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나이를 먹는 게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

막연하지만, 거대한 두려움. 청춘을 잃는다는 것

by 박민우

-나도 너처럼 팽팽할 때가 있었어. 그래도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안 돌아가.


아니 누가 물어봤냐고요? 까마득한 선배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아이고, 너는 젊어서 좋겠다. 저에겐 그렇게 들리던데요? 다들 그랬겠지만, 저의 이십 대도(삼십 대까지) 술과 클럽의 반복이었어요. 홍대에 클럽 데이가 지금도 있나요? 일일권을 사면, 모든 클럽 입장이 가능했어요. 멋쟁이 선배랑 이 클럽, 저 클럽을 기웃거렸죠. 그 형은 프랑스에서 예술사를 공부한, 금수저 집안의 막내아들이었어요. 여기는 물이 별로라며, 제일 잘 나가는 클럽으로 발길을 돌렸죠.


-죄송하지만 입장이 안 되십니다.


말로만 듣던 입뺀(입구에서 뺀찌 먹다. 즉 쫓겨나다)을 처음으로 목격한 순간이었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형이? 나이가 조금 많기는 해도, 부티가 철철 흐르는 사람인데? 형은 내가 누구인 줄 알고를 시전하다가 금세 꼬리를 내리고 다른 곳으로 가자더군요. 그날은 저에게 큰 충격이 돼요. 나도 얼마 안 남았다. 저 형 꼴이 안 나려면, 클럽은 접어야 한다. 하아, 클럽을 접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요? 저를 유난히 예뻐하던 파티 플래너 누나가 있었어요. 우리 나라 3대 파티 플래너 중 한 명이었죠. 청담동 일대의 파티는 무조건 입장 가능이었죠. 연예인들도 못 들어가는 VIP룸에서 양주 마시면서요. 저는 그냥 열심히 춤만 췄는데도, 누나가 고마워했어요. 너처럼 노는 사람이 없다면서요. 그런 생활을 접으면 무슨 낙으로 사나요? 너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중년의 넋두리를 들을 때마다, 다시 젊어지고 싶다. 내면의 절규처럼 듣기 싫더라고요.


자, 이제 그때의 삶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어요. 그 순간이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멋진 옷을 보면, 내가 입어보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즐거웠어요. 입으면 또 그렇게 잘 어울리더라고요. 착각이어도 어때요? 어차피 자기만족인 거니까요. 사람들 시선도 자주 느끼며 살았어요. 외출 한 번 하려면 거울만 얼마나 오래 봐야 했겠어요? 오른쪽 귀도 뚫어 봤고요. 개목걸이처럼 팽팽한 목걸이도 차고 다녀 봤죠. 고대에선 그 누구도 엄두 못 내는, 반바지에 양말 없이 구두 신기. 패션 깡패짓도 저는 해봤답니다. 촌놈들이 왜 지랄이고? 시비 걸면, 그게 또 그렇게 듣기 좋더라고요. 너희들이 그럴수록, 나는 연대생처럼 보인다는 거겠지? 일부러 홍대, 신촌에서 놀았어요. 입을 옷이 없다며 걸린 옷들을 보며 한숨 쉬는 날이 많았죠. 그런 하루하루의 긴장감이 그리울 때가 왜 없겠어요?


그런데 저 역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선배들 말이 맞았어요. 청춘의 향긋한 날도 있었던 거지, 향긋한 날만 있었던 게 아니니까요. 그때도 연애 문제로, 미래의 불안으로 줄담배를 피웠던 날이 많았으니까요. 깨어 보니 엉뚱한 역 종점이거나, 흉물스러운 아파트 건설 현장 한가운데일 때도 있었어요. 술을 얼마나 퍼마셨으면요. 모르는 사람 장례식장에 쓰러져 자던 적도 있었죠. 남들 출근할 때 머리 긁적이며 집으로 돌아간 날도 수도 없이 많았어요. 욕망이 들끓으면, 불안도 끓어요. 다 내 손에 쥐어질 것 같은데, 손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 괴리감이 괴로웠어요. 나보다 조금만 잘 난 사람을 봐도,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꼴 보기 싫고, 꼴 보기 싫어하는 내가 또 혐오스럽고요.


절반은 그립고, 절반은 홀가분해요. 과거의 그 자리에 스무 살의 내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되돌아갈 수 없고, 그리워만 할 수 있어서요. 그때는 늙는 게 무서웠어요. 무슨 낙이 있을까? 죽지 못해 억지로 버티는 늙은 거북이 같았죠. 아니더라고요. 그때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여유가 찾아와요. 그때는 젊음에 대해 감사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훨씬 늙었는데도, 지금의 젊음이 너무도 감사해요. 예전엔 몸이 영원히 싱싱할 줄 알았다면, 이제는 많은 것들이 시간의 순서를 밟아가며 시듦을 알아요. 결국 하나씩, 하나씩 다 놔줘야 해요. 그러니 소중해요. 더 애틋해요. 그때는 날씨에 감사하지 않았어요. 그때는 눈을 뜨면 시작되는 하루가 경이롭지 않았어요. 자연이 딱히 감동적이지 않았고, 사랑받는 게 당연했어요. 노래방에서 내가 무엇을 불러도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 줬어요. 이젠 같이 노래방 갈 친구도 없어요. 금영 노래방 이달의 인기곡들은 다 남 이야기가 된 거죠. 이젠 불안하지 않아요.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더 내가 가진 젊음을 각성하게 될 테니까요. 진심으로 우러나는 감사를 하게 될 테니까요. 더 많은 것들이 보일 테니까요. 더 많은 나무와 꽃들의 이름을 알게 되고, 그 꽃들이, 이파리들이 하나씩 소멸할 때마다 쓰다듬어줄 수 있는 마음이 생겨 있을 테니까요. 더 가벼워져서는, 끝으로 가는 여행을 충실하게 해낼 수 있을 테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우리를 견디게 하는 힘은 무얼까를 생각해요. 그게 무엇이든 하나씩은 있었으면 해요. 저는 맛있는 한 끼, 스무 살 때의 노래들,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저를 견디게 해요. 풍요롭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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