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코스트코에 갔더니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났다. 초대형 트리부터 아기자기한 산타 장신구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아직 한 번의 겨울만 난 우리의 신혼집엔 트리가 없어 올해 겨울엔 한 그루 들여놓자고 했다.
시간은 늘 속절없이 흐르지만 10월부턴 특히 빠르게 느껴진다. 아무리 여름이 길어졌다지만 가을은 기어코 왔고 아침은 춥다. 겨울을 반기는 나는 기쁜 마음으로 옷장 속 여름옷을 치워낸다. 곧 한 살 더 먹는 건 아쉽지만 쌀쌀한 바람에 목도리 두르는 날씨는 좋다. 밖에 있던 사람이 따뜻한 실내로 들어왔을 때 머리카락부터 옷가지에서 풍기는 찬 내음도 좋아한다.
빠르게 찾아온 코스트코의 겨울
마음에 쏙 드는 이 계절의 한 가지 아쉬움은 야구를 안 한다는 것. 다른 팀들 경기라 책임 없는 쾌락을 즐기고 있는 한국시리즈도 몇 경기 안 남았으니 이제 정말 끝이다. 다만 한편으론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되는데, 스토브리그의 시간이 찾아와 그렇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시작된 용어인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의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찾아보니 정확한 명칭은 '핫 스토브(Hot Stove)' 리그다. 야구 비시즌인 겨울에 팬들이 스토브(난로)를 둘러싸고 선수들의 이동이나 다음 시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유래됐다. 귀엽다. 난로를 둘러싼 팬들.
어원은 귀엽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이미 방출 선수들이 하나둘 발표되고 있다.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11명의 선수를 뽑았으니 그만큼의 인원은 떠나야 한다. 한정된 자원 안에서 최고의 전력을 만들어야 하는 구단 입장에선 가장 바쁘고 머리 아픈 시기이기도 하다. LG는 최근 베테랑 포수 허도환과의 작별을 알렸다. 이유 여하를 떠나 팬으로서 마음이 헛헛해지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이다.
스토브리그의 또 다른 화두는 자격 조건을 충족해 FA시장에 나오는 선수들이다. Free Agent의 약어인 FA는 말 그대로 일정 기간 다른 팀과 자유롭게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미국 프로야구는 1976년, 우리나라는 1999년 처음 도입됐다고 한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아 수십억 연봉 계약에 성공하면 'FA 대박'같은 말이 따라붙고, 계약 전부터 특정 선수들의 FA 거취가 입에 오르내린다. LG의 20대 선발투수 최원태는 시즌 내내 'FA 최대어'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만큼 FA 시장은 야구팬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스토브리그 기간의 이 모든 긴장과 협상, 작별과 만남은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2019.12~2020.2)에 잘 담겨있다. 선수가 아닌 구단 프런트가 주연이라는 점에서도 이 드라마는 특별하다. 비시즌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야구 경기 장면은 거의 없는데도 지루하지 않고, 회의실에서 토론하는 직장인들의 대사가 그렇게 짜릿하다.
무엇보다 야구 드라마가 진정한 야알못이었던 나 같은 시청자까지 묶어놨으니 수작이 아닐 수 없다. '전형적인 스탯 관리 아닙니까', '그 친구 별명이 마운드 아래의 김광현이었거든요' 같은 대사도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밤새 잠을 줄여가며 여러 회차를 몰아보곤 했다. 백승수 단장의 레전드 PT를 다시 보니, 이젠 강두기가 얼마나 대단한 투수인 지 알겠다. 그땐 저 용어들이 어려워 대충 넘어갔는데 말이다. 우리 팀 왔으면 좋겠네.
화면 출처_유튜브 'SBS Catch'
날씨가 쌀쌀해지고 선수들의 방출 소식까지 들려오니 다시 이 드라마가 생각난다. 조만간 또 봐야겠다. 우리 팀의 내년을 궁금해하고 나의 한 해도 정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