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리지언니 Apr 08. 2020

공원을 선물하는 일

미즈노 마나부 미드타운 브랜드 스토리


이전 글에 이어서 도시에 결핍된 공간을 복합 상업시설에 담은 유명한 사례를 하나 들어볼까 합니다. 도쿄의 미드타운입니다. 그게 언제적 프로젝트인데 지금 소개하나 의아해하실 분도 있으시겠죠. 사실은 얼마 전에 미즈노 마나부가 '팔다'에서 '팔리다'란 책에서 쓴 미드타운 자체 브랜딩에 참여한 이야기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저도 이곳에 답사를 가 본 적도 있고 건축적으로는 이미 누가 어떤 의도로 설계를 했는지 알고 있었지만, 미즈노 마나부가 생각하는 브랜딩은 또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설계의 콘셉트가 크리에이터의 집요한 관찰에 의해 다시 브랜드 스토리로 태어나는 이야기랄까요.


미드타운이 세상에 선 보인 해는 2007년이었지만, 미즈노 마나부가 관여한 해는 2008년으로 '도쿄 미드타운 터치'라는 광고 이벤트를 담당한 후였다고 합니다. 맨 처음은 "미드타운을 띄우기 위한 이벤트"를 사람들에게 홍보해 달라는 의뢰였는데, 거기서도 그는 우선 그의 강의에서 말하는 방법론으로 미드타운의 '다움'이 뭔지를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아래의 글은 그 다움을 찾아가는 미즈노 마나부의 이야기입니다.



도쿄는 2000년대 들어서부터 도심에는 거리나 구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상업시설이 몇 군데 생겼습니다. 미드타운이 있는 롯폰기 구역에도 모리빌딩이 운영하는 '롯폰기 힐즈'가 2003년에 오픈하였고, 마로누우치 구역에는 대형 부동산 회사인 미쓰비시지쇼가 직접 세운 '마루빌딩'과 '신마루 빌딩'이 2002년과 2007년에 각각 오픈하였습니다.

그것들과 비교했을 때 미드타운의 '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특유의 매력, 독특한 맛은 어떤 것일까. 여느 때처럼 여러 자료를 참고하면서 이미지를 점점 찾아가는 중에, 제 마음속에 떠올랐던 것은 대지 뒤편으로 널찍하게 있던 잔디밭 공간의 존재였습니다. 거기서부터 여러 가지를 더 조사해 보고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뉴욕의 센트럴 파크, 런던의 하이드 파크 등 세계 주요 도시에는 대부분 커다란 공원이 있어, 교외로 나가지 않아도 도시 생활자들이 자유롭게 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도시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원이 의외로 적습니다. 일본인은 여가를 즐기는 방법이 서툴다고 종종 이야기되는데 어쩌면 그것도 공원이 적은 것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본에는 공원이 적을까요? 애초에 그런 땅이 없었기 때문 아닐까요. 혹은 공원 같은 공공의 장소에 모이기보다는 누군가의 집에 모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고요. 이것저것 두루 생각했었습니다만, 그때 제가 세운 가설은 일광욕할 필요가 없기 때문 아닐까였습니다.

뉴욕이나 런던은 도쿄보다 위도가 높은 곳에 있어 일조 시간이 짧습니다. 그래서 귀중한 햇볕을 쬘 수 있을 때 쬐어두려고, 공원을 많이 만들어 일광욕하는 습관이 생겨난 게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는 원래 일조시간이 충분하여 의식적으로 일광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탓에 공원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고 공원에서 즐기는 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했던 것 아닐까. 이렇게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일본에 어째서 이런 곳, 이런 공원이 몇몇 생기기 시작한 것일까요. 어째서라고 생각하세요? 이것은 분명 사람들이 천천히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잠시라도 휴식을 취하거나 연인과 시간을 즐기거나 하는  장소로 공원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것이 요구되고 있겠지만, 일본인에게는 특히 지금 그런 장소가 중요해지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넓은 잔디광장을 만든 미드타운은 그런 사람들의 생각이나 기분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도쿄에선 조례에 따라 건물 규모에 상응하는 녹지를 만들어야 하므로, 일정 규모의 건축물을 지으려면 나무를 심거나 잔디밭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미드타운의 녹지는 정해진 녹지 조성 조건을 만족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규정된 크기를 넘었습니다. 그 정도로 넓은 녹지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실제 그것을 실현할 미드타운은 그만큼 사람들이 살아갈 환경을 충분히 배려한 장소가 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미드타운을 만든 미쓰이 부동산은, 도심에 커다란 건물을 세우고 커다란 장소를 만든다는 의미를 매우 소중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도심에는 땅이 없다고 해서, 규제에 빠듯하도록 건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고층 빌딩을 세움으로 땅을 유효하게 활용하고,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와~하고 달리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일하거나 살아갈 수 있는 장소를 만든다. 이것이 새로운 도시의 존재 방식, 인간 생활 방식의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결국 그 녹지, 잔디광장은 미드타운의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미쓰이 부동산의 자세가 강하게 표출된 '다움'인 것입니다.



미즈노마나부는 미드타운의 브랜딩을 고민할 때, 도쿄에 공원이 적은 것과 여가를 즐기는 것에 서툰 일본인의 생활과의 관계를 찾아냈고, 공원을 가장 인상적인 미드타운의 "다움"으로 정의하고 시민들에게 소개했습니다.



히노키쵸 공원과 연결된 미드타운 가든



 Diversity on the Green



미드타운의 코어 아키텍트(core architect)를 담당한 니켄 설계에 따르면 녹지는 결코 우연한 선물이 아니라, 오히려 의도적으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방위성 옛 건물을 헐고 조성된 미드타운은 단지 상업지구에 그치지 않고, 전체 부지의 40%가 녹지로 조성돼 모든 시민이 제 집 앞마당처럼 드나들 수 있도록 처음부터 만들어진 것이지요. 니켄 설계는 마스터 아키텍트 SOM과 긴밀히 협의해 녹지는 히노키초 공원과 맞닿아 도심 속 산책로를 만드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고, 부지 동쪽의 히노키(노송) 숲부터 부지 서쪽까지 ‘녹지 동선’이 이어지게 했습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 중 하나가 녹지였는데, 모두에게 오픈된 공간으로 어떤 진입 장벽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하기 위해 미국의 이름난 조경 디자인 컨설팅 회사 EDAW의 도움을 얻어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합니다.


4층까지 뚫려 있는 대공간의"Gallera" 메인 쇼핑센터



미드타운의 추가적인 소개를 조금 더 하자면, 북쪽의 광대한 가든 외에 커다란 유리 지붕이 드리워진 플라자, 4층 높이의 쇼핑센터 갤러리아가 있고, 248m 높이의 오피스, 호텔 건물인 미드타운 타워, 두 개의 주택 건물, 산토리 미술관 등이 있어요. 미드타운은 넓은 공원만큼이나 일하고 거주하고 놀고 쉬는 것이 럭셔리하게 조화를 이루는 "도시의 고급스러운 일상"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24시간 365일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도시 속 마을이라는 콘셉트를 구현한 곳으로 지금까지 콤팩트 시티와 복합개발 프로젝트의 벤치마킹 사례로 자주 언급되기도 하죠.



카페나 파티스리 개성적인 숍이 늘어선 "Plaza"



콘셉팅과 브랜딩의 그 아슬한 차이



설계 프로세스를 생각해보면 건축가들은 이미 설계 초기 단계에서 건축면적과 외부공간의 비율과 크기를 결정합니다. 이렇게 필연적으로 생겨난 외부공간은 맥락적으로 공원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을 했을 테고, 조경계획에도 크게 반영이 되었겠지요. "설계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안다고 믿었던 것을 씻어내고, 끈질기게 우리의 조건반사 뒤에 감추어진 기제를 쪼개 보고, 불을 끄거나 수도를 트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행동의 신비와 아연실색할 정도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요. 갑자기 이야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딱 맞는 비유는 아닐지 몰라도 설계는 다양한 분야의 팀과의 협업으로 아연실색할 정도로 복잡한 고도의 지적 작업인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건축가가 만드는 콘셉트는 다양하고 방대하여 모든 이야기를 다 담지 못하는 복잡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지요.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하고 때론 거친 생각은 실사용자의 니즈를 따라잡기에 투박해 보인다고 할까요. 미드타운의 다움은 무엇이다라고 한 마디로 표현하기엔 어쩌면 너무 복잡하다는 이야기죠.


저는 요즘 자주 건축에도 마케팅과 브랜딩이 필요해진 것은 건축가의 복잡한 설계의도가 실사용자의 니즈에 닿아 있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물론 다른 사업적인 이유가 크겠지만요) 건축가의 취향과 철학만을 오롯이 담아 작품으로 건축을 만드는 것 또한 앉지 못하는 의자를 만드는 일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다시 대중에게 다시 어필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브랜딩이 필요한 것인가....모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건축이 쉬워지면 좋겠습니다. 건축가의 처음 생각, 그 콘셉팅이 가장 강렬한 브랜드 스토리가 되면 어떨까요.




*참고

'팔다'에서 '팔리다'로 / 미즈노 마나부 브랜드 디자인 강의

이전 02화 게리와 저드의 인생극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