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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전문점 함부로 창업하지 마라 2.커피Talk(2화)

2. 고독한 40대 이혼남의 친구, 로스팅

by 박주민

인생이란게 재밌다. 한 때는 이혼한 친구들을 보면 색안경을 끼고 본 적이 있었다. 적어도 나만 잘하면 이혼이란 건 피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었나보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내가 이혼남이 되어 있었다. 웃기는 얘기 같지만 이혼남에게 로스팅은 참 좋은 친구가 된다. 늦 은 밤 영업시간이 끝날 무렵, 난 나만의 로스팅 세계로 들어간다. 매장의 불을 대부분 끄고, 로스터기 근처의 몇몇 조명만 밝힌다. 오로지 나만이 이 무대의 주인공이 된다. 20여분 정 도의 로스터기 예열을 기다리는 동안 오늘 볶을 생두들을 1kg단위로 담아 줄을 세운다. 오 늘은 약 8kg의 생두를 볶는다. 내가 쓰는 로스터기는 1kg짜리 용량이라 결국, 8번을 볶아 야 한다. 1kg를 볶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냉각시간 까지 포함해서 15분정도를 보면 된 다. 커피콩이 볶여지는 동안 로스터는 멍하니 로스터기 앞에 앉아있다. 그러나 온 몸의 감 각기관은 온전히 열려있어 커피콩의 타는 냄새와 타닥타닥 거리는 팝핑소리에 신경이 온통 곤두세워져 있다. 그 때만큼은 잡생각도 들지않고, 주위상가들도 다 영업이 종료된 가운데 고요한 적막감만이 흘러 이내 자유로움이 느껴져 온다. 생두는 품종에 따라 머금고 있는 수분의 함량이 다 다르다. 그래서 어떤 생두는 7분만에 어 떤 생두는 9분만에 1차 팝핑이 오는데, 이 때 가열차게 온도를 올려주면서 배기구를 열어 연기를 뿜어내게 된다. 영화로 말하면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것이다. 격렬한 팝핑이 약 1-2 분간 지속되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는 순간이 온다. 마치, 물을 끓일 때 끓는점 까지는 팔팔 끓다가 막상 끓는점을 넘어서게 되면 그 소리가 안정감을 가지며 다소 작아지는 것과 비슷 하다. 이제 2차 팝핑이다. 2차 팝핑은 로스팅 포인트 용어로 풀씨티를 막 넘어서는 단계인 데 1차때 보다 훨씬 빠르고 격렬해진다. 이 시점부터 거의 대부분의 커피가 더 태워지느냐 덜 태워지느냐로 맛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제는 배출의 순간만 남았다. 로스터는 이 때가 가장 긴장된 순간이다. 한쪽손에 들린 커피콩 체크수저로 몇 번을 로스터기에 넣었다 뺐다 를 반복하면서 커피콩의 상태를 모니터링 한다. 마지막으로 소리와 냄새 그리고 뿜어져 나 오는 연기 및 이미 원두로 변한 색깔을 동시에 체크하다가 이 때다 싶을 때 배출구를 힘껏 들어올린다. 절정의 순간 바사삭 파다닥 툭툭하는 소리와 함께 파란 생두가 어느새 검은 원 두로 변신해 내 눈앞에 나타난다. 순간 반갑고 뭔지 모를 뿌듯함이 올라온다. 로스팅이란 쉽게 말해 커피를 태우는 작업이다. 관건은 더 태우느냐 덜 태우느냐로 보면 된 다. 말한대로 로스팅은 원재료인 생두를 일정시간동안 태워 적절한 시점에 배출시키는 것인 데, 각각의 재료가 그 적절한 시점이 다 다르다. 그걸 배우는 게 로스팅 공부라 보면 된다. 사실, 기계에 재료를 넣고 볶는 것은 마치 밥솥이 밥을 짓는 것처럼 기계가 거의 다 한다. 그건 쉽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단, 백미냐 현미냐 잡곡이냐에 따라 세팅시간 및 조건이 달라지는 것처럼 커피도 대륙별 나라별 품종별로 다 포인트가 다르다. 또, 경우에 따라 한 품종만을 가지고도 여러 가지 포인트로 볶아내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는 한 품종으 로 다품종을 만들어 낸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다준다. 당연한 얘기지만 맛이 다 다르기 때 문이다. 커피의 재미는 사실 여기에 있다. 뒷장에서 설명하겠지만 커피맛의 세계는 그래서 오묘하다. 다소 덜 볶아도 때론 더 볶아도 커피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조직이 파괴되면서 나름의 향과 맛을 연출해 준다.그렇게 40대 이혼남의 고독한(?) 밤은 자정을 훌쩍 넘겨 새벽 1시경을 가리키고 있다. 마음 엔 판매할 커피재고를 미리 확보한 것에 대한 뿌듯함과 안도감, 뭔가 내 손으로 작품하나를 만든 것 같은 자부심으로 3시간여의 로스팅은 그렇게 마무리가 된다. 아마도 내 또래에 일반적인 가장들은 늦은 밤 직장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거나 아니면 가족 들과 함께 집에서 북적대며 화기애애한 혹은 짜증나는 갈등속에 이 밤을 보내고 있을 것일 것이다. 또 다른 자영업자 분들은 나처럼 혹은 더 늦게까지 밤을 지새우며 일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난 로스팅으로 인해 내 몸 가득히 베 인 커피향을 머금고 매장문을 나선다는 것이다. 나는 원래 좋아하지도 않지만 향수가 필요 없다. 갓 볶은 커피가 향수가 되어 언제나 내 몸을 감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 게나 연애할 때 참 좋았던 건 항상 기분 좋은 커피냄새가 나서 좋다는 말을 들을때였다. 40대 이혼남 로스팅하는 남자 고독하지만 외롭지만은 않다. 나름 즐겁다. 그렇다면 로스팅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한 얘기같지만, 많이 볶는거다. 보통 로스터들은 프로파일이라는 걸 작성한다. 나도 처음엔 열심히도 프로파일을 작성했다. 예열 온도, 생두별 온도추이, 시간대별 화력조절량, 배기량 체크 , 색깔 및 냄새변화 등등. 그러나, 지금은 프로파일을 작성하지 않는다. 이젠 머릿속에 다 있기도 하지만, 교육용이라 면 모를까 실무적으론 거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생두는 해마다 같 은 품종이라해도 작황에 따라 상태가 항상 다른데, 기후조건에 민감한 커피의 특성상 일조 량과 기타 변수 가령 화산폭발이나 서리 등에 의해서 커피질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수입되어 들어오는 생두에 대한 테스트 로스팅이 가급적 수반되어져야 한다. 바로 그때 나같은 경우는 로스팅 포인트를 약,중,강 3가지 정도로 볶아 적절한 포인트를 찾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커피의 상태와 질은 어느정도 파악이 다 된다. 결국, 커피상태는 일단 볶 아보고 마셔봐야 알 수 있다. 간단하게 설명을 돕는다면, 로스팅 단계는 구분방법에 따라 최대 9단계까지 구분이 가능하 다. 이를 좀 묶어서 1-3단계를 약배전, 4-6단계를 중배전, 7-9단계를 강배전으로 놓고 보 자. 대체적으로 대륙별로 봤을 때 콜롬비아를 포함한 파나마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의 중 미 커피들은 과일향 나는 부드러운 산미를 강조하기 위해 대체적으로 중배전을 포인트로 잡 는다. 세계 최대의 커피생산국이자 남미의 대표적인 나라 브라질의 경우는 구수하면서도 기 분좋은 쓴맛을 위해 강배전을 포인트로 잡는다. 아프리카는 좀 다양한데 최고의 커피 맛을 인정받는 케냐는 중강배전, 탄자니아는 강배전, 에티오피아는 중약배전을 각각 포인트로 잡 는다. 마지막으로 아시권을 대표하는 인도네시아는 중강배전을 보통 포인트로 잡는다. 만일, 커피일을 진정으로 하기 원하는 분이있다면 먼저 로스터가 되보시길 권하고 싶다. 그 래야, 커피를 관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기술적 지식으로만 이해하기 보 단 커피 본래의 특성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로스팅이야말로 진정한 커피공부의 첫 걸음 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꼭 비싼 댓가를 지불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수망 로스터기등을 구입해서 집에서 먼저 볶으면 된다. 요즘은 인터텟 동영상 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로스팅 방법을 손쉽게 배울 수 있다. 그렇게라도 해서 볶아보면 생두 가 태워지는 동안의 과정만 보아도 큰 공부가 된다. 내가 아는 분중엔 실험정신이 참 강하 셔서 후라이팬을 포함해서 밥솥(찐다고 봐야함) 등 다양한 기구 기기들을 이용해서 볶아 드시는 분을 본 적이 있다. 이러한 실험정신을 말리고 싶지 않다. 이런 방법이든 저런 방법이 든 커피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로스터들은 반드시 겨울을 좋아한다. 그렇다. 로스터기에서 방출되는 열이 상당한데 바로 그 곁에서 함께 씨름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열치열도 나름의 쾌감은 있을 수 있지 만 오뉴월 로스터기 옆 온도는 40도가 훌쩍 넘는다. 반면 추운겨울날 로스터기 옆은 따뜻한 난로라고 보면 된다. 나와같은 40대 고독한 이혼남들의 애인없는 겨울밤은 외로울 수 있다. 난 그 겨울 7번을 로스팅과 늘 함께 했다. 술과 담배보다 훨씬 낫다. 생각보다 외롭지도 않 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로스팅을 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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