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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전문점 함부로 창업하지 마라 2.커피Talk(1화)

1. 커피에 관한 기억들

by 박주민

나의 유소년기때 커피에 대한 기억은 머리가 나빠진다였다. 그리고, 어린놈이 무슨 커피냐 였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잘은 모르셨지만 그렇게 알고계셨고 그래서 어른들만이 누리는 대 표적인 기호식품중엔 담배와 커피를 꼽을 수 있었다. 당시 웬만한 집 찬장속에는 병으로 된 맥심커피와 프림이 있었는데,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여서 나는 몰래 커피대신 우유맛나는 프림을 몇스푼씩 떠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커피를 못 마시게 한 핵심적 이유는 카페 인 때문이였다. 카페인은 대표적인 각성성분으로 많이 섭취할 경우 뇌손상을 일으키며 그래 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머리가 나빠지게 해 학습에 지장을 준다는 논리였다. 그러면서 왜 그런 커피를 어른들은 마시는지 늘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정작 성인이 된 후엔 커피보다는 담배를 먼저 배웠던 것 같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다보니 커피를 자연스럽게 마 시게 되었다. 왜 그럴까. 그 둘이 궁합이 찰떡이다. 특히, 고기를 먹고 난 후의 담배 한가치 와 믹스커피의 달달함은 중독성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음악다방이라는 게 있었다. DJ들이 있어서 LP판으로 음악을 틀어주던 시절이였다. 그 때 처음 원두커피라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프림을 섞지 않 은 소위 블랙이라는 이름의 인스턴트 커피였다. 정리해보면, 똑같은 맥심커피였는데 프림과 설탕을 타서 마시면 다방에서 파는 다방커피가 되고, 프림을 넣지않고 블랙으로 마시면 원 두커피라 불리워도 누가 뭐라고 한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인스턴트커피는 원두커 피가 아니라 그 반대의 개념이다. 지금도 이 둘을 구분 못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대학에 들어오니 구내식당이고 어디고 자판기가 많이 보였다. 역시 간편한 캔커피다. 여름 엔 시원한 캔커피, 겨울엔 따뜻한 캔커피가 교정안 어느곳에서든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때 당시 커피에 대한 기억은 수업시간에도 마실 수 있었던 일종의 자유로움 인 것이였다. 가방 속에 숨겨놨다가 교수님의 강의가 지루해진다 싶으면 꺼내어 한모금씩 마시는 재미가 쏠쏠 했다. 다만 뚜껑을 딸 때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손가락에 엄청난 신공을 가하여 천 천히 떼어내야 했다. 지금, 유행하는 스타벅스 같은 커피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 캔커피 가 그 역할을 대신 해 주었던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학과MT를 갈 때 술 다음으로 캔커피 몇 박스씩은 꼭 챙겨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대성리 주변에서 내린 많은 대학생들 의 짐들중엔 이 캔커피 박스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따뜻했던 기억의 커피는 군대생활때 초소근무 중 군종병이 타다준 마호 병 커피다. 특히, 추운겨울 이등병때 어려운 고참과 1시간씩 근무를 서고 있을 무렵 먼발치 서 후레쉬를 비추이며 나타나는 군종병들이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 어김없이 그들의 손엔 마호병이라 불리우는 큼지막한 보온병이 들려 있었고, 그 안에 든 커피맛도 커피맛이지만 고참으로부터 기합이라도 받는 순간에 나타나주면 그 커피맛이 꿀맛보다 좋았다. 군대커피 는 나도 나중에 타봐서 아는 데 큰 들통에 대량으로 커피가루와 믹스, 설탕을 봉투째 넣어 섞는다. 가까운 초소엔 주전자에 넣어 가기도 하고, 먼 곳은 보온병에 담아 간다. 그 비율을 잘 맞춰 타내는게 노하우인데, 고참이 제대로 전수를 안해주고가면 커피맛이 확 달라진다.나중에야 봉지커피가 많이 나와 이런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물의 비율은 여전히 중요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니 처음보는 문화를 보게 되었다. 여직원이 커피를 타다 주는 것이였다. 임원 비서가 주로 그 역할을 하였는데, 처음엔 적응이 안되었고 미안했다. 그것도 회의가 있을때마다 인원수에 맞춰 들고 들어오곤 했는데 희안하게 커피를 안마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루에 보통 4-5잔은 기본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내가 탕비실이라는 곳에 들 어가서 함께 여직원과 타곤했는데, 위의 남자 선배들이 불러 그러지 말라며 주의까지 주었 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IMF이후엔 경비절감 차원에서 탕비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커피를 타 주는 문화는 없어지기 시작했다. 내 돈을 주고 마신 커피중 가장 비싼커피를 마신 기억은 선의 성격에 가까운 소개팅 자리에 서 마신 커피인데, 프라자호텔 로비내 커피숍에서 마신 최초의 VAT별도 9,000원짜리 커피 였다. 결국, 지출된 비용은 9,900원 곱하기 2 해서 19,800원이였다. 당시엔 충격이였고, 마 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어르신들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간자리라 그나마 제일 싼 걸 시킨다고 시킨게 커피였다. 커피맛과 상대여성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나질 않고, VAT의 기억만 오롯이 남아있다. 나중에 까페를 하면서 느낀것이지만 VAT별도는 정작 나와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필요한 제도였다. 그러나, 동네까페에서 지금 VAT별도를 표시하면서 운영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비웃을 것이다. 장말 웃기지 않는가. 왜 호텔에서는 그래도 되고, 동네까페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되는걸까. 정확히 말하면 안되는 건 아닌데 그렇게 하는게 웃기는 것처럼 되어져 있던 것이다. 어떤면에선 1,000원짜리도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요즘 세상에서 카드수수료는 수수료대로 부담하면서 부가가치세도 운영자가 부담한다는 건 불합 리하다. 그러다가 제대로 된 원두커피를 마신 최초의 기억은 2000년대 초반 회사근처에 쟈뎅이라는 커피전문점에서였다. 당시엔 외국에서 들어 온 커피업체 이름인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알 고보니 1984년도에 설립되고 1988년도에 생긴 우리나라 최초의 원두커피전문점이였다. 뭐 역사적으로 흘러들어가면 최초는 더 있을 수 있겠지만 현대식 커피전문점의 형태로서는 일 본에 도투루가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쟈뎅이라 말하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 이다. 1998년도 이대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생긴이후 우리나라 커피문화는 느닷없이 원두 커피와 테이크아웃 문화로 붐을 타게 된다. 그리고 전통적인 다방커피 문화에 선을 긋고 원 두커피라고 하는 영역에서 국내 토종기업을 대표하는 쟈뎅이 외로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 다. 귀한 손님이 오면 점심을 대접한 후 이곳 쟈뎅에 와서 잘 알지도 못하는 원두커피를 마 시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저 나에겐 맥심보단 덜 단 커피였을 뿐이였다. 콜롬비아 타타마. 2009년 내가 커피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직접 볶아 마신 최초의 싱글 오리진 커피이다. 한마디로 커피의 신세계로 나를 이끌어 준 친구이자 창업초기 우리까페의 주력품종이였다. 내게 있어 커피는 달거나 쓰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아마도 우리나라 대부분 의 사람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커피가 시큼하면서도 역하지 않을 수가 있을 까 싶었다. 이것이 타타마를 마신 후 느낀 첫 감흥이였다. 커피맛에도 나름의 단계라는 게 있다. 기본적으로는 단맛, 쓴맛, 신맛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신맛이 가장 커피를 세련되고 수준있게 즐기는 단계라는 것이다. 사실, 스페셜티라 불리우는 품종들에서는 과일맛 나는 향미를 흔히 맛 볼 수 있는데 그 향미들이 대체적으로 산미를 포함하고 있다. 좋은 품종의 커피생두를 제대로 된 로스팅 포인트로 잡아서 볶아내면 품종의 차이는 조금씩 있을지언정 기분좋은 신맛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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