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남는 죄책감에 대하여
-아니, 그 말씀하시려고 전화하셨어요? 끊어요.
고3 겨울이었죠. 학력고사도 끝나고, 합격자 발표도 끝나가는 중이었죠. 저는 모대학 신문방송학과를 떨어지고, 2 지망으로 독어독문학과 야간에 붙어요. 그땐 1 지망, 2 지망이 있었어요. 재수를 하고 싶은 고3이 어디 있겠어요? 독일어가 딱히 취향은 아니지만, 대학생이 되는 게 중요하죠. 갑자기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와요.
-왜 야간을 썼냐? 어? 어?
낮잠에서 깬 저는 너무 억울한 거예요. 저라고 이런저런 생각이 없겠어요? 마냥 기쁘기만 하겠냐고요? 고3 담임이 골라준 2 지망을 저보고 어쩌라는 거죠? 2 지망은 안전빵을 써라. 1 지망 신방과를 써주는 조건이었죠.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무서워했어요. 어머니 친정이 너무 가난해서, 할머니는 어머니가 늘 못 마땅하셨죠. 여유 있는 집도 아닌데 오빠랍시고, 동생이랍시고 신혼방 한 자리를 꿰찼으니까요. 남편 몰래 등록금이다, 뭐다 쌈짓돈을 챙겨줬으니까요. 제가 할머니여도, 어머니가 눈엣가시였을 거예요. 오죽하면 이혼을 바라셨을까요. 우리도 덩달아 미우셨던 거죠. 안아주고, 예뻐해 주는 손주는 사촌들 몫이었죠. 저는 따뜻한 할머니가 기억에 없어요. 오죽하면 추석날 큰집이 무서워서 다섯 살 아이가 가출을 했을까요? 집안이 발칵 뒤집혔었죠. 교육열이 대단하셨는데, 먹고살아야 해서 자식 교육을 포기하셔야 했어요. 그게 한이 되셨는지 손주들 성적에 관심이 많으셨죠. 손주가 대학에 합격했다고 좋아했더니 야간이야? 천불이 나신 거죠. 못 참으신 거죠. 그래서 전화로 제게 호통을 치신 거죠. 저도 못 참죠. 고3 끝자락, 나름 성인인데요. 매일 기죽어 있던 과거의 제가 떠올라서, 더 큰 소리로 대들었어요.
-왜 자꾸 저를 괴롭히시는 거예요? 네? 네?
전화기를 끊고는 심장이 얼마나 벌렁거리던지요. 그 무서운 할머니에게 제가 무슨 짓을 한 건가요? 그리고 딱 이틀 후 할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져요. 누구 탓이겠어요? 아무도 제 탓이라고 이야기 않더군요. 그때 알았어요. 너무 큰일이 벌어지면, 무조건 덮으려고만 한다는 걸요. 이미 일어난 일이고, 이 일로 젊은 아이 앞길을 망치면 안 된다. 다들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쉬쉬하더군요. 할머니의 몸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했죠. 찔끔찔끔 절면서 겨우 화장실을 가고, 대부분의 시간은 누워 계셨어요. 할머니에게 문안을 가는 날, 저는 도망치고 싶었어요. 할머니를 보고 싶지 않았죠. 누운 할머니, 먼발치 떨어져서 괜찮으세요? 형식적으로 묻는 내가 견딜 수 없이 어색하더군요. 그 사이에 꽉 채워진 차가운 공기를 지금도 생생해요. 오래오래 앓다가 돌아가셨어요. 관에 누워 계시는 할머니는 나무껍질처럼 퍼석했죠. 화장터로 가기 전 관에서 잠시 꺼내졌을 때, 꽁꽁 묶인 조그만 시신을 보면서 울음이 터져 나오더라고요. 살아 계실 때는 차마 나올 수 없었던 울음이었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속의 속 마음은 백 프로 뉘우침은 아니었죠. 왜 그리 저를 미워하셨나요? 제 탓만은 아니잖아요. 돌아가신 할머니 앞에서 끊임없이 저를 변호하더군요. 산 사람은 살아야죠. 그 어마어마한 죄책감에서 저를 구하기 위해, 저는 저의 죄를 부정해야 했어요.
할머니, 지금은 자유로우세요? 알아요. 저 잘 되라고 그러신 거요. 그걸 어린 제가 소화를 못했던 거죠. 지금의 저는 마음에 드시나요? 부자로 살지는 못해도, 날개 없는 사람 중엔 꽤나 자유로운 축에 속해요. 저 대신 글이 훨훨 날아서 세상 끝 누군가에게 닿고 있어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이미 용서해 주셨겠지만, 그래도 또 용서해 주세요. 뻔뻔한 삶이 아니라, 당당한 삶을 위해선 할머니의 용서가 필요해요. 할머니 더, 더 자유로워지세요. 늘 훨훨 나는 할머니였으면 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나와야 할 글이 제 손을 거쳐 나올 뿐이죠. 저는 잘 쓸 필요 없어요. 멋진 글일 필요도 없어요. 저를 깨끗이 닦고, 나와야 할 글을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오늘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