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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잠시 멈출 수 있는 힘이 있나요?

by 초록해

브런치를 시작하고 가장 좋았던 점 중에 하나는 다양한 글을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이다. 직장 생활을 5년 정도 하고 나니, 또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럴 때마다 조금 더 이곳에 있어 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다가도, 또 현재 직장을 떠날 이유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사실 어릴 적 나는 이사를 매우 많이 다녔다. 전국에 안 살아본 곳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곳에서 짧은 시간 거주하는 것이 익숙했다. 그러다 보니 한 곳에 3년 정도 거주하고 나면, "오래됐다"라는 생각을 쉽게 하곤 했다. 한 지역에서 평생을 살아온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한 곳에서 오래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였을까. 결혼을 하고 난 지금도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이 때론 마음의 안정감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억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사이 스트레스는 최고치를 연일 경신한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 피로감의 끝은 어디일까.


"나에겐 잠시 멈출 수 있는 힘이 있을까?"


가평 펜션 (나무사이에 자연속으로, @theanalog_analog)




도심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자연의 소리를


어릴 때 자연에서 뛰노는 것이 익숙했던 나는 이제 유튜브, 인스타그램이 없으면 불안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방에 살 때는 하루쯤 핸드폰이 없어도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요새는 핸드폰이 없으면 연락을 못 받는 일이 생길 것만 같아 불안함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자연의 소리를 찾지 않았다.


모기와 날벌레가 가득한 자연을 찾기보다, 에어컨 바람이 빵빵한 멋진 건축물 속 공간이 더 익숙해졌다. 자연을 찾기보다 멋진 미술품을 찾아보는 게 더 재밌게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 자연보다 자연을 그린 그림을 보며 웃고 있는 날 발견했다. 다시 산모기에게 내 피를 허용할 때가 왔다. 에어컨 바람보다 모기향의 냄새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시 자연을 느끼러 가기로.


가평 펜션 앞 계곡 (나무사이에 자연속으로, @theanalog_analog)




의도적으로

쉬는 시간을 만들어야


그렇게 우리는 봄에 찾았던 가평 펜션을 또 찾았다. 아마 위치는 가평과 춘천 그 사이인 것 같다. 그래서 주 생활하는 곳은 가평인데, 도로명 주소는 춘천으로 되어있다. 우리 부부는 이 곳을 오면 항상 2박을 한다. 하루만 있기엔 이 자연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많다.


인위적인 조경을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나무, 그 나무에 푸르게 지도를 깔아놓은 이끼,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매미, 끊임없이 내 살을 좋아해주는 이름모를 벌레들, 그 사이로 스타카토 주법의 계곡 물 내려가는 소리까지.

희망과 절규의 소리들이 하모니를 이뤄 하나의 소리를 내는 것이 내 귀를 씻겨준다.


"헉헉헉..."

이 펜션을 지키는 럭키의 헐떡이는 숨을 듣고 있자면, 여름의 한 중턱에 와 있구나를 몸소 느낄 수 있다.


가평 펜션 (나무사이에 자연속으로, @theanalog_analog)




멈추지 않으면

숨 쉴 수 없다.


지난주까지 회사에서는 큰 이슈들이 많았다.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가지 업무를 해내다 보니, 마음의 여유는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다 보니 이전 같으면 별거 아닌 일에도, 금세 화가 났다. 내가 가진 삶의 대한 태도, 행동들에 불만족스러웠고 화는 쌓여갔다. 그러다 갑자기 이 상황이 억울해질 때면 주변에 산소가 부족함을 느끼곤 했다. 순간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어깨, 발바닥, 등, 가슴, 종아리에 긴장감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장인어른이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방법을 알려주셨지만 그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근육을 더 뭉치게 하기도 했다. 근육이 뭉치면 제대로 된 숨을 쉬기 힘들다. 그래서 난 다시 내 페이스를 찾아 숨쉬기 위해 멈춰야 했다.


나뭇가지 사이에 거미가 쳐놓은 거미줄에 편안하게 자리 잡은 나뭇잎이 눈에 보였다. 나뭇잎의 뒷모습이 너무나도 편안해보였다. 거미줄을 해먹 삼아 편안하게 숨 쉬고 있는 나를 투영해본다. 오늘 하루만큼은 아무 근심 걱정 없는 거미줄 속 나뭇잎이 되고 싶다.


가평 펜션앞 계속 풍경 (나무사이에 자연속으로, @theanalog_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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