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설날 이야기
평소에 살아내는 하루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추운 날에는 롱패딩을, 더운 여름날에는 냉장고 바지도 꺼내 입고, 김치볶음밥에 반찬으로 김치를 꺼내 먹으며, 아침이면 지옥철을 뚫고 출근을, 한국인 친구들과 웃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퇴근하고서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날들에 내가 타국인이고 여기는 나의 모국이 아니다,라는 점을 인지하는 순간들은 사실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다만 내가 조금은 다르구나라고 생각되는 시간들이라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되는 날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타국성’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명절이다.
우리들의 명절은 다른 어떤 날보다도 설날이 가장 크고 중요한 날이다. 집마다도 이 날을 보내는 방법들은 다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설 전날에서 설로 넘어가는 그 시간대가 메인이다. 설 전날이면 친할머니 댁으로 모든 친지 가족들이 모인다. 큰아빠, 큰엄마, 친척 언니오빠들, 우리 가족들. 모두가 이제 모여 설날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설날에는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상을 크게 4군데에다 차린다. 그리고 각각의 상의 의미가 다 다르다. 하나는 돌아가신 선조들을 기리는 상, 하나는 한의사이신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직업적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약재의 신들에게 받치는 상, 또 하나는 주방의 신에게 하늘로 올라가 우리 집안에 대해 좋은 말씀만 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달달한 과자로 이뤄진 상을,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천지신명들에게 가족의 평안과 건강을 비는 의미의 차림상을 올린다. 상의 구성들은 모두 같으며 비교적 약소하게 차려지나 상이 4곳이나 되고, 제사로 올리는 음식들인 만큼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다만 집안의 큰 어른이셨던 할머니는 아직 시집과 장가를 안 간 우리 ‘어린아이’들은 제사로 올라가는 정교하고 중요한 음식을 만드는 데에는 배제시켰기 때문에 설날은 우리에게는 노동보다는 즐거움이 많은 날이었다.
오전부터 제사에 쓸 재료들을 손보고, 우리가 먹을 저녁 만찬들의 재료들을 다듬으며 설날 일정을 시작한다. 저녁 7시가 넘을 때까지 남자들은 집안 정리를, 여자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어린아이’들은 여기저기 소집이 되어 잡무를 맡는다. 제사상이 얼추 모양새를 갖추게 되면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할머니 집 식탁은 흔히 중국집에서 볼 수 있는 큰 원형의 테이블로 중앙에 손으로 돌리면 돌릴 수 있는 유리판도 존재한다. 정말 말 그대로 할머니 집에는 작은 중식당이 있었다. 그러면 큰엄마와 엄마가 중국식과 한국식 음식을 차례대로 상에 올려 같이 식사를 하게 된다.
음식의 가짓수는 한해의 풍족함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남을 수밖에 없는 수준으로 준비하게 되고, 또 이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많아 설날은 곧 먹는 즐거움으로도 이어진다. 식탁 위에 원판에 놓인 음식들을 먼저 눈으로 살피고, 유리판을 천천히 돌려가며 원하는 음식을 먹으며, 다른 사람이 음식을 집고 있을 때에는 집안의 막내인 나는 눈치를 보고 기다렸다가 슬그머니 원판을 돌려 맛있는 음식으로 내 앞으로 슬쩍 돌려놓고는 한다. 나는 매년 명절 때 만들어진 식탁 음식들을 사진으로 찍어두고 모아 두고는 했는데, 이 날들에 가까운 친구들에게 우리가 먹는 푸짐한 음식 사진들을 보여주며 자랑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기도 했다.
한차례 저녁식사가 끝나면 이제 만두를 만들어야 한다. 만두피부터 직접 반죽하는 수제 100%의 가내수공업 수제 만두이다. 설날로 바뀌는 새벽 12시가 되면 낮에 준비해 뒀던 제사상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천지신명의 제사는 마당에서, 약재의 신들은 할머니 집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큰아빠의 한의원에서, 그다음으로는 조상신들을 기리는 제사는 할머니집 2층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마지막에 주방으로 가서 제를 올리고 나면 신나는 명절 노래를 틀며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서로 주고받는다. 이 과정이 끝나고 나면 새해의 첫 식사로 온 가족이 같이 이 수제 만두를 먹게 된다.
만두를 먹을 때에는 조금 재밌는 놀이를 겸하게 되는데, 한 해의 재물운과 합격운을 점치는 의미로 10원짜리 동전과 대추를 삶아 준비하고 마치 포춘쿠키처럼 하나씩 만두 속에 넣는다. 그리고 12시 제사를 끝내고 만두를 먹을 때 돈을 먹은 사람은 큰아빠가 보너스로 일정의 금액을 축하금으로 그 자리에서 하사하여 이때가 우리가 흔히 노리는 ‘한몫’ 챙길 수 있는 기회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매년 몇 개의 동전과 대추를 만두에 넣을지를 친척 언니들과 함께 할머니와 협상을 했고 하나라도 더 넣기 위해 화려한 언변을 늘어놓기도, 만두를 빚을 때 일부러 이상하게 만들어 삶고 나서 쉽게 돈이 들어간 만두를 골라내기 위해 잔머리를 쓰기도 했다. 해마다 새로운 꾀를 내어 어떤 해에는 핸드폰 어플의 금속 탐지기 기능을 이용해 갓 삶아져서 나온 따끈따끈한 만두들을 쭉 스캔한 적도 있었다. 그 이후로는 같이 시간을 보내며 윷놀이나 여러 게임들을 하며 길었던 새해 첫날을 마무리한다.
어렸을 때에는 한국사람들과는 다른, 나름 특수한 그리고 특별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우쭐함과, 나이가 들어서는 자주 보지 못하는 가족들과 웃고 떠들고 하는 시간들을 보내어 설에는 항상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설렘과 충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른이 되고 철이 들어가고서부터는 명절 노동에도 많이 참여하고 ‘어린아이’에서 조금 진화되어 일을 하는 것에도 인정을 받아 어른들의 부담을 더 줄여들이고자 노력하면서 즐거움은 더더욱 같이 나누고자 함에 마음을 쓰고 있다. 앞으로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차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떠나가는 사람들도 있어 그 모습에는 다소의 변화가 있을 것이고 그런 사실들이 다소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우리가 설을 보내는 방식에는, 무언가를 공유하고 함께 웃음을 나누는 시간에는 변화가 없기를 바라며 앞으로의 설날에도 매 순간 음미하고 즐기며 또 힘든 사람 없이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