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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Jul 18. 2022

관심의 모양

<선물>

 세상 사람들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눈다면, 누군가에게 선물을 곧잘 잘하는 사람들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로 나눌 수 있을 거다. 나는 전적으로 후자에 속한다.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다 보면 그의 얼굴과 목소리와 분위기 향기를 생각하게 된다. 좋아하는 게 뭐더라, 요즘 뭘 하고 지내는지, 취향은 변하지 않았는지, 새롭게 즐기게 된 취미가 있는지까지 결국 그 사람의 모든 게 떠오르고 궁금해진다. 그러나 슬쩍 sns 계정에 들어가 보고, 가장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를 곱씹어 보아도 어떤 선물이 좋을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좋아할 것 같으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그렇지 않다면 내가 준 선물이 쓸모없어지게 되진 않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면 선택지는 점점 미궁으로 빠진다. 쿨하게 어떤 선물을 가지고 싶냐고 물어보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것도 누구에게나 건네기 쉬운 말은 아니다. 그래서 생일 밤 열 시가 다 되어서야 결국 스타벅스 커피 교환 쿠폰이나 치킨 같은 것들을 보내며 짤막한 축하의 인사를 보내버리는 것이다. 


 한편 놀랍게도 선물을 잘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선물이라는 건 내가 사기에는 좀 그렇지만 받았을 때 기쁘게 사용할 수 있는 게 최고이지 않나 싶은데, 그런 것들을 쏙쏙 골라 아무렇지 않게 휙휙 던져주는 사람들. 가끔은 당황하기도 하지만, 그건 대개 기분 좋은 당황스러움이다. 생각나서 샀어, 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예상하지 못한 기쁨, 고마움, 좋은 기분. 그건 아마 일상에서 조금 다른 즐거움을 마주쳐서이기도 하지만, 선물을 건네는 사람이 나에게 어떤 모양으로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거다. 그럴 때마다 역시 사람은 사람으로 지치기도 하지만, 사람으로 행복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선물을 잘하는 사람들은 대개 편지도 기깔나게 잘 쓴다. 다정한 문장이 빽빽하게 들어차 들고 있기 무거운 손편지. 투박하고 아름다운 봉투, 힐끔 쳐다봤다가 마음이 찡해지는 단정한 글씨들. 그런 편지는 그 자체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큰 선물이 된다. 그러고 보면 선물이라는 게 꼭 물건이 아니어도 되는 것 같다. 지친 발과 손을 주물러 주거나 대신해 주는 소일거리, 위로나 응원의 말도 충분히 고마운 선물이 된다. 


 선물 받은 것을 아주 잘 쓰게 되면 선물을 준 사람과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선물로 받았던 그릇들은 자주 쓰다 이가 나가도 쉽게 버리기가 어렵고, 신발이나 가방은 깨끗하게 아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선물을 해 준 사람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겠지. 너무 잘 쓰고 있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에 감사한 마음이다. 


 어제는 여행을 다녀온 친구에게 조그만 선물을 받았다. 잎사귀 세 개에 올라탄 계란 모양의 작은 장식 소품이었는데, 새로운 시작을 하는 곳에 가져다 놓으면 일이 잘 풀리는 기운이 담긴 장식이라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 이직 소식을 이제야 전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가 처한 상황에 딱 맞는 선물을 받아버렸다.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 이 기분을 나도 다른 이에게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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