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커피맛을 좌우하는 요소들
커피는 음식이다. 커피는 음료이다. 여러분은 어느 말에 더 동의가 되는가? 나의 경우 커피 는 음식에 해당한다. 우리 어머니는 전라도 분이신데 음식을 잘하신다. 그중에서도 동태찌 개가 일품인데, 어느 날 어머니가 해주신 걸 먹고 실망스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알고보니 동태상태가 별로 안 좋았던 것이였다. 요리의 달인이신 어머니도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이 다. 아무리 온갖 정성에 양념에 모든 신공을 넣어도 결국, 동태찌개의 생명은 동태에 있다. 커피도 그러한 관점에서보면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 어머니와 내가 신선 한 동태를 잡으러 바다로 갈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믿을 수 있는 가게, 믿 을 수 있는 사장님을 통해 값싸고 질 좋은 그리고 신선한 동태를 구매해 오는 것이 최선일 뿐이다. 그나마 동태는 좀 낫다. 사실, 커피생두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재배하기 어려운 재료이기 때 문이다. 안타깝게도 커피가 잘 재배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전세계 커피벨트라 불 리우는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지구 적도를 중심으로 북귀 23.5도 남위 23.5도 사이에 걸쳐 있는 국가나 지역들을 말하는데 콜롬비아 파나마 코스타리카 하와이 인도네시아 베트남 탄 자니아 케냐 에치오피아 르완다 브라질 등이다. 또한, 커피가 자라기에 좋은 자연환경 역시 우리니라와는 많이 다르다. 주로 화산재 토양이면서 산비탈과 같은 경사지대에 고도가 높고 년중 강수량이 너무 많지 않고, 일조량이 짧으며 그늘재배가 가능한 비교적 서늘한 지역이 여야 한다. 다행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커피시장이 커지면서 해외에서 들여오는 커피의 질이 점점 좋아 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커피 수입업체가 많아지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양질의 커피를 값싸게 들여오는 대규모 단위의 업체들은 대형저장고 설비를 갖추고 영업다각화에 힘쓰고 있다. 그 덕분에 소분(소량)으로 주문하는 시스템도 잘 발달되어 있어 전화한통이면 금새 매장으로 생두가 배달되어 온다. 패킹기술도 발전돼 진공으로 1kg단위씩 마치 벽돌처럼 포 장되어 오기도 한다. 이 말은 곧 생두의 질 걱정은 안해도 되는 환경이 이미 갖추어져 있으 며 로스터가 그런 걱정할 것 없이 오로지 로스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 되었다 는 의미이다. 사실, 과거 70,80년대 까지만해도 우리나라는 정식으로 커피를 수입하는 업체가 그렇게 많 지 않았다고 한다. 주로 일본을 통한 간접수입 혹은 동남아를 통해 들여오는 비공식적인 채 널이 많아 사실상 오늘날과 같은 질 좋은 스페셜티 커피를 구경하긴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 니, 당시의 로스터들은 지금보다는 다소 커피를 강배전으로 볶는 경향이 많았다고 한다. 그 래서 소위 쓴 커피, 깊은 바디감이 느껴지는 커피가 주류를 이루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때 당시 우리나라 커피 1세대 바리스타들이라 할 수 있는 1서 3박 선생님들(박상홍, 박이 추,박원준, 서정달 선생)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대부분이 지금은 작고하고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박이추 선생의 커피를 마셔보면 알 수 있다. 내 경험은 한마디로 강렬했다. 어 쩌면 당시의 열악한 생두환경에서 그 만큼의 깊은 맛들을 연출해 내셨다는 것은 가히 커피 의 대가들이라 할 만 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오늘날 수입되는 커피생두나 로스팅 기계들은 너무 좋아져서 좀 심하게 말해 대충 볶아도 맛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커피맛을 결정짓는 요소들은 자연스럽게 생 두, 로스팅, 추출 이렇게 볼 수 있는데, 세월의 흐름따라 비중도 달라졌다고 봐야 한다. 생두가 발달되지 못한 7,80년대까지는 생두:로스팅:추출 = 2:5:3 90년대와 2천년대 초반 까지는 생두:로스팅:추출 = 4:4:2 2천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는 생두:로스팅:추출 = 6:3:1 정도로 보면 어떨까 싶다. 결국, 재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생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져 커피맛을 결정짓는 요소중 첫 번째로 꼽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두 번째는 두말할 것도 없이 로스팅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볼 수 있 다. 하지만, 앞장에서 말했듯이 로스팅은 로스터의 생두에 대한 이해에서 판가름이 나기 때 문에 로스터의 역량에 따라 편차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간혹, 장사를 하다보면 이런 질문 을 흔히 받을 때가 있다. 다른 곳에서 마신 케냐와 사장님이 내려주신 케냐가 맛이 왜 이렇 게 차이가 나는가, 같은 커피, 같은 방식으로 집에서 내려마셨는데 매장에서 사장님이 내려 주신것과 왜이리 차이가 나느냐 하는 질문들이다. 좋은 질문인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먼저, 같은 케냐가 아닐 수 있다. 즉, 등급이 AAA일수도 있고 AB일 수 있다. 두 번째는 재 배년도가 1년이상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오래된 생두라면 수분이 그만큼 적어 드라이 한 맛 이 강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로스터의 실수다. 케냐의 특성을 잘 못 이해하고 포인트를 놓친 경우다. 마지막으로는 로스터의 의지다. 해당 로스터는 자유의지대로 그렇게 볶고 싶 었던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 내려먹는데 왜 차이가 나는가에 대해서는 커피보관 방식 및 분쇄상태, 추출자의 역량차이로 요약하고 싶다. 커피는 건냉암소라 하여 건조하고 차갑고 어두운 곳에 보관해야 신선도가 오래가는데 그렇치 못한 경우이거나 처음부터 커피를 까페 에서 분쇄해 감으로써 커피산화 속도를 증가시켜 맛이 떨어지는 경우다. 끝으로, 까페 바리 스타는 많은 커피를 오랫동안 추출한 경험이 많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개인소비자보다는 더 맛있게 추출을 할 확률이 높다고 봐야한다. 커피에서 추출이라는 용어는 영어로 브루잉(Brewing)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커피 의 성분 중 가장 맛있는 성분을 압력이나 드랍(drop)의 방식을 이용하여 우러낸다는 의미 다. 이 커피브루잉에서 중요한 요소들로는 커피양, 물의양, 커피분쇄도, 물의온도, 압력정도 등에 따라 커피맛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 이해를 돕기위해 정리를 하자면 커피원두를 분 쇄할 때 입자가 크면 클수록 신맛이 강해지고, 입자가 작으면 작을수록 쓴맛이 강해진다. 또, 물의 온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신맛이 강해지고, 반면 온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쓴맛이 강해진다. 그래서, 사실 커피인들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시겠지만 그라인딩이 커피맛 결정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커피원두의 균일한 분쇄크기는 추출영역에선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인들은 그래서 돈을 모아 자동차를 사는데 쓰려 하지 않고 그라인더 에 투자를 한다. 커피이외의 요소도 커피맛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우선은 바리스타의 마음가짐이다. 바리스타 스스로 행복하고 손님에게 최선을 다해 맛있는 커피를 내리려는 진심으로 다가가 면 손님들도 그렇게 느끼고 커피맛도 더 좋게 느끼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내가 손님의 입장으로 까페를 갔을 때 조사나 비판적인 측면에서 커피를 대하면 온전하게 즐기지 못하게 된다. 마음을 열고 바리스타가 서비스 해 준 그 정성에 감사하며 마신다면 훨씬 더 그 커피가 맛있게 느껴진다. 이는 사실이다. 모든 음식과 마찬가지로 커 피 역시 정성이 담기고 사랑이 담길 때 더욱 그 가치가 발현된다고 보면 된다.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 그 마음이 모든 것의 시작이어야 한다. 커피라고 예외일 수 없다. 같은 커피라도 아침에 마시는 커피, 저녁에 마시는 커피가 다르다. 몸이 아플 때 마시는 커 피, 건강할 때 마시는 커피 다르다. 여행을 떠나 한적한 곳에서 여유를 느끼며 마시는 커피, 바쁜 일상에서 치열하게 살며 마시는 커피 또한 다르다. 흔히들, 인생을 쓴 커피에 비유하 곤 한다. 나는 이렇게 바꿔보고 싶다. 인생은 갓 볶아 신선하고 맛있는 케냐AA처럼 충분히 매력있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