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나는, 왜 그렇게 싸가지가 없었을까?

성장의 과정일까요? 없어도 되는 부끄러운 한때일까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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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 수업이었는데, 사회 교과서를 공중으로 붕 날렸어요. 그리고 받아요. 그짓을 한 번만 했겠어요? 나는 수업 안 들으련다. 조용히 딴짓을 해도 되는데, 굳이 선생님의 화를 돋워요. 지적받고, 혼나기를 바라는 거죠. 그냥 관심종자였던 거죠.


대학교 때가 싹퉁머리의 절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제가 1년간 학교 방송국 아나운서를 했어요. 전교, 아니 전국의 끼쟁이는 다 방송국에 있더라고요. 시도 때도 없이, 작은 예능이 펼쳐져요. 온갖 개드립과 수준 높은 농담, 느닷없는 스포츠 중계(스포츠 경기는 없어도 돼요)를 늘 볼 수 있었죠. 저는 과묵해져요. 끼로 못 이길 것 같으니까, 그딴 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던 거죠. 나대고 싶은데, 잘난 척하고 싶은데 그럴 '거리'가 없는 거예요. 입꼬리 살짝 올리는 특유의 비웃는 태도 있죠? 그걸로 잃어버린 자존심을 보상받고 싶어 했어요. 인사도 잘 안 했어요. 지금도 너무 죄송해서, 귓불이 다 빨개지네요. 복도에서 다섯 학번이나 높은 대선배와 마주쳤는데, 고개를 돌려 버려요. 너무 재밌는 선배, 모두가 떠받들어주는 선배일수록 반감이 심했어요. 나는 당신을 전혀 존경하지 않는다. 이렇게 쌩까는 게 그 증거다. 1학년 새내기가 복학생 대선배를 대놓고 무시하는 순간이었죠.


졸업반 때는 프리랜서로 잡자사 일을 했어요. 과 선배가 일을 맡기면서, 얼떨결에 기자 일을 하게 된 거죠. 그 선배도 한 성깔 하긴 했어요. 일을 맡기고는 이렇게 쓰는 거 아니다. 다시 써와라.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냐? 너 때문에 속 터져 죽겠다. 다른 기자들 앞에서 대놓고 망신을 주더라고요. A4 용지에 프린트된 원고를 선배에게 던졌어요. 종이니까 그냥 사무실 공중에서 힘없이 날아다녔죠.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더라고요. 종이까지 던질 때는, 안 하고 만다. 마음 접은 거죠. 편집장님이 친히 저를 찾으시더라고요. 화 풀고, 같이 일해보자고요. 이후로 선배와 그럭저럭 잘 지냈어요. 아르바이트로 생각했던 일이, 평생 저를 따라다닐 줄 누가 알았겠어요?


90년대 온라인 미디어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저에게도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요. 이십 대 후반이었을 거예요. 대표가 직접 저와 임금 협상을 했죠.


-민우 씨는 경력도 짧고, 나이도 젊으니까 2천5백에서 시작해 볼까?

-제가 탐나서 부르셨으면서, 왜 나이와 경력을 따지시나요? 협상의 기본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언론계 대선배 앞에서, 걸음마 기자가 '기본'이란 단어를 입에 담아요. 당돌하기 그지없었죠. 얼마나 가소로웠을까요? 괘씸했을까요? 그날 대표가 화를 엄청 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대표였다면 입에 거품 물고 쓰러졌을 거예요. 스무 살은 어린놈이, 나쁜 대우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저를 소개해준 선배는 또 웃더라고요. 대표 쿨하게 봤는데, 뭘 그런 걸로 발끈했을까? 이러면서요. 그때의 제가 낯설어요. 지금도 그 모습이 아예 없겠어요? 그놈이 그놈인데요.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잖아요. 같은 말도 듣기 좋게 할 수 있어요. 왜 그렇게 공격적이었을까요? 싸움닭처럼 날을 세웠을까요? 그때 저는 세상이 네모라고 생각했어요. 수평선 너머는 낭떠러지였죠. 밀려나면 끝장이다. 할 말 하지 않으면 본전도 못 찾는다. 내가 생각한 정의와 상식이 관철되지 않으면, 나는 노예다. 패배자다. 그런 조급함이 있었어요. 게다가 혈기 왕성한 에너지도 어떻게든 표출해야 했고요. 옳고, 그름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 덜 옳고, 더 옳은 것, 덜 그르고, 더 그른 것들이 백 가지 농도로 존재함을 몰랐어요. 나만 약한 존재고, 나만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했죠. 모두 상처가 두렵고, 그래서 공격적이거나, 지나치게 방어적이라는 것도 몰랐어요. 급류에서 나라도 살아야겠다. 보기 싫게 발버둥 쳤던 거죠.


지금의 이십 대가 왜 이렇게 날이 서있나? 의아했어요. 저의 과거를 생각 못하고요. 까칠하고, 예민하고, 공격적인 것도 다 두려움이죠. 약하니까, 더 화가 많을 수밖에요. 더 부들거릴 수밖에요. 나이를 먹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사라질 수 있는 두려움이죠.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머릿속의 정의가 전부가 아니죠. 수백, 수천 가지의 농도로 생각과 사상과 정의가 섞여서, 지금의 세상이 됐어요. 질서와 순리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고, 판단의 결과도 돌고, 돌아서 뒤늦게 파악될 때가 많아요. 손해를 봤다 생각했지만, 결국 이득이 되는 경우도 정말 정말 많죠. 당장의 손해가, 승패가 착시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좁은 세상을 전부로 생각하며 좌절하거나, 기고만장해지시지 말기를... 고수라면 다음다음 수를 볼 수 있겠지만, 모두가 고수일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하수는 피해야죠. 나오지도 않은 성적표로 울고불고 하지 마시라고요. 느긋해지면, 의외의 결과가 찾아올 거예요. 그러니까 조금은 릴랙스, 마라톤을 뛰는 심정으로 꾸준하게 앞으로 나아가세요. 이런 잔소리를 하려고 이 글을 쓴 건가? 모르겠어요. 새겨들으실 분만 새겨들으시면 되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쉽게 쓰이면 부드럽게 읽히고, 어렵게 쓰면 꾹꾹 눌러져서 읽히더라고요. 다 이유가 있겠죠. 저는 전달자로서 만족하려고요. 더 가벼워지고, 투명해져서 세상에 나와야 할 글을 성실히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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