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기준! 스타벅스 커피
70년생인 나에게 있어 커피문화는 기억에 별로 없다. 난 술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대학 생활 때에도 우리의 문화는 오로지 술이였다. 요즘 친구들처럼 다양하게 맛있는 브런치 까 페등을 찾아다니면서 맛집투어 하는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꼭 유명한 집이 아니어도 그들이 보기에 괜찮다 싶으면 검색신공을 발휘하여 어떻게든 찾아내고 만다. 종종 우리 까 페에도 손님들중에 커피투어(까페투어 겸)를 오신 분이 있다. 부끄럽지만 과한 칭찬을 해 주시는 분들이 그동안 적지않게 있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커플은 커피투어를 하 러 강릉에 유명 까페들을 돌아다녔는데 그곳에서 만난 분들과 얘기하다가 서울가면 이 집을 꼭 가보라며 우리 까페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헤메이다 결국 오셔서 그날 볶 은 콜롬비아 후일라를 핸드드립으로 드시곤 “저희가 찾았던 바로 그 커피맛이예요, 감사해 요” 하면서 감격 해 하는 것 아닌가. 솔직히 나를 포함해 커피하는 사람들은 이 맛에 커피 일을 한다. 이들은 스타벅스를 비롯해 체인화 된 커피의 개성없음을 싫어하는 커피 덕후들 이였다. 한국의 원두커피 시장은 99년 스타벅스 상륙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소위 봉지커피와 자판기 커피의 나라 한국, 바로 인스턴트 커피에 젖어있는 한국에 제대로 된 원두커피 문화 를 알린 전도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시아권에도 이미 일본의 도투루나 토종기업 자뎅등 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미미했다. 스타벅스 커피는 공간적 편익을 컨셉으로 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갔으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는 기존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스타벅스 커피 에 매료되었다. 솔직히 말해 그 분위기에 흠뻑 빠졌다. 커피 문외한이던 나에게 스타벅스 커피는 좋게 말해 강렬했고 나쁘게 말해 쓰디 쓴 커피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거기에 반 박하기보단, 스타벅스 브랜드를 향유하고 세간말로 간지가 나는 멋에 주제가 커피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원두커피는 스타벅스로 암묵적인 기준이 생겨버 린 듯 했다. 스타벅스 커피는 전통적으로 강배전이다. 이는 스타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 의 고집이였다. 아무래도 유럽의 커피와 까페모델을 벤치마크 한 영향이 컸다고 봐야 할 것 이다. 육류를 위주로 하는 미국인에게 있어 커피는 빼놓을 수 없는 기호식품이다. 그러나, 그러한 미국도 과거 7-80년대까지는 저급커피가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미국인 들조차도 스타벅스 덕분에 질 좋은 스페셜티 커피를 대중적으로 마시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스타벅스의 성공이후 생겨난 많은 로컬내 신생 커피업체들이 북미 대륙을 뜨겁 게 달구면서 질좋은 커피 경쟁이 붙기 시작했고, 80년대 이후 미국은 유럽에 버금가는 커피 소비 대국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 스타벅스도 많은 부침을 받게 된다. 어느순간 미국내 스타벅스는 커피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혀 주류를 팔거나 사업을 다각화하면 서 주가관리 회사로 변모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스타벅스는 존경받을만한 기업 이지만 커피라는 영역만 놓고 봤을 때 아쉬움이 많다. 커피인의 한사람으로서 좀 더 수직적 으로 파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말이다. 그래서 난 한 때(지금도 미련은 있 다) 스타벅스를 능가하는 커피 체인모델을 만들고 싶었다. 결국, 자본의 한계등 여러 가지 능력부족으로 그 꿈을 아직까진 실현시키진 못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 다. 어쨌든, 어느순간 스타벅스는 커피의 기준이 되었다. 그것이 까페이든 커피맛이든 공간이든 그 어떠한 것도 스타벅스의 질주앞에 맞설만한 업체는 없어 보였다. 다만, 커피의 본고장이 라 할 수 있는 유럽이나 유럽문화권의 호주등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 이후 가속화된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아시아시장을 타겟으로 공략해 온 다국적 커피업체 나 브랜드들이 더 많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업체가 커피빈이였다. 커피빈 커피는 기존의 스타벅스 커피맛과 다소 대조를 이루었다. 2천년대 중반경 소비자의 커피기호가 조금씩 변화해 가는 걸 쉽게 볼 수 있었다. 동료 여직원들이 언제부터인가 스타 벅스보다 커피빈쪽으로 더 많이 가는 것이였다. 이유를 물어봤다. 그랬더니, 하나같이 커피 빈의 라떼가 훨씬 맛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에스프레소가 마일드 하면서도 산미가 있었는 데 우유가 들어 간 라떼의 경우 커피와 균형을 맞추면서 맛이 고소하고 부드럽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사용하는 원두도 더 고급재료를 쓴 다는 것이였다. 커피의 문외한이였던 내가 맛보기에도 그 차이는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대체적으로 20대 젊은 여 성 직장인들이 커피시장내 오피니언 리더라고 볼 수 있는데 그들의 기호가 변화해 가고 있 었던 것이다. 이후, 한국의 많은 커피업체들이 난립하면서 춘추전국을 넘어선 커피전쟁 아 니 커피광풍이 불어 닥쳤다. 그 선두에 까페베네를 논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 때 미디엄로스트라는 기치를 내걸고 부단 히도 각종 매체를 도배하면서 외식사업에도 다양하게 진출 한 까페베네. 그러나 한국 커피 시장에서 지금의 까페베네는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전락할 위기에 봉착해 있는 듯 하다. 커 피맛만 놓고봤을 때 나름의 고민을 한 흔적은 엿보인다. 그런데 에스프레소를 근간으로 하 는 페스트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미디엄로스트는 악수다. 미디엄로스트는 핸드드립으로 내려 먹는 싱글오리진(스트레이트 커피) 커피에 어울리는 로스팅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내가 까 페베네 커피사업부 사람들과 얘기한건 아니지만, 스타벅스와의 차별을 무리하게 꾀하다가 발생한 에러라고 난 본다. 앞서 말했던 커피빈은 강배전 커피의 대명사 스타벅스보다 1-2 단계 포인트를 낮추는 대신 재료의 질을 높여 바디감과 산미를 둘다 살린 대표적인 케이스 라 볼 수 있지만, 까페베네는 에스프레소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포인트에서 너무 나가버 린 것이였다. 에스프레소는 에스프레소로서, 싱글오리진은 싱글오리진으로서의 특성을 살려 주면서 가야하는 데 말이다. 즉, 차별화를 위해 멀건 청국장을 내 놓았다가 맛 없는 된장찌 개가 된 꼴이다. 이후, 커피라는 영역에서 까페베네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한다. 아울러, 언제나 기준이였던 스타벅스도 서서히 시장기호에 편승해 가기 시작한다. 최근 들 어서는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를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중약배전의 트랜드에 확실히 편승한 것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글을 쓰기 하루전인 어제 나는 오랜만에 동네에 있는 스타벅 스를 가보았다. 정말 오랜만이다. 커피 하는 사람들은 애써 체인커피숍을 가는 경우는 드물 다. 그런데, 정말 당황스러웠다. 특징이 없었다. 미안하지만 한마디로 맥락이 없는 맛이였다. 그래서 매니저에게 정중히 물어봤다. 그리고 기사 검색을 해봤더니, 아니나다를까 수차례에 걸쳐 스타벅스 역시 마일드하고 배전도를 낮춘 커피로 변모해 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문 제는 그게 아니였다. 이건 에스프레소와 싱글오리진의 경계에 선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커 피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순간 묘한 감정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율배반적인 감정 말이다. 그건 아마도 아이폰을 사용하는 아이폰 덕후들이 스티브 잡스 죽음이후 애플특유의 곤조를 잃어버려 아쉬워 하는 마음과 비슷한 거 같았다. 참고로 나도 최근까지 아이폰 매니아였다. 그런데, 스타벅스 역시 그와 비슷한 곤조를 잃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물론, 시장과 소 비자의 기호에 맞추어가는 기업의 노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스타벅스 커 피의 맛은 곤조도 잃고, 기준도 잃어버린 느낌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