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elles Adventure Dec 26. 2020

미국 가정집 크리스마스 디너

코로나로 간소하게

남편의 친가는 무려 12남매다. 그러니까 삼촌, 숙모만 해도 24명이다. 게다가 사촌들은 뭐 거의 50명이 넘는다. 사촌 중에 아기 낳은 사람도 많아서, 친가가 다 모이면 100명이 넘는다. 아직도 이쪽 집안사람들 이름은 다 못 외웠다. 삼촌과 숙모 이름만 겨우 외운 정도? 사람이 이렇게 많다 보니 올해는 아예 친가 모임을 취소했다. 땡스기빙 때도 안 모였고.


외가는 그에 비하면 아주 단촐하다. 결혼 안 하신 이모가 한 분 계시고, 할아버지, 외숙모가 끝이다. 외삼촌은 돌어가셔서 외숙모만 있는데, 사이가 좋아서 자주 만나고 명절 때 꼭 같이 모인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퇴직하고 집에만 있는 이모, 할아버지, 시엄빠와 3월부터 재택근무를 해서 역시 집에만 있는 우리 집과 남편의 남동생이 모였다. 외숙모는 재택근무가 아니라서 이번엔 아쉽지만 오지 않기로 했다. 다른 남동생이 한 명 더 있는데 이쪽 가족도 재택근무가 아니라서 오지 않았다. 대신 음식을 상자상자에 넣어서 가져갈 수 있도록 넉넉히 만들었다.



원래는 외가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친가는 크리스마스 당일에 모이는데, 어차피 올해 친가는 안 모이므로 크리스마스 당일에 식사를 하기로 했다. 결혼을 안 한 이모가 할아버지를 보살피며 같이 사는데, 집이 정말 논밭에 있다. 집이 오래됐고 레노베이션이 안돼서 크리스마스 디너 요리를 다 하려면 오븐이 모자란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처럼 큰 디너를 준비할 때는 울 시엄빠네서 한다.





매 크리스마스 때면 나오는 크리스탈 물컵과 장식들이 정말 너무너무 예쁘다. 크리스마스 트리, 냅킨 링, 개인 소금 후추 통, 이쑤시개 꽂이까지! 반짝반짝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난다.

디너에 참여하지 못하는 외숙모네와 남동생네를 위해서, 올해는 모든 음식을 싸가지고 갈 수 있는 메뉴로만 단촐(!)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 이모가 다 계획하고 준비하는데, 근 2주 전부터 미리 만들 수 있는 건 전부 다 미리 만들고 얼려 놓는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시엄빠네로 하나둘씩 옮겨 놓는다.


올해의 단촐한 디너 메뉴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저녁을 먹어서 이모가 제목을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계속 써놨다. 이게 단촐한거다... 다 먹고 다면 진짜 미저러블해진다ㅋㅋ 콤부차​ 필수다.



원래는 크리스마스 이브 전 날에 이모와 할아버지가 아예 시엄빠네로 와서 하룻밤 잔다. 왜냐면 이모사 새벽 3시부터 음식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이모는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지금은 퇴직하고 할아버지를 돌보는 게 풀타임 일이다. 아무튼 올해는 단촐!하게 디너를 하기로 했으므로 그냥 당일 날 모든 걸 하기로 했다. 그 말은 이모가 평소에 새벽 3시부터 하던 것들을 시엄빠가 한 아침 7시부터 다 해야 한다는 것...! 게다가 올해는 외숙모와 막내 동생네 줄 음식은 아예 따로 담아 줘야 하니까 일이 두배!



이모는 엄청 꼼꼼해서 계획표를 늘 세워오는데, 올해도 역시 계획을 짜 오셨다. 그 전 날 이것저것 해동해 놓고 테이블 다 세팅 해 놓고, 필요한 그릇들과 서빙 접시 등등을 모두 다 꺼내 놓는다. 부엌에 자리가 모자라니까 세탁기가 있는 다용도실과 차고에도 테이블을 펴고 슬로우 쿠커나 냄비 등을 다 준비한다.


시엄만 아침부터 일어나서 음식을 했고 남편은 8시쯤 일어나서 돕기 시작했다. 나는 늘어지게 10시까지 자고 샤워하고 10시 반부터 도왔다. 아이고 정신없어ㅠㅠ 설거지 거리도 완전 산더미다. 한 명은 세제 칠하고 한 명은 헹구고 한 명은 물기를 닦는 식으로 해야 설거지가 돌아간다. 완전 한국 추석 분위기다. 12시엔 이모와 할아버지가 왔다.




에피타이져


여차 저차 해서 1시 반이 됐고 에피타이져를 전시했다. 나는 편두통 식단을 따르고 있어서 아쉽게도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생당근, 샐러리, 브로콜리뿐이었다 따흑 ㅠㅠ 제일 인기가 많았던 건 테리야키 치킨 윙, 랍스터 치즈케잌 (맨 왼쪽 사진에 흰 접시 위에 동그랑땡마냥 올라가 있는 것들), 그리고 매년 인기가 많은 버섯요리 (맨 왼쪽 사진에서 어두운 색깔에 숟가락이 하나 얹혀진 것)이다. 이모는 매년 메뉴를 바꾼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같은 메뉴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유일하게 매년 반복하는 메뉴 하나가 바로 저 버섯요리다. 진짜 맛있다ㅜㅡㅜ 근데 난 못 먹었지 흑





에피타이져가 끝나면 샐러드, 그다음에는 수프가 이어진다. 난 역시 편두통 식단에 따라서 이모가 준비한 건 먹지 못하고 내건 따로 만들어서 먹었다. 보통 여기까지 먹으면 이제 벌써 배가 부르다. 아직 메인 코스 시작도 안 했는데... 불행 중 다행인 건, 에피타이져를 못 먹었더니 수프를 먹고 나서도 배가 별로 안 불렀다! 와우!



메인 코스에는 프라임 립과 치킨, 곁들일 방울양배추와 구운 감자 고구마를 준비했다. 나는 역시 편두통 식단 때문에 치킨은 못 먹었지만 정말 다행히 프라임 립과 방울양배추, 감자, 고구마는 먹을 수 있었다. 흐규흐규ㅠㅠ 프라임 립은 진짜 너무 맛있었다. 오븐에서 3시간 동안 통째로 구웠다. 아예 온도계​를 꽂아 놓고 구워서 중간에 오븐 문을 열고 확인하지 않아도 돼서 정말 편했다. 이번에 쓴 온도계는 내가 저번에 소개한 온도계​의 업그레이드 버젼인데, 나중에 더 자세히 쓰겠다.





휴 드디어 디저트다. 저어엉말 운 좋게 디저트가 내가 먹을 수 있는 거라서 너무나 행복했다. 그리고 보통의 미국 디저트 같지 않게 너무 달지 않아서 더 좋았다. 보통 미국 디저트는 진짜 깊이 없이 그냥 쌩 달기만 한 디저트인데, 이건 약간 한국처럼 덜 달고 대신 다른 풍미가 풍부한 그런 케잌이었다.



준비하느라 분주한 오전 내내, 그리고 식사하는 내내 노엘이는 혼자 잠을 잤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 노엘이가 뭔가 주워 먹을 게 있나 싶어서 식탁에 올라왔다. 노엘이가 킁킁킁킁 대며 식탁 위를 탐색하다가 불이 켜 있는 초에 가까이 다가갔다. 평소 우리 집에서는 노엘이가 초 근처에 절대 안 가기 때문에 당연히 이번에도 초를 피해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 걸 초에 왼쪽 수염을 홀랑 태워버렸다ㅠㅠ 평소엔 이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헐랭ㅠ 불쌍한 것ㅠ 너무 안쓰럽고 너무 불쌍한데 저 꼬불꼬불하게 탄 수염이 너무 귀엽기도 했다.


두 시간에 걸친 식사가 끝나고, 세 명이 설거지를, 한 명은 남은 음식 소분을, 한 명은 그릇을 제자리로 옮기는 일을 했다. 휴~ 그리고 저녁이 되자 선물 개봉식을 했다. 선물은 나중에 더 자세히 쓰겠다.


긴 하루였다.

이전 11화 해장으로 피자 어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