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불려진다
내가 다녔던 화교 학교를 해당 학교의 전형으로 일반화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비추어보면 내가 학교를 다녔을 당시 화교 아이들의 수는 많지가 않았다. 여타 보통의 한국 학교처럼 한 학년의 몇 반씩이나 나뉘는 경우는 없었고 고3, 고2 등 각 학년이 곧 하나의 반을 의미했다. 하나의 반에는 대략 2-30명의 학생들이 있었고,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만난 이 친구들은 중간에 전학을 가는 일 등이 없다면 고등학교 3학년 졸업 때까지 도합 12년을 동거동락하며 지내는, 거진 전우 같은 존재들로 서로의 곁을 지켰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만큼 한국어가 중국어보다 편했다. 다만 학교에서는 교과과정이 전부 중국어로 되어 있고 따로 한국어 교육 시간이 있었을 만큼 공식적으로는 학교 내에서는 중국어를 사용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끼리 편하게 대화를 할 때는 중국어와 한국어를 섞어 사용하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서로의 이름만은 자연스럽게 중국어로만 불렀었다. 서로의 친한 정도에 따라 호칭에 단계가 나뉘기도 했는데, 나의 경우 가장 안 친한 그냥 같은 반 학우정도의 관계이면 중국어로 성까지 붙여서 세 글자로 이름을 불렀고, 친한 친구들은 중국어로 성을 떼고 이름만 불렀다. 그리고 정말, 정말 친하다고 생각되는 한두 명의 단짝들만 한국어로 이름만 불렀다. 일부로 의식적으로 이름을 부르는 방식으로 나눈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방식으로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태어나서 거의 기억이란 것이 존재할 무렵부터 알고 지낸 이 친구들과는 서로가 서로밖에 없는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인생 여정의 갈림길에서 나는 한국에 남아 대학교를 진학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이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원에서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화교인 친구들과 떨어져 온전한 ‘한국인’ 친구를 만났다. 물론 화교 학교를 다니면서도 흔하진 않지만 가끔 여러 이유들로 화교 학교로 전학 오는 한국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에 엄밀히 한국 국적을 지닌 친구를 ‘처음’ 만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의 친구들은 대부분 과거 다른 화교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거나 중국에 살았던 경험이 있는 등, 나름 ‘이런’ 환경에 친숙한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순도 100%의 완전한 한국인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19살 입시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이 내 인생 첫 한국인 친구들이라 일컬을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 친구들은 내 이름을, 한국어로 성을 떼고 두 글자로 불렀다. 그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정말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어렸을 때의 나는 속으로 당황을 하면서 ‘앗, 아직 한국어로 이름을 부를 만큼 친하지 않은데’이라고 혼자 멋쩍고 불편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가게 되고 더 많은 ‘순도 100%’의 한국인 친구들이 더욱더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때마다 나는 ‘난감하다’라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그리고 이런 감정과 더불어 그 친구들은 그저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일 뿐이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내 이름을 불러주는 상대에 대해 내적 친밀도를 부쩍 올라오는 경험도 하게 되었다. 그 친구들은 그런 정도의 의미는 없었겠지만 나는 나의 특수한 12년의 환경에서 학습되어 내 한국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마치 단짝처럼 나를 가깝고 친하게 여겨준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몇 년 동안은 친구들에게 내 한국 이름을 불릴 때마다 혼자 놀라기도 하며, 나는 아직 내가 마음 편히 친하다고 느껴지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이름을 부르면서 누구누구야,라고 부르는 것이 어려워 은근슬쩍 주어를 빼고 말을 건네는 식으로 대화를 했다. 놀람을 숨기고 말을 걸 때는 조심히.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은밀한 미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낯가림과 수줍음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지만 12년 동안의 습관이 무서워 꽤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이름과 호명의 문제로 난감해했었다. 지금은 물론 이제 그때의 감정의 편린들만이 남아있고 내 이름이 불릴 때, 내가 타인의 이름을 부를 때 모두 어색하지 않고 별다른 감정을 못 느끼게 되었다. 아마 내 친구들은 지금보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 아이들의 이름을 누구누구야,라고 부를 때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모르겠지.
지금은 그저 다 옛날 일들에 불과해 한 번씩 그래, 과거에 그런 적도 있었지 정도로만 떠올리게 되고, 그럴 때면 그때의 내가 귀엽게도 느껴지기도, 그리고 지금의 나는 문득씩 뭔가 굉장히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가끔씩 만나는 화교 학교 시절의 ‘전우’ 친구들이 나를 중국어 이름으로 불러줄 때 오히려 새삼 신선함을 느끼기도 한다. 여기저기의 친구들 사이를 오가며 무엇으로 어떤 이름으로 불러워도 나의 본질이 바뀌지 않음에 재밌고 나를 여러 면으로 봐주는 다양한 무리들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