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중국어는 섬세하답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다 화교라는 나의 은밀한(?) 신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중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할 때나 중화권으로 여행을 갈 때, 중국어 통역이나 번역이 필요한 자리에 나를 종종 부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남몰래 조금 불편했던 점이 있었는데, 사실 내가 할 줄 아는 중국어는 매우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일상생활의 대화라던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의미를 전하는 것, 저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것들은 기본적으로 가능하나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알아듣기 어려운' 중국어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대만을 포함한 중국은 그 땅덩어리가 한국 땅의 97배의 달하는 면적에 달하고, 그중에서 56개의 민족들로 나누어져(적어도 내가 고등학교 수업에서 배웠을 당시까지는 그랬다) 서로 거의 각각의 하나의 나라가 되어 같은 중국인이어도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우리가 흔히들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보통말(푸통화)'이다. 티브이에 나오는 아나운서나 배우들, 중국의 대도시나 대만에서 자고 나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발음은 '보통말' 중에서도 매우 명확하고 깔끔하게 발음을 해준다. 그래서 알아듣기가 편하고 수월하다.
그렇지만 문제는 우리가 평소에 만나는 '중국어'는,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말하는 다양한 억양과 어조의 변조가 있는 '보통말'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너무나 다양한 민족들이 있어 '보통말'을 사용해도 그 각 지역의 사투리가 매우 강하게 녹아져 있는 경우가 많아 종종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다(사실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얘기가 와닿지 않는다면 토익 시험장에서 LC를 할 때 호주억양의 원어민의 발음을 한 번 떠올려보시라. 바로 그 의미이다.
그래서 내가 중국어를 할 줄 안다고 나를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 앞에 떡하니 데려가놓고 보니 생각보다 원활하게 소통이 진행이 안 되는 경우도 가끔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 나는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아니, 너 중국어 할 줄 안다며?"
"어어, 할 줄 알지."
"근데 왜 저 사람이랑은 대화하기 힘들어해?"
"아니, 저 사람은 내가 아는 중국어랑 좀 다른 중국어를 하는 것 같아. 발음이 알아듣기 힘들어."
"중국어면 다 똑같은 거 아냐? 너 할 줄 아는 거 맞아?"
억울하다. 이럴 때면 오로지 좋은 마음에서 봉사차원으로 중국어 통역을 해주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게 된다.
또 한 가지의 경우는 바로 '요즘말'을 사용하는 젊은 중화권 사람들과 대화할 때이다. 평생을 살아온 한국에서도 이제는 나이가 제법 들어 흔히 MZ세대라고 하는 친구들의 어휘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평소에 중국어를 주로 집안 어르신들과 이야기할 때만 사용하는 나는 더욱 절망적이다.
만약 타 지역 출신의, 사투리가 매우 심한, '젊은 어휘력'을 구사하는 친구라도 만나는 날에는 그냥 한국인이라고 하고 도망간다. 그저 억울함과 수줍음과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과 수치심의 콜라보이다.
그래도 저 할 줄 아는 거 맞아요, 진짜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