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 이야기입니다
저 근자감의 이유는 뭘까? 그런 생각이 드는 친구들 누구나 있으시죠? 고백을 했다 까이면, 나를 까? 보는 눈도 없다. 운도 지지리 없다. 그렇게 확신하는 사람요. 영업을 하다가 문전 박대를 당해도, 아, 배고파. 씩씩하게 된장 찌개 한 그릇 비우는 사람요. 부럽죠. 저는 내면 깊이 왕찐따가 살거든요. 싫은 소리 한 번만 들어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늙었다. 못 생겼다. 누구나 한두 번쯤 듣는 소리일 텐데, 저는 듣고 싶지 않아요. 나를 함부로 평가한 사람에게 적의를 느끼죠. 누가 뭐래도 내가 최고야. 이런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자랐을까요?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라지 않았을까요?
저는 확실히 '듬뿍' 사랑받은 아이는 아니었어요. 어머니의 사랑은 듬뿍 받았죠. 대신 2등이었어요. 형과 나, 둘중에 2등이요. 근거는 많아요. 가장 결정적인 건 형의 옷을 제가 물려 받았다는 거죠. 제가 형보다 반뼘은 더 컸어요. 지금은 형이 조금 더 크지만요. 꽤나 상징적이지 않나요? 옷이 작아져서가 아니라, 그냥 헌 옷은 둘째 거였던 거죠. 둘째는 생일 파티를 단 한 번도 해주지 않았지만, 첫째는 여러 번 생일 파티도 해주셨죠. 심지어 저의 생일도 매우 의심스러워요. 제 생일은 9월 2일인데요. 어머니는 늘 음력 8월 4일이라고 하셨죠. 다 커서 확인해 봤더니 음력 8월 4일은 양력으로 8월 31일이더군요. 제 생일은 이토록 불확실해요. 아버지요? 아버지와의 친밀함은 기억에 없어요. 안아 주시거나, 내 새끼 최고. 이런 표현이 없으셨죠. 우리 또래 아버지들은 대부분 비슷할 거예요. 형이 사달라는 축구공이나, 야구 글러브는 늘 사오시긴 했네요. 전 뭘 사달라고 하는 아이는 아니었어요. 사랑받는 건 제겐 투쟁이었죠.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까? 평생 영업을 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국민학교 때 반장을 하기 위해서 세상 자상한 남자가 됐어요. 원래 인기 많은 아이는 따로 있잖아요. 눈 크고, 피부 뽀얗고, 공부 잘 하는 애요. 성적은 얼추 비슷한데, 나머지는 제가 너무 딸리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여자 아이들에게 더 많이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캐릭터를 작정하고 구축했어요. 아, 그랬구나. 정말 힘들었지? 그래봤자 열 살 갓 넘은 아이가 그런 말을 달고 살았으니까요. 반장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일말의 갸능성을 봤죠. 이를 악물면 변신도 가능하다. 연기를 하다 보면, 본모습이 뭔지 헷갈리게 돼. 원래 성격은 중요치 않아.
-아들 같아서 하는 소리인데, 눈알 굴린다는 소리 들어 봤죠?
심장이 철렁 내려 앉는다는 게 이런 거였군요. 소설을 써봐야겠다. 시한부 환자가 여럿이 모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죽음을 무겁지 않게, 밝고, 건강하게 그린 소설을 쓰고 싶었죠. 호스피스 목욕 봉사를 꾸준히 갔어요. 그때 만났던 성격 좋은 아주머니가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할 소리가 있고, 하지 못할 소리가 있지. 어떻게 눈알을 굴린다는 말을 면전에 대고 할 수가 있죠? 그동안 썼던 가면은 그렇게 들키고 말아요. 진즉에 들켰겠죠. 다들 입을 닫고 있었을 뿐.
어쩌겠어요? 그렇게라도 노력하겠다는데. 도둑질을 하려고 눈알을 굴리는 건 죄지만, 이 사람이 나 때문에 불편한가? 눈치를 보는 건 죄는 아니니까요. 진심은 절반만 담고, 나머지는 잘 보이고 싶은 의도라도요. 백 점짜리 바람직함이 아닐 뿐이지, 반성부터 해야 하는 죄는 아니니까요. 만약 저에게 사랑 듬뿍 받는 삶과 눈치 보는 삶 중에 고르라고 하면, 전 후자를 택하려고요. 사랑받는 삶이 훨씬 달콤하겠죠. 후천적으로 몸부림을 쳐야 밀려나지나 않는 삶은 긴장감이 있죠. 늘 사람을 이해하려고 고민해야 해요. 안쓰럽지만, 갸륵하다고 해야 하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끙끙대는 생명체는, 결국엔 아름다웠노라. 나중에라도 자신을 칭찬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적당한 긴장감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려요. 비아냥 아니고요, 냉소 아닙니다. 저는 충분한 사랑을 받았고, 꼭 필요한 결핍을 보너스로 받았다고 생각해요.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사람들은 긴장 좀 해주시고요. 누군가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소홀하지는 않으셨나요? 늘 저절로 들어오는 관심에, 등 따숩고, 배부르진 않으셨나요? 샘나서 그래요. 듬뿍 받은 사랑이 당연한 게 아니라 생각한다면, 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예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더 좋은 글보다 더 쉬운 글, 만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친구처럼 같이 늙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