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가 끝나고 미국에선 뭘로 해장할까?
예년 같았으면 연말이니까 회식에 친구들끼리 파티에 가족 모임에 술자리가 아주 많았을 것이다. 미국에선 크리스마스 날은 보통 가족과 함께 거나하게 식사하고 와인을 마시고, 새해 전 날에는 친구들과 큰 파티를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으레 이런 파티들이 끝나면 그다음 날 아침에는 길거리가 아주 조용하다. 왜냐면 다들 숙취에 정신을 못 차리고 집에서 앓고 있기 때문.
숙취 하니 생각하는 문화 차이가 하나 또 있다. 그건 바로 해장하는 방법도 너무나 다르다. 식문화가 다르니 해장도 다르게 한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장할 때 북엇국, 콩나물국, 해장국, 라면처럼 뜨끈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지만, 미국애들은 해장으로 탄수화물이 와방 많이 들어가거나 기름이 철철 흐르는 음식을 먹는다. 예를 들면 먹다 남은 차가운 피자, 햄버거, 베이컨, 아보카도 토스트, 와플, 프렌치 토스트 등 을 먹는다. 맥모닝도. 어으 보기만 해도 니글니글한 이런 걸로 해장을 한다고? 빵을 먹으면 그게 알콜을 흡수한다는 미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찾아보니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도 숙취해소로 피자를 먹는단다. 심지어 미국에는 숙취용 피자 레서피까지 존재한다. 또 숙취용 프렌치 토스트 레서피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다음 날 아침에 미모사나 블러디 메리 같은 가벼운 칵테일로 해장을 하기도 했다. 술을 해장하려고 술을 마신다고? 술을 잘 안 마시는 나는 어리둥절...
그랬던 사람은 바로 로시오였다. 로시오는 내 박사 친구로 스페인 출신인데 지금은 미국에서 교수한다. 어느 날 로시오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커피도 제일 싸구려만 마시고 돈을 엄청 아끼기 시작했다. 박사에게 나오는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돈을 더 아끼다니? 나중에 알고 보니 와인을 너어무 좋아해서 와인에다가 돈을 쓰느라 돈이 없어서라고 했다. 헐! 로시오는 거의 매일 저녁 와인을 마셨고 (근데 또 아침형 인간이라서 귀신같이 새벽 6시에 일어난다) 주말이면 매일 파티에 갔다. 그래서 가끔 주말 아침에 여자애들끼리 브런치를 먹으러 모이면, 로시오는 가장 먼저 미모사를 시키면서 어제 술 많이 마셔서 술로 해장해야 한다고 했다.
로시오가 어느 날, 자기가 숙취를 완전히 없애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한다. 그 방법은 바로 자기 전에 물을 500 ml 정도 마시고 자는 것. 대신 자다가 깨서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한다는 부작용이 있다. 시모네가 이 말을 듣고 따라 해 봤는데, 정말 기적같이 그다음 날 숙취가 없었다면서 그때부터 우리 동기들은 술을 마시면 다들 집에 가서 물을 발칵발칵 들이키고 자기 시작했다.
참고로 호주 등지에서 갈아 만든 배가 숙취해소제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나중에 더 자세히 쓰겠지만, 서양 배는 너무너무너무너무 맛이 없다. 얼마나 맛이 없냐면, 일단 슈퍼마켓에서 팔지를 않는다. 아주 큰 슈퍼에 가야만 파는데, 파는 이유도 과일로 먹기 위함이 아니라 베이킹할 때 쓰기 위함이다. 아무 맛도 안 나고 좀 떫으니까 설탕에 아주 절여서 베이킹할 때 넣어서 먹는다. 그래서 서양인에게는 갈아 만든 배라는 주스 자체가 매우 생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아 만든 배가 각광받는 이유는 진짜로 해장을 도와주기 때문일까?
이 글을 쓰면서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 보니 해장에 좋은 음식에는 큰 문화 차이가 있고, 미신도 많다는 걸 알게 됐다. CNN 기사를 보니 세계의 다양한 해장 방법이 나온다. 여기 나온 해장 방법은 정말 생각만 해도 한국인인 내 기준 토가 나올 것 같다. 빠리에서는 미모사, 런던에서는 피자, 베를린에서는 소세지에 케찹 (게다가 카레 가루까지...), 시드니는 아보카도 토스트, 더블린과 코펜하겐은 샌드위치, 뉴욕은 맥모닝, 모스코는 오이 피클 (국물까지 다...), 몬트리올은 푸틴 (프렌치 프라이에 치즈와 그레이비까지 넣은...) 등등. 어우 나보고 술 마신 다음날 아침에 오이피클에 국물 쫙 마시라고 하면 바로 토할 것 같다. 뜨악.
좀 신기한 거는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해장 음식에 국물 혹은 죽 종류가 많다! 서양은 다 기름지고 탄수화물 천지인데. 해장도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게 신기하다.
그리고 또 검색하다 알게 된 건 해장용으로 먹는 음식들을 보면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는 것. 숙취를 제거 (cure)하는 데 좋은 음식과, 숙취로 인한 통증 (속 쓰림, 메스꺼움, 두통 등)을 완화시켜주는 음식. 숙취를 제거하는 데는 직빵은 수분 공급 숙취가 결국은 탈수현상 때문임을 스스로 체득한 로시오 대단함, 그리고 아스피린이나 아이부프로펜 (타이레놀은 안됨)같이 염증을 치료하는 anti-inflammatory 약들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보통 생각하는 해장용 음식 (피자, 햄버거, 프렌치 토스트, 미모사 등)은 숙취 자체를 제거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지만, 숙취로 인한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기름진 피자나 햄버거같은 음식이 해장 자체에는 기여하지 않지만, 속이 그나마 편안하게 느끼도록 돕는다는 기사가 꽤 있다.
숙취는 병과 통증을 둘 다 가리키는 단어로 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혼동하는 게 아닐까 싶다. 숙취 제거 (cure)는 말 그대로 술의 해독작용을 도와서 숙취의 원인 자체를 제거하는, 즉 병이 낫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숙취에 동반하는 통증을 완화하는 건, 알콜 자체를 해독해서 몸이 낫는 것이 아니라, 숙취 때문에 일어나는 통증을 우리가 덜 느끼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빵을 먹으면 속이 그나마 편안해지는 걸 느껴서 마치 숙취가 제거된다고 믿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숙취가 제거되는 것이 아니고 통증이 완화되는 것일 뿐이다. 해장으로 미모사나 칵테일을 마시는 것도 비슷하다고 한다. 술을 마시면 사람을 좀 진정시키고 안정시키니까 당연히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숙취 자체를 제거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중에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고.
기사를 찾아보니 배 쥬스와 코코넛 워터 등이 통증 완화만이 아니라 숙취 제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어쩌면 갈아 만든 배가 엄청난 수분이 탈수 현상을 치료하는 게 아닐까 싶다. 게다가 알콜 분해를 돕는 효소도 있다니까! 우리나라에서 해장용으로 먹는 북엇국, 해장국, 콩나물국 등에도 결국 물이 많으니까 (그만큼 소금도 많겠지만...) 탈수 현상을 좀 막아주는 게 아닐까. 그리고 정말 토나오는 러시아식 해장 방법인 오이 피클과 국물도 어쩌면 탈수 현상 완화와 알콜 분해 효소 등의 이유로, 어쩌면 일리가 있는 해장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하더라도 난 아마 평생 피클과 국물로 해장하진 않을 거다.
나는 워낙 술을 못해서 조금만 마셔도 금방 토한다. 대학교 때 열심히 마셔보려고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결국 변기를 붙잡고 토하면서 "이렇게 맛도 없고 내 몸을 괴롭게만 하는 걸 왜 내 돈 내고 마시면서 토까지 해야 하나"는 현타가 왔다. 나는 토하고 잠들어서 그런지 딱히 숙취라는 걸 겪어 본 적이 없다. 숙취가 올 만큼 마시기 전에 토하기 때문에... 박사를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부추기는 사람이 없으니 아예 술을 안 마시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술 먹고 토한 지가 언젠지도 기억이 안 난다. 아마 평생 술을 많이 마시진 않겠지만 혹여 숙취가 생길 정도로 많이 마시는 날이 오면 갈아 만든 배에 물 500 ml를 시도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