미국에선 워낙 식사와 함께 음료수를 마시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종업원도 "뭐 마실래?"를 무!조!건! 물어본다. 우리나라에서는 피자집이나 파스타집이 아닌 이상 굳이 음료 뭐 시킬 거냐고 물어보진 않는데. 나는 대체로 물만 마시는데 물 달라고 할 때 수돗물 (tap water) 줄까 병에 든 물 (bottled water) 줄까 물어보기도 한다. 또 식사 후에도 디저트를 곁들이는 경우가 워낙 허다해서 그런지 거의 대부분 디저트 뭐 먹을 거냐고 또 물어본다. 


미국 식당엔 벨이 없고, 나를 담당하는 서버가 정해져 있어서 서비스가 느리다. 안 그래도 느린 서비스인데 음료 주문받고 사라졌다가, 음식 주문받고 사라졌다가, 계산서 가져다주고 사라졌다가, 다시 카드 가져다주는 등 서버가 일을 한 번에 처리하지 않는다. 답답. 그래서 시간이 촉박할 때는 아예 자리에 앉자마자 "뭐 마실래"라는 질문에 "앗 사실 나 뭐 먹고 싶은지 아는데, 그냥 음식 시킬게" 하면서 음식을 바로 시킨다. 그리고 음식이 나올 때 미리 계산서를 지금 달라고 말한다. 그래 봐야 서버가 결제하고 내게 다시 카드를 돌려주기까지 하안참 걸린다.





팁은 얼마나?



팁 관련된 글은 여기저기 많아서 짧게 쓰겠다. 우리나라에서 팁이라고 하면, 서비스의 질에 따라 줘도 되고 안 줘도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 식당에서 팁은 줘도 되고 안 줘도 되는 옵션이 아니다. 미국 식당에서 팁은 무조건 줘야 한다. 서비스가 아무리 구리고 짜증 나고 마음에 안 들어도 최최최최소 15%는 줘야 한다. 나는 보통 18%를 주고, 정말 감동적인 서비스를 받으면 20-25%를 준다. 예를 들면 기념일이라고 했더니 사진 찍어주고 이메일로 보내주고 디저트 케익 챙겨주고 버터 맛있다고 했더니 아예 버터를 싸준 식당이 있었다. 여기선 돈도 많이 나왔는데 너무 감동받아서 팁을 30% 줬던 기억이 난다. 암튼 미국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생각보다 돈이 훨씬 많이 나온다. 메뉴에 적힌 가격에다가 택스가 붙고 팁도 내야 하니까. 




팁은 세후 가격 (메뉴 가격 + 택스)에 몇 프로를 주는 게 아니라 세전 가격을 기반으로 준다. 가끔 세후 가격을 기반으로 주는 경우도 있던데 어차피 세금은 식당이 가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굳이 세후 가격에 기반할 필요가 없다.


참고로 18%는 일반 식당의 경우다. 만약 부페에 간다면 보통 10% 정도를 준다. 테이크 아웃을 할 때는 아예 팁을 안 줘도 된다. 만약 음식 배달을 시켰다면 배달하는 분에게 팁을 꼭 줘야하고 난 min(10%, $3) 정도를 준다.  아참, 그리고 만약 사람들이 많은 모임 (약 6-8명 이상 정도)라면 팁이 알아서 계산서에 이미 포함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또 따로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





식당에 간지 오래됐다. 마지막으로 간 적이 아마 작년 2월이었을까? 기억도 안 난다. 작년 3월, 봄방학을 맞아 뉴욕에 놀러 가려고 했다. 마레아도 예약해뒀었고 새로 생겼다는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페루비안 레스토랑 예약도 해놨는데. 그 직전에 팬데믹이 터지면서 락다운이 시작됐다. 따흑. 어서 코로나가 잡혀서 마레아에 가게 됐으면 좋겠다. 남이 해 주는 밥 먹고 싶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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