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위로 - 성공하지 못한 자의

더 낮은 사람이 드리는 위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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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 말하지 않을게요. 저는 성공하지 못했어요. 실패자란 말은 안 쓸게요. 여전히 저도 도전하는 삶이니까요. 저를 기억하는 친구들은 제가 야심가였대요. 누구보다 욕심이 많고, 그걸 실행할 추진력도 있었대요. 누구보다 잘 살 줄 알았다네요. 가까이 있다고 사람 잘 보는 거 아니더라고요. 뭘 보고 실행력이 있다고 그랬을까요?


처음 여행기 '1만 시간 동안의 남미'를 내고 돈방석에 앉을 줄 알았어요. 출판 기획자는 요즘 누가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자기 이야기를 쓰느냐? 표지에 왜 작가 얼굴(잘 생기지도 않은 얼굴)을 넣느냐? 김 빠지는 잔소리 많이 들었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예쁜 사진과 짧은 글들 속에서 내 책은 돋보이겠구나. 제 예상은 절반만 맞았어요. 꽤 팔렸지만 센세이션을 일으키지는 못 했어요. 대신 감옥에서, 해외에서, 병실에서 초등학생부터 칠십 대 노인까지 뜨거운 지지를 보내 줬어요. 큰 출판사였다면 훨씬 더 팔렸을 거라고들 얘기하지만 만족해요. 원하는 책이 원하는 완성도로 나왔으니까요.


이후에도 열심히 책을 썼지만, 어째 처음보다 더 안 팔렸어요. 그나마 방송 출연이라도 하고, 강연이라도 돌지 않았다면 굶어 죽었을지도 몰라요. 결혼은 딱히 관심도 없었지만, 오십이 가까운 나이에 이렇게 사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추레하게 보일 것도 알아요. 흐르듯 살았더니, 이렇게 됐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유튜브로 먹고살아 보자. 지금도 드문드문 올리기는 하는데, 찍고, 편집하고, 자막(특히 자막)에 음악에 더빙까지 하니까 돌아버리겠더라고요. 말도 잘하지, 프로 여행꾼이지, 한국보다는 해외에 주로 머물지. 제가 유튜브를 하면 대박 난다고들 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절대적인 시간을 써야 한다는 걸 간과했어요. 매일 글까지 쓰다 보니까 유튜브에 쓰는 시간이 그렇게 안 나더군요. 하나만 택해야죠. 하나에만 집중해야죠. 세상을 읽을 줄 안다면 유튜브죠. 엄한 글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딱히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삶이에요.


이 모습이 안 되기 위해서 스무 살, 서른 살 때 그렇게 불안해했어요. 내 손으로 마련한 방 한 칸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죠.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런 사람이 됐어요. 스물아홉에 노래방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만 부르면 그렇게 눈물이 나더군요. 청춘이 끝나면 인생도 끝나는 거니까요. 이젠 클럽은 다 갔다. 어디를 가도 늙은이 취급이겠구나. 서러워서 울었어요. 이룬 게 없어서 울었어요. 서른이 되고 나니까, 달라지는 게 없어요. 없어도 너무 없어요. 클럽 가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고, 이루지 못했어도, 스무 살 때랑 비슷하게 불안한 정도였죠. 애개개, 내 두려움 물어내. 노래방에서 주접떤 게 그렇게 분하더군요. 마찬가지예요. 이 나이에 변변하게 이루지 못했어도, 그렇게까지 불행하지도 않아요. 친구들 대부분은 안정적으로 살아요. 딱히 부럽지도 않아요. 다들 이런저런 고민으로 허덕이더군요. 제네시스와 마포에 삼십 평 아파트가 핑크빛 삶을 보장해 주지는 않아요. 물론 저처럼 거지 같이 사는 것 역시 행복의 샘플은 아니죠. 그냥 모든 삶에 행복과 불안이 교차해요. 조건이 행복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어떤 조건도 행복과 불행을 골고루 담고 있어요. 앞으로 제가 어떤 성공을 하건, 더 곤두박질을 치건 그 안에서 또 행복과 불행을 골고루 감당해야 해요. 지금 이 나이에 깨달은 건 그 정도예요.


불안해하세요. 불안도 자기 몫이니까요. 하지만 미래에 대단한 반전이 있다고 기대하지도 마세요. 태도가 행복을 결정하더군요. 지금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 능력으로 미래의 행복도 거머쥘 수 있어요. 지금만 불행하고, 미래엔 행복할 거야. 그건 꽤나 희귀한 경우더군요. 입에 발린 소리 같지만, 가진 것 안에서, 성취한 것 안에서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해요. 그게 굉장한 능력인 거예요. 그 능력으로 조금씩 미래로 다가가세요. 언제 이만큼 왔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먼 길을 담담히 왔음을 깨달을 날이 올 거예요. 지금 자신의 우울은, 혹시 미래의 턱없는 기대감 때문은 아닐까요? 이 순간을 평가절하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돌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별 거 없는데도, 행복해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을 질투하세요. 가성비가 월등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이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신비롭기까지 해요. 글자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과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거요.


박민우의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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