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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가람 Aug 03. 2018

베르베르족과 사막 위의 하룻밤

일시불로 질러버린 세계여행 @모로코_케냐

모로코로 들어오는 방법과 출발지는 모두 다르지만, 목적과 종착지는 대부분 동일하다. 사하라에서 사막 투어를 하기 위해 마라케시(Marrakech)로 모이기 때문이었다. 사하라는 세계에서 가장 광대한 사막으로 그 면적이 860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그곳을 밟기 위해선 오전 7시에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작은 미니버스에 몸을 구기고 종일 이동해야 했다. 여행 다녀온 이들의 후기를 보면 멀미약을 먹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스스로 워낙 튼튼하다고 자부해서 먹지 않았다. 물론 출발하자마자 약간 후회했다. 조수석에 앉는 것이 좋다는 했는데, 맨 뒷자리에 앉았다가 하루 종일 머리를 천장에다가 박아댈 땐 사실 많이 후회했다. 역시 여행 후기는 믿는 게 좋다.


중간중간 관광지에서 쉴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틀라스 산맥은 거인 아틀라스가 메두사의 눈을 보고 굳어 생긴 산이라고 알려졌는데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까지 약 2000킬로미터에 걸쳐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에잇벤하두(Aït Benhaddou)는 영화 <글래디에이터> 촬영지라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다시 미니버스에 타야 하는 게 걱정이었다.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들이 버스에서 자리를 정하듯이 미니버스도 각자 자기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나는 겨울 패딩을 꺼내 터번처럼 머리에 둘둘 감고 잠을 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하라의 초입인 메르주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낙타를 타고 이동하는데 현지인인 베르베르인이 다들 승마한 경험 있냐고 물었다. 뭐……. 에버랜드나 제주도에서 타고 한 바퀴 돌아본 적 있으니까 나는 아예 없진 않다고 모호하게 얼버무렸다. 마침내 낙타 타기가 시작되었는데 낙타는 다리 길이 자체가 말과는 달랐다. 게다가 낙타의 뒷다리는 관절이 두 개, 그중 하나는 앞으로 접힌다.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상하좌우로 흔들리는 진폭 자체가 엄청나다. 엉덩이에서 피가 나는 기분이었다. 고통스러운 낙타 타기를 끝내자, 드디어 사하라에서 우리가 1박을 할 텐트가 보였다.


사막의 밤은 베르베르인의 축제로 시작한다. 모닥불 피워놓고 전통악기를 연주하지만, 귀찮음이 가득한 연주였다. 모두 자신의 일행들과 대화를 나누기에 혼자 온 나는 대화가 뚝뚝 끊기기 일쑤였다. 자리를 벗어나서 텐트 주변을 걸었다. 베르베르족 청년이 부리나케 달려와 언덕 위로 가자고 치근댄다. 이곳에 오기 전 버스에서 만난 디에고가 한 충고가 떠올랐다. 혼자 여행하던 여자친구가 사하라 사막은 베르베르족의 추파로 고생했다고 하니 조심하라고 말이다.


베르베르족 청년은 
언덕에서는 별이 훨씬 잘 보인다고, 
같이 가면 나에게만 
더 좋은 것들을 보여 주겠다고 성화다. 



디에고의 충고도 있었고, 이미 유부녀였던 나는 정중하게 거절하며(그래 봤자 노땡큐가 전부지만) 텐트로 몸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얼핏 하늘을 보니 정말로 별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별에 눈길을 줄수록 베르베르 청년이 더욱 치근대서 빠른 걸음으로 돌아왔다. 


텐트에 몸을 눕히니 남편이 보고 싶었다.


저 멀리서 보면 나도 빛나는 이 별의 일부겠지ⓒ황가람 [혼자 떠나도 괜찮을까?]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남자 타입은 다음과 같다. 일단 이목구비고 뭐고 다 떠나서 피부가 까매야 좋다. 햇볕에 적당히 그을린 피부는 땀흘려 일하는, 혹은 운동하는 건강함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러나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또 옷을 깔끔하게 입고 있으면 매력이 삼십 퍼센트 떨어지는 것이다. 이성의 이목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대충 목 늘어난 티셔츠에 삼선 슬리퍼 정도는 신어줘야 내 더듬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루가 다르게 수많은 드라마가 쏟아지고 남자 주인공이 스타덤에 오르지만, 내 스타일인 남자 주인공은 지금까지 딱 한 명이었다. 드라마 <추노>의 대길이(장혁이 아니고 극 중의 인물 대길이다) 말이다. 친구들은“너는 꼭 거지꼴을 좋아하더라.” 하며 웃었고, 나도 내 남편이 떠올라서 정말 그런가 생각하며 웃었다. 물론 아프리카 남자들이 햇볕을 쬐며 일을 해서 까만 피부를 지닌 것은 아니겠지만, 위와 같은 이상형 타입을 지닌 내 기준에는 대부분 멋있었다.


케냐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은 모두 느렸다. 더운 날씨 탓에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이면 땀을 흘리는 큰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같았다. 체크인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한참 시간이 걸렸다. 간신히 체크인을 끝낸 직원은 내 방이 삼층이라며 계단을 가리킨다. 계단의 경사가 어마어마했다. 물론 허름하기 그지없던 곳이라 엘리베이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십 킬로그램이 넘는 내 캐리어를 어찌 옮길지 고민이었다.


그때였다. 지금까지 있었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바닥에 앉아 있던 청년이 부스스 일어나 캐리어를 번쩍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던 곳에서 남자들의 도움을 종종 받았지만 대부분 캐리어를 발목 정도의 높이로 들고 낑낑대며 계단을 올라갔다. 이 청년처럼 빈 물통 들듯이 어깨에 인 사람은 처음이었다.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열여섯 소녀처럼 두근대며 쫓아 올라갔다. “괜찮아?” 물어봤지만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는 청년은 맨발이었는데 발바닥이 유독 흰 것이 눈에 띄었다. 팁을 주려는 내 손이 무안하게 그는 캐리어만 내려놓고 사라졌다.


방에서 짐을 풀고 옥상에 조식을 먹으러 가는데 부엌에 있는 이가 낯익었다. 아까 그 청년이었다. 몸의 근육을 짐승처럼 쓰며 커다란 가방을 들던 모습과는 영 딴판인 섬세한 손짓으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잼을 곱게 바른 토스트와 커피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더니 지붕위에 올라가 목이 늘어난 웃옷을 벗고 누웠다. 해가 막 뜨고 있었다. 


내 스타일 외간 남자가 만들어준 
토스트를 와그작 씹으며, 
함께 해 뜨는 것을 구경하고 있자니 
바람을 피우는 기분이었다. 



물론 말 한마디 주고받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상형이 밥 먹여주냐고요? 밥을 차려줍디다 ⓒ황가람 [혼자 떠나도 괜찮을까?] 중에서








구독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에 또 만나요. : ) 


[8/10 예고편] 

#06 굴욕만 남긴 최저가 가이드 투어 @모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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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혼자 떠나도 괜찮을까?] by 황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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