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은 언제나 두렵다. 나이가 들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가끔 새로운 일을 아무렇지 않게 시도하는 어린 아가들을 볼 때, 나도 마음가짐은 저 아가이고 싶을 때가 많다. 나도 여러 가지 상황들을 재지 않고, 손 부터 먼저 갈 때가 있지 않았을까. 언제부터인가 너무 많은 상황을 가정하고 예측한다. 혹자는 그런 과정 속에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하지만, 때론 그 리스크를 너무 의식하다 보니 될 것도 안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평소 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 그냥 베개에 머리를 대면 3초 컷이니까. 그런 내가 요즘 눈을 떠있을 때도 너무 바쁘고, 눈을 감은 꿈속에서도 너무 바쁘다. 회사를 다녀오면 회사 생활에 대한 스위치를 딱 꺼버려야 하는데, 계속 회사에서 했던 일들이 생각나고, 내일 해야 할 일을 꿈속에서 미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그렇게 나는 회사를 가지도 않았는데 꿈 속에서 미리 회사를 먼저 다녀온다.
중3 겨울방학 때 미리 수학의 정석을 공부하는 것처럼.
어깨에 뭉친 작은 긴장감은 점점 더 강도가 세진다. 긴장감의 강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내 어깨는 점점 돌이 되어간다. 뭉친 어깨를 풀기 위해 목을 시계방향으로 몇 번 돌려보지만, 긴장감으로 엉켜 결국엔 뭉쳐버린 내 어깨는 이전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긴장감을 가득 머금은 채 금요일 저녁이 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지쳐 집에 돌아와, 긴장감을 풀고 싶어 맥주 한잔을 꺼내 유리잔에 부었다. 그리고는 TV를 켜고 유튜브를 눌렀다. AKMU의 신곡이 나와있어 자연스럽게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노래를 듣다가 나도 몰래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나는 왜 그렇게 누군가를 이기고 싶어 하는 것일까. 단순히 나의 의지일까? 아니면 어릴 때부터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 쫓아 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급하게 나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일까. 쿵쾅거리는 가슴, 파르르 떨리는 어깨, 활어처럼 팔닥이는 눈 밑, 나는 무엇을 위해 내 몸을 혹사시키고 있는 것일까.
나도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되지 않을까?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멈추지 못한다. 지하철 속, 버스 속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보자.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일 것이다. 전쟁터에서 총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당황할 것이다. 혼자 시간을 보낼 때 큰 생각 없이 넷플릭스를 들어가거나, 멜론으로 신곡 튼다. 뭔가가 돌아가고 있어야 내 마음이 편하다.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일까. 그러다 나도 모르게 당근 마켓을 들어가 화면을 위로 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쉼의 신이 있다면, 나를 좀 데려가 줘.
우리는 의식적으로 쉬어야 한다. '쉼의 신'을 찾아 이야기하고, 내가 가진 총을 창문 밖으로 던져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연습해야 내 몸도 정상적인 페이스를 찾는다. 쉼의 신이 나를 찾아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쉼의 신을 찾아가야 한다. 빠른 시일 내에 우리가 쉼의 신을 찾지 못한다면, 언젠가 내 귀에 이명이 들리고 그건 내 안의 비명으로 이어지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