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장래 희망이 무엇이었나요?

day-36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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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 어른들이 쓰는 말을 골라 썼다. 어떤 말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까르르 웃던 어른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렇게 말주변으로 잔망을 떨고 다녔더니 자연스럽게 아나운서 하라는 덕담이 따라왔다. 엄마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초딩인 나를 여의도 연기학원에 보냈다. 나는 한 지붕 세 가족 같은 프로그램에 아역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3초 컷으로 나오는 엑스트라 주제에 학교를 빠지며 촬영을 했다. 학교를 빠지고 뭔가를 하다니, 어쩐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우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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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장래희망을 물으면 아나운서라고 했다. 그런 답변을 하면 어른들은 좋아했다. 왜 아나운서가 하고 싶은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쉘 오바마가 쓴 <비커밍>의 서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장래희망을 묻는 것은 쓸데없는 질문이라고. 그 질문은 삶을 유한하게 여기게 만들고, 인생의 어느 시점에 뭔가가 되고 나면 끝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고. 나에게도 크게 의미가 없었던 질문이었던 것 같다. 나의 장래희망은 오래가지 않아서 없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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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가면서 나는 아나운서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나는 예쁘지도 않고 성적도 보통이었다. 되기가 아주 어렵다는 아나운서를 내가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꿈이 사라지자 하고 싶은 것이 없어졌다. 장래희망이 없다고 해도 학교에서는 계속 장래희망을 요구했다. 적어서 내야 할 때도 있고, 그걸로 숙제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나는 대충 아무거나 적었다. 진학도 적당히 점수 맞춰하고, 전공도 점수 맞춰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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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자 더 이상 장래희망 정하기를 미룰 수 없었다. 나는 어릴 때처럼 여전히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걸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생활을 십 년 정도 하고, 강연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게 도전한 직업은 기자였다. 돌이켜보면 일곱 살 꼬마 시절 꿈인 아나운서에서 얼마 멀리 못 간 것 같아서 웃기다. 기자로 본 면접은 다 떨어지고 회사 면접은 몇 개 붙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원이 되었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며 알게 된 것도 있었다. 기자를 한다고 해서 모두 강연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회사를 다닌다고 해서 강연을 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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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나와 서른이 넘은 지금 나의 바람은, 실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타인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 한다. 그런 지향성을 갖고 살아오다 보니, 현재 나는 인사담당자이면서 퍼실리테이터이기도 하고 코치이기도 하다. 또 앞으로는 다른 형태의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곱 살, 아는 직업이 많지도 않았을 그 시절,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의 명칭보다 중요했던 것은 왜 그 일을 하고 싶은지가 아녔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하지 않았던 걸 보면 이유가 중요하지, 무엇인지는 상황에 따라 늘 바뀔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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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누군가 장래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에 대한 질문을 해보고 싶다. 그런 바람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그 꿈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나요? 그 꿈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변화가 기대되나요? 그 장래희망을 통해서 당신은 무엇을 이루고자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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