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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야맘 Feb 04. 2020

1월에 읽은 책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작가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내게 1월은 연중 가장 가혹한 달이다. 업무 특성상 이 시기에 가장 야근이 많고 올해는 설 연휴도 1월이었으며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생신까지 몰려 있다.     


주 52시간을 꼬박 채워 야근과 주말근무를 하고 출장 일정까지 소화하는 와중에도 다가오는 설 명절엔 지난해 죽을 고비를 두어 번 넘긴 시어머니를 대신에 큰며느리로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사실 이번 명절 때 평소 명절보다 특별하게 더 한 것도 없었으면서 왜 혼자 걱정만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야근의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설 명절을 보내고 이제 좀 쉬어볼까 싶은 타이밍엔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생신이 이틀 차이로 돌아와 또다시 시댁, 친정 투어에 나서야만 했다. 구구절절 썼지만 결국 총체적으로 힘든 1월을 보냈다는 얘기다. 


    

이렇게 힘든 1월에 읽은 책은 공교롭게도 장류진 작가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이다. 야근 후 몸은 피곤한데 일 생각으로 걱정이 돼서 밤잠을 못 이룰 땐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으며 공감했고 힘든 와중에 주말에 집안일을 할 때면 <도움의 손길>을 읽으며 집안일 도우미를 쓰고 싶다가도 ‘역시 내 마음에 들려면 내 손으로 해야겠지’ 싶어 열심히 빨래를 돌리고 널었다.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지난 연말부터 SNS에 <일의 기쁨과 슬픔> 소설집에 대한 글들이 많이 보여 이 책이 궁금해져 읽게 됐는데 작품을 읽을수록 SNS에서 사람들이 이 책에 공감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소설집의 소설들은 대부분 20, 30대 직장인의 이야기로 소설 속 화자들은 우리 생활에 살아있을 법한 사람들이었다. 화자들의 내면에 깊은 고민이나 사색은 없지만 생활의 생생함이 느껴져 독자가 공감대 하나만큼은 쉽게 느낄 수 있다. 

    

<잘 살겠습니다>는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돌리는 것에 대한 얘기다. 왜 우리 주변엔 눈치 없이 푼수 같은 “빛나 언니”가 꼭 한 명쯤은 있는 걸까. 또 왜 비슷한 스펙의 남자 선후배보다 꼭 별로인 아웃풋을 낼 수밖에 없는 걸까. <잘 살겠습니다>를 읽고 결혼식 청첩장 주는 일로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니 싶어 작가의 재기 발랄함을 느낄 수 있었다.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중고거래 앱을 만드는 스타트업에 다니는 안나의 이야기다. 중고거래 앱 ‘우동마켓’에 하루에 거의 백 개씩 판매글을 올리는 사용자 ‘거북이알’이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일의 슬픔을 만들어내는 건 직장에 사소한 것들부터 커다란 것까지 왜 이렇게 많을 걸까. 그리고 그 슬픔을 견뎌내기 위해 자기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돌파구에 몰두하는 것에 공감하게 된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다소 낮음> 두 작품은 화자가 남자 인물이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배우자상을 당한 직장동료 지유를 만나기 위해 후쿠오카로 갑작스러운 여행을 떠나는 지훈의 이야기다. 지유에 대한 이성적인 호감이 있었던 지훈의 3일 동안의 여행기가 시간대별로 진행된다. 여자 다루는 것에 도가 트고 능숙하면서 지유와의 관계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지훈 같은 남자를 실제로 보면 별로라고 여길 테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지훈이 밉지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잤는지 안 잤는지보다는, 자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 자체가 중요한 거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  그 마음이, 저도 반 정도는 있었던 거니까. 그리고 그게 우리 모두에게 동시에 있는 상태로 잠시 스쳤던 순간이 있었던 거니까.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해요.”라는 지유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다소 낮음>은 음악 하는 장우가 우연히 장난식으로 만든 냉장고 송이 유튜브에서 대박을 내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도움의 손길>은 맞벌이 부부가 집안일 도우미 아줌마를 부르면서 생기는 갈등을 다뤘다. <백 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은 어렵게 취업한 사회초년생의 덥고 힘든 첫 출근길 이야기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을 다닐 적의 부담감의 떠올랐다. <새벽의 방문자들>은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공포감과 오피스텔 성매매에 대한 이야기를 잘 녹여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작품 후반부 옆 동의 같은 호수 오피스텔에 방문하는 장면이 김애란 작가의 <노크하지 않는 집>과 비슷해 기시감이 들었다. <탐페레 공항>은 핀란드 탐페레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노인과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끌고 가지만 왠지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읽어본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나의 가혹했던 1월 틈틈이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으면서 우리 주변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만 같은 인물들에게 공감하며 즐거웠다. 공감대 하나만큼은 즐거웠지만 마음에 남은 문장들이 몇 안 되었던 것과 어디선가 읽어본 것 아닌가 싶은 기시감을 떠올리면 아쉬움도 남는다.      

가장 공감 갔던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p.63.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  


장류진 작가 <일의 기쁨과 슬픔>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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