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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ingual, 2개 국어를 한다는 환상

by 왕씨일기

화교라고 하면 내가 원하던 아니던, 내가 할 줄 아는 언어가 한 가지가 아니라는 점이 나의 특별한 장점이 되고는 한다. 날 때부터 두 가지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여 조금 더 폭넓은 사유의 범주 내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은 확실한 장점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과연 내가 2개 국어를 같은 정도의 숙련됨으로 할 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학교 수업 중에, 언어학에 대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결혼도 안 하시고 평생 '언어'라는 학문에 이바지를 한 우아하고 차분한 원로 교수님이 말씀해 주신 내용이 기억이 난다. 한 사람이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있다는 가정하에,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배우는 데에는 6년이 걸린다고. 그리고 어린아이 보다 어른이 배움의 속도가 빠르다고. 어린아이들은 부끄럼이 없어 배운 대로 바로바로 입 밖으로 내뱉기 때문에 일견 어린아이들의 언어 습득력이 더욱 빠르다고 느낄 수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하셨다.



오, 그렇구나. 다소 의외의 지식이 되었다. 그러고는 말씀하시기를, 2개 국어, 흔히 bilingual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하셨다.



언뜻 그런 게 어딨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후에 이어지는 내용에 나도 공감 가는 바가 있어 고개를 주억거렸다. 2개의 언어를 동시에 같은 수준으로 구사를 할 줄 안다는 것은 하나의 'main' 언어가 없다는 뜻이라고 하여, 사고의 깊이가 비교적 얕다고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한 가지 특별히 압도적으로 잘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 깊고 좀 더 제대로 된 통찰력과 사고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준다는 말이다.



태어나면서 바로 2개의 세상 속에서 살아온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나에게 중국어는 한국 사람들이 하는 중국어보다는 잘하지만, 대만 사람들이 하는 중국어보다는 못하는, 그런 애매한 존재이다. 그래서 굳이 정말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나서서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나는 평소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도, 생각을 할 때 주로 사용하는 언어도, 잠을 잘 때 꿈속에서 들리는 언어도 다 한 가지, 한국어이다. 살아오면서 나의 특별한 이력 때문에 중국어는 내게 잘해야 하는, 잘해야만 하는 짐 같은 존재로 다가오기도 했는데 뭔가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애매한 중국어를 대신해 깊은 사고력을 얻은 것이다,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어주었다.



국적이 대만인데 '모국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어를 따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중국어에 대한 접점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을 해도, 아마 내가 한국어로 사유하는 만큼의 깊이 있는 중국어를 구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바꾸지 않는 이상에는 더더욱.



어렸을 때부터 나는 생각이 많고 정리정돈을 잘하고, 하고 싶은 일들과 말들의 순서를 배열하고 글을 쓰고 하는 것들이 좋았다.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면서 문맥이 매끄러운지, 필요한 단어들은 적절히 다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모든 순간이 즐겁고 사랑스럽다. 이러한 나의 '장점'도 언어적인 요소들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니 흥미롭다. 중국어를 한국어처럼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인생 모든 것에 장단이 있는 것처럼 그에 따른 장점도 있다는 사실이 삶을 살아가는데 만나는 작은 기쁨들 같아 수업을 듣는 내 즐거웠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니, '모국어'란 참 무엇인가 싶다. 나의 '모국'은 대만인데, 나의 '모국어'는 한국어이니. 이럴 때면 사고는 다시 굴레를 돌아 '나'는 무엇인가, 로 돌아가버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 같아 조금은 우울해지고 만다.



에잇, 좋다. 그렇다면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대만 국적을 가진 한국어를 제일 잘하고 중국어도 적당히 할 줄 아는 특이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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