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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가람 Jul 27. 2018

아, 기혼과 비혼의 간극이란

일시불로 질러버린 세계여행 @스위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철저히 이방인임을 느끼고 싶었다. 내가 지금까지 한국이라는 곳에서 공고히 쌓아 놓은 ‘나’라는 사람의 벽을 무너트리고 그저 한 사람으로서 다니고 싶었다. 그러나 일단 나는 여성이었고, 아줌마였다. 생각보다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의 나를 궁금해 했다. 결혼했다는 말 한 마디면, 구구절절 사연을 남겨 두고 여행을 떠난 사람 취급하기 일쑤였다. 이방인은커녕 취조실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스치는 인연이 될 사람들에게는 적당히 둘러대게 되었다.


하지만 스위스 민박집은 달랐다. 할머니가 딸과 함께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민박집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내가 머무를 때, 함께 숙박하는 여행자도 모두 아주머니들이었다. 아주머니 두 분이 각자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오셨는데 보통 에너지가 넘치는 집단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것을 보니 영어를 어느 정도 잘하나 보다고 할머니가 칭찬하시자 아주 자신 있게 “그럼요! 저 영어 잘해요!” 대답하던 아주머니를 우연히 매표소에서 마주쳤다. 매표소 직원이 뭐라 떠들던 “티켓 티켓! 고 앤 백(Go and Back)!” 두 마디만으로 표를 끊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주인 할머니와 두 아주머니가 아주 정감이 넘치시기에, 나도 편하게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내가 결혼을 했다고 하자 두 팀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인 할머니 딸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인 할머니는 뭣 하러 그렇게 일찍 결혼을 하냐고 혼을 내셨고, 아주머니들은 역시 사람은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결혼을 하지 말아야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는 ‘결혼 반대파’와 결혼을 해야만 삶을 살아가며 진정한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는 ‘결혼 찬성파’로 나뉜 것이다. 기혼과 비혼의 간극이 얼마나 크기에……. 사이좋던 민박집 사람들에게 내가 갑작스레 결혼 논쟁을 붙여 버린 꼴이었다.


민망한 마음에 민박집을 나와 니더호른(Niederhorn) 정상으로 올라갔다. 내 언어 수준으로는 ‘쌩쌩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무동력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기로 결심했다. 물론 가장 짧은 코스로. 그러나 생각보다 코스가 길다 싶어서 중간 중간 길을 확인하니, 역시나. 길을 잘못 들었다. 12킬로미터 코스를 무동력 자전거에 동력을 불어 넣으며 가다 보니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얇은 점퍼를 걸친 탓에 콧물을 흘리며 간신히 민박집으로 살아 돌아왔는데 이미 온 몸은 불덩이가 되었다. 결혼 논쟁으로 갈라섰던 주인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하나가 되어 나를 보살피며 죽도 끓여 주고 약도 챙겨 주었다. 할머니는 뜨끈뜨끈한 안방도 내어 주셨다. 



누워서 그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생각했다. 
역시 기혼과 비혼은 혼인신고서 한 장 차이라고.



이깟 종이 한 장으로 남의 삶을 규정짓다니 ⓒ황가람 [혼자 떠나도 괜찮을까?] 중에서






여행을 가기 전에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보지 않았다. 미리 알고 여행을 다녔다면 유레일패스로 이동하면서 주변 좌석을 좀 둘러봤을 텐데……. 어쨌든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기분은 참 좋았다. 비행기나 버스와는 다르게 주변 풍경을 한층 아름답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는 풍경과의 거리가 노골적으로 가깝고, 비행기는 지나치게 멀다. 기차는 풍경과의 거리가 적당하다. 어떠한 장면에서든 일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좋았다.


나는 사회적인 사람이다. 필요한 때에 맞춰 성격을 조정했다. 말 많은 사람이 많은 모임에서는 이왕이면 침묵하고, 소극적인 사람들이 많은 모임에서는 목이 쉴세라 떠들었다. 그렇다고 그 모습이 매 순간 거짓은 아니다. 그저 여러 가지 공들 중에서 필요한 공만 꺼내 드는 거니까. 어떤 공을 꺼낼지 결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가진 공의 개수가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대부분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은 게스트하우스에서 통성명을 하고는 더러 함께 여행한다. 그렇게 함께 여행지를 돌고 연락처를 주고받고,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도 하면서 인연을 이어나간다. 그런데 나는 여행지에서는 이상하게 그 정도의 관계도 피곤했다. 분명 이런 나를 야속하게본 사람들도 있었을 테다. 내 자신도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가 영화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을 보고 깨달았다. 그래 저것 때문이야!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은 그 순간에만 살아 있는 것인데, 대체 왜 다시 만나는 거야?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은 그곳에서 만났기 때문에 좋았다. 그들을 다시 만나보았자 그날의 추억을 몇 번씩 반복해서 이야기하다가, 다시 술집에서 만나 연예인의 연애나 이야기하는 시시한 인연으로 전락한다. 하룻밤의 추억을 아홉 해나 가슴에 품고 살아 왔으나 결국 유부남이 되어 나타난 <비포 선셋>의 인연처럼. 그런 것들이 싫다.


최근에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비포 미드나잇>을 봤다. 역시나 그들도 어느 특별할 것 없는 연인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가사 분담의 고통에 대해 토로하고 능력에 대해 불평하고 바뀌지 않는 서로의 단점을 지적하는. 그러나 분명 그들에게는 다른 점이 있었다. 상투적이지만 ‘첫눈에 반했다’ 같은 열정, 서로에게 바닥을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순수함 같은 것들 말이다. 그들은 서로의 어떠한 풍경에서도 거리를 적당히 두는 기차와 닮아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비슷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전 부인 이야기를 하며 서로 최악의 모습을 보이든, 다시 첫눈에 반하게 만든 그 모습을 보이든 말이다.


내가 놓쳤던 인연들을 이들처럼 대할 것을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익기 전에는 떫지만 익을수록 더 맛있는 홍시처럼, 여행지를 떠나 연락해도 더 의미 있는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뭐가 맞는지 알 수 없으나 아직까지는 내 생각을 바꿀 마음이 없다. 그러나저러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비포 선라이즈>라는 것은 변함없으니까.



여행 가면 우리 같은 일 생길 것 같죠? ⓒ황가람 [혼자 떠나도 괜찮을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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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예고편] 

#05 베르베르족과 사막 위의 하룻밤 @모로코_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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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혼자 떠나도 괜찮을까?] by 황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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